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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의 야구생각] 우리에겐 ‘克日’의 DNA가 있다
입력 2015-11-18 06:02 
대한민국 야구대표팀이 프리미어 12 준결승에서 숙적 일본과 만났다. 19일 도쿄돔에서 열리는 이 경기에서 한국은 개막전 완패의 설욕전에 나선다. 사진=MK스포츠 DB
1974년까지 아시아무대를 벗어나지 못했던 한국야구는 1975년부터 본격적으로 세계무대에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국야구는 국제대회에서 번번이 숙적 일본에 발목을 잡혔다. 오죽했으면 일본을 이기기 위해 재일동포 투수를 귀화시키기 까지 했을까. 이렇게 한국으로 귀화한 투수가 신용균 김성근 김호중 등이다.
한국야구가 세계대회에서 처음 일본을 누른 것은 1977년 제3회 슈퍼월드컵대회였다. 한국은 이 대회 결선리그에서 일본을 누르고 미국과 4승1패로 동률을 이룬 뒤 최종 결승전에서 미국을 5-4로 꺾고 정상에 올랐다. 한국야구의 세계대회 첫 정상이었다.
이후 한국야구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일본을 만나 보기 좋게 승리를 거뒀다.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최종전에서 일본을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고, 첫 드림팀이 구성됐던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결승전에서도 일본을 콜드게임으로 따돌리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3,4위 결정전에선 일본의 자존심 마쓰자카 다이스케를 무너뜨리고 동메달을 따냈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일본전은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일본의 심장부 도쿄돔 상단에 꽂아 넣은 이승엽의 역전 투런 포는 대한민국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준결승에선 대역전극을 벌이며 일본야구를 멘붕에 빠뜨렸다. 물론 일본 벽에 막혀 분루를 삼킨 적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절대 열세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쉽게 물러난 적이 거의 없다.
그것은 상대가 일본이기 때문이다. 1977년 슈퍼월드컵과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우승 주역인 임호균 씨(전 삼성 라이온즈 투수코치)는 다른 나라는 몰라도 일본한테 지는 건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일본과의 경기에선 선수들 모두 눈빛이 달라졌다. 우리가 전력이 앞선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지만 기어코 일본을 이겼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창설대회인 프리미어 12 준결승에서 일본을 만났다. 개막전에서 0-5로 진 빚을 제대로 갚아줄 기회다. 또 도쿄돔이다. 이 대회 최대 스폰서인 일본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일정을 마음대로 바꿨다. 이런 횡포가 없다. 다른 나라는 모두 들러리 취급하고 있다. 우승은 떼 논 당상으로 간주하는 분위기다.

우리 선수들은 지금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현지서 전해오는 소식에 따르면 몸이 성한 선수가 한 명도 없다고 한다. 이순철 대표팀 타격코치는 선수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고맙다. 많이 지쳐있다. 부디 다치지 말고 끝까지 잘 싸웠으면 좋겠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본을 이길 수 있다. 아니 이겨야 한다. 대한민국 야구는 결정적인 순간 일본을 이겼다. 대한민국 야구의 위력은 위기 때마다 빛났다. 그것은 전력으로 평가할 수 없는 그 이상의 무엇이었다. 우리에겐 오래전부터 ‘克日의 DNA가 있다.
[매경닷컴 MK스포츠 편집국장 dhkim@maekyung.com][ⓒ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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