5월 20일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의 국내 환자가 처음 발생한 이후 다시 환자수가 ‘0명이 되기까지는 반 년을 넘긴 190일이 걸렸다.
그동안 186명이 메르스에 감염돼 힘든 싸움을 펼쳤으며 이들 중에서는 25일 숨진 80번 환자(35)를 포함해 38명이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났다.
메르스 사태는 불안한 방역망과 의료기관의 허술한 병원 내 감염 관리 등의 문제를 드러냈다. 이를 극복하는 데에는 의료진의 사투와 시민들의 협조가 큰 역할을 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담맘에서 메르스에 감염된 1번 환자가 5월20일 확진 판정을 받을 때만 해도 메르스가 이렇게 많은 수의 환자와 사망자를 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사태 초반에는 1번 환자가 스스로 사우디 방문 사실을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여러 병원을 오갔고 의료진은 중동 방문 여부를 확인하지 않아 환자수가 늘었다. 이 때문에 환자가 입원한 평택성모병원은 메르스의 첫 번째 숙주가 됐다.
두 번째 확산지는 국내 최고 시설을 자랑하는 삼성서울병원이었다. 1번 환자와 접촉한 14번 환자가 이 병원의 북적이는 응급실을 사흘간 방문하면서 이번 사태 전체 환자의 절반에 육박하는 91명의 환자를 양산했다.
결국 삼성서울병원을 비롯한 14개 병원이 임시로 문을 닫아야 했다.
하루 최고 23명까지 늘어났던 메르스 환자수는 사태 한달이 지난 6월 하순 이후 증가세가 둔해졌으며 7월5일 이후에는 환자가 추가되지 않았다. 같은 달 27일 마지막 자가격리자가 해제되자 정부는 이튿날 ‘사실상의 메르스 종식을 선언했다.
국민은 극심한 메르스 공포에서 벗어나 일상생활로 돌아갔지만, 우리 사회는 메르스 공포 속에 극심한 내수경제 위축이라는 또 다른 상처를 입은 뒤였다.
메르스 공포가 심할 때는 동네의원까지 환자가 뚝 끊겼고 음식점, 놀이동산, 쇼핑몰 등의 시설은 한산했으며 2천곳 넘는 학교가 휴업·휴교를 단행했다. 내수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11조6천억원의 ‘메르스 추가경정예산이 투입되기도 했다.
비공식적이지만 메르스 종식 선언이 이뤄지고 사람들의 우려는 줄었지만, 이후에도 일부 환자들의 메르스 혹은 메르스 후유증과의 싸움은 계속됐다.
마지막으로 메르스 감염 상태였던 80번 환자의 경우 6월7일 메르스에 감염된 뒤 이날까지 172일 동안 병마와 싸움을 벌였지만 결국 극복하지 못했다.
기저질환으로 악성 림프종을 가지고 있던 이 환자는 지난달 1일 완치 판정을 받아 이튿날 퇴원했지만 열흘 뒤 다시 재감염 상태가 됐다. 치료할수록 면역력은 약해지는 기저질환의 특성 때문에 메르스 감염에서 벗어나기 힘들었고, 격리병상 생활이 오래 이어지면서 기저질환을 극복하지도 못했다.
모든 감염자가 병원 내 감염으로 추정된다는 점에서 이번 메르스 사태가 한국 의료체계의 고질병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많다. 북적거리는 응급실과 좁은 다인실 병실, 과도한 병문안 문화 등은 중동의 질병인 메르스가 한국에서 기승을 부리게 한 또 다른 숙주였다.
한편으로는 허술한 방역체계의 문제점도 노출됐다. 역학조사관은 32명뿐인 데다 그나마 이들 중 정규직은 2명뿐이어서 제대로 역학조사를 수행하기 버거웠고 이는 당국의 통제를 벗어난 환자가 잇따라 발생하는 계기가 됐다. 위기 상황을 일사불란하게 통제할 방역망의 컨트롤타워도 자주 바뀌었다.
메르스를 극복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은 밤낮 안 가리고 헌신한 의료진들과 손씻기를 생활화하고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불편을 감내한 감염자, 격리자,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이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모두 186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들 메르스 감염자 중에서는 38명이 숨져 메르스 치사율도 20.4%로 집계됐다.
[매경닷컴 디지털뉴스국]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