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해외여행을 결심했을 때, 여행지 선택만큼이나 고심했던 것이 바로 여행 가방 고르기였다. 여행 좀 다녔다는 친구들의 가방은 다들 멋스럽고 튼튼해 보이던데, 막상 용품점에 가서 고르려니 가격대부터 컬러, 재질과 실용성까지 고민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제 나름 여행 전문가의 입장에서 그동안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거쳐 체득한 ‘여행용 가방(캐리어) 고르기 노하우를 몇 가지 공개해본다.
첫째, 하드케이스보다는 소프트케이스를 추천한다. 여행 가방은 무조건 가벼워야 한다. 집을 떠나는 순간 모든 짐의 무게는 두 배가 되기 마련이다. 하드케이스는 튼튼하지만 무거우며 확장성이 없고, 소프트케이스는 가볍고 짐을 많이 넣을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외부 충격에 약하다. 노트북이나 카메라 등은 보조 가방에 넣어 휴대하고, 캐리어에는 충격에 민감하지 않은 짐들로 채우는 것이 정답.
둘째, 크기는 기내 반입이 가능한 24인치가 무난하다. 난 무조건 수하물로 부치니까 좀 더 큰 것이 좋아”라고 한다면, 더 큰 것을 사야 하겠지만 캐리어의 크기는 10일 이내 여행의 경우 24인치면 충분하다.
셋째, 검은색은 피할 것. 요즘은 덜하지만 그래도 공항 수하물 찾는 곳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이 검은색 캐리어다. 멀리서 봐도 딱 내 가방이네”라 할 정도로, 자기만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컬러를 골라보자.
넷째, 캐리어 바퀴는 4개짜리가 좋다. 캐리어 바퀴가 2개 있는 것은 세워놓았을 때 움직이지 않는 장점은 있지만 이동할 때 항상 비스듬히 눕혀서 끌고 다녀야 한다. 가방이 짐이 많으면 이 무게도 상당하다. 바퀴가 4개라면 똑바로 세워서 카트처럼 밀고 다닐 수 있다.
다섯째, 괌, 사이판과 하와이 그리고 미국 본토를 여행할 때는 가방 자물쇠에 ‘TSA 마크가 있는 것을 구입하는 것이 좋다. TSA는 미국 교통안전청(Transportation Security Administration)의 약자로, 미국령을 여행하는 모든 항공기의 수하물을 임의로 검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빨간색 TSA 인증 마크가 있는 잠금장치는 이 검사 시 자물쇠를 파손하지 않고 마스터키로 열고 잠글 수 있다.
여섯째, 이건 개인적인 바람인데 이젠 좀 캐리어에 이미 다녀온 수하물 스티커는 떼고 다녔으면 한다. 해외여행이 귀하던 시절에는 내가 해외여행 이만큼 다녔다”는 자랑처럼 스티커를 덕지덕지 붙이고 다녔지만, 요즘 시대에 보면 어째 촌스럽다. 특히 손잡이에 붙여주는 짐 태그는 수하물 분류에 방해가 되니 반드시 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간혹 공항에서 캐리어 커버를 씌우고 다니는 분들을 만날 수 있는데, 좀 어색해 보인다. 마치 자동차 범퍼 보호용 범퍼를 하나 더 달고 다니는 느낌이라고 할까. 수백만원짜리 명품 캐리어라서 흠집이 나면 아까워 그런 것이라면 조금 이해는 가지만, 가방의 본래기능을 생각하면 좀 호들갑스럽다.
‘싼 건 비지떡, 비싼 건 브랜드 거품이란 생각이 지구상 모든 물건의 구매 노하우일 수 있지만 사실 이 모든 합리적인 이유에도 불구하고, 나도 명품 캐리어 하나쯤은 갖고 싶기는 하다. 어디 인생이 배운 대로 되기만 할까.
[이상호 참좋은여행 대표이사, 경영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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