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선진국 社債에 눈돌리는 슈퍼리치
입력 2015-11-11 17:34 
서울 강남구에서 100억원대 금융자산을 굴리고 있는 사업가 A씨. 그는 최근 증권사 PB센터에서 상담 후 미국계 IT회사 애플이 발행한 회사채에 수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자율이 연 4%대로 높은 데다 원화 대비 달러 가치가 강세로 가면 환 차익까지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A씨는 "그간 국내 우량 회사채에 투자해왔지만 금리가 2~3% 내외로 낮은 데다 최근 기업 실적 악화로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곳도 적지 않다"며 "미국 등 선진국 회사채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데다 금리도 높아 장기 투자할 만하다"고 말했다.
미국 기준금리 인상과 국내 기업 구조조정 이슈로 회사채 시장 변동성이 높아진 가운데 선진국 회사채가 슈퍼리치(거액 자산가)들을 위한 중장기 투자 자산으로 떠오르고 있다. 선진국 회사채란 애플 구글 버라이즌 등 글로벌 기업들이 자금 조달을 위해 발행하는 달러·유로 표시 채권을 뜻한다. 만기가 대부분 10년 이상으로 국내 회사채에 비해 길기 때문에 높은 이자를 지급한다.
1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NH투자증권이 올 들어 일반 개인고객에게 판매한 달러 표시 미국·유럽 회사채 등은 약 1800억원에 달한다. NH투자증권 리테일 관계자는 "과거 외국 채권 투자는 은행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가들 중심이었지만 올 들어 고금리와 환 차익을 노리는 개인투자자들이 늘면서 리테일 판매가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KDB대우증권이 지난달 초부터 판매를 개시한 유럽계 은행 바클레이스 코코본드에는 20일 만에 100억원 넘는 투자자금이 몰리는 등 거액 자산가들 중심으로 선진국 회사채 투자가 늘고 있다.
선진국 회사채 인기는 무엇보다 연 4% 이상인 고금리 때문이다. 신환종 NH투자증권 글로벌전략팀장은 "국내 금리가 올 들어 많이 하락하면서 AA등급 회사채 금리는 2%대 중후반밖에 되지 않는다"며 "비슷한 신용도인 선진국 회사채를 매수하면 투자기간이 긴 대신 연 4% 이상 이자를 매년 꼬박꼬박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미국 기준금리 인상 이후 달러 강세까지 더하면 기대 수익률은 더욱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현재 국내 투자자가 만기 30년인 애플 회사채에 투자하면 환 차익을 제외하고 매년 4.3% 이자수익을 얻을 수 있다. 표면 금리 6.55%, 만기가 2043년 9월 15일로 정해져 있는 버라이즌 회사채에 투자했을 때 연 5.10%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

외국계 은행이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에 투자하면 기대 수익률은 더욱 높아진다. 신종자본증권이란 주식과 채권의 중간적 성격을 가진 금융상품으로 주식처럼 만기가 없거나 매우 길고 채권처럼 매년 일정한 이자나 배당을 지급하는 것이 특징이다.
투자자가 미국계 투자은행인 스탠다드차타드가 발행한 만기 5년짜리 신종자본증권에 투자한다면 연 6.8% 수익을 얻을 수 있다. 만기가 2020년으로 정해진 HSBC홀딩스 신종자본증권은 투자자 기대 수익률이 6.2%에 달한다. 다만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한 기업이 유동성 위기 등을 겪으면 투자자에게 이자를 지급하지 않을 수 있고 원금을 상각하거나 주식으로 전환한다는 옵션이 달려 있다.
좀비 기업 구조조정 이슈가 불거지는 등 국내 기업에 대한 신용 위험이 커진 반면 미국 유럽 등 글로벌 기업들은 에너지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하면 탄탄한 실적을 보이고 있다는 점도 국내 자산가들이 선진국 회사채를 선택하는 이유다.
[김혜순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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