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오르부아르`, 백발의 소설가가 전후세대에 던진 날선 질문과 질타
입력 2015-11-10 16:17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일, 그것은 소설가의 임무다. 현실과 허구는 본래 막혀 있어서, 소설가는 이쪽과 저쪽의 장벽을 부수고 깬다. 그 결과, 허구가 현실보다 더 절실한 현재로 다가올 때, 우리는 숙연해진다. 그것은 소설의 역할이다. 프랑스 작가 피에르 르메트르(64)의 ‘오르부아르는 소설가의 임무, 소설의 역할에 충실한 수작이다. 허구임에도 현실에 더 가까워, 680쪽의 방대한 분량의 책을 덮을 때 고개를 떨구게 만든다.
10일 서울 주한프랑스문화원에서 만난 피에르 르메트르는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벌이는 부조리는 모든 시대와 모든 국가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며 전후세대가 망각한 전쟁의 상흔을 보편적 시각에서 그리고 싶었다”고 운을 뗐다.
1차 세계대전 종전을 며칠 앞둔 1918년 11월 2일, 113고지 쟁탈전에서 이야기는 출발한다. 참전용사 알베르는 상사 프레델 중위의 모략에 빠져, 포탄구덩이에 생매장된다. 질식 직전의 그를 동료 에두아르가 얼굴 반쪽을 잃는 부상 끝에 그를 구출해낸다. 끔직한 전쟁에서 살아난 두 참전용사에게는, 그러나 프랑스 어디에도 발 디딜 곳이 없이 소외된다. 택시기사는 그들에게 돈을 갖고 있느냐”며 홀대하고, 알베르가 다니던 은행은 그를 해고한다. 연금은커녕 오직 ‘샌드위치 맨으로 연명하는 삶이 그들에게 주어진 삶이다.
반면, 시체 한구당 80프랑을 주는 이권사업을 따낸 프라델 중위는 신장 160cm 시체를 130cm짜리 관에 넣는 등 비윤리적 행위를 저질러 승승장구한다. 온 사회의 냉대에 분노한 알베르와 에두아르는 ‘대국가 사기극을 꾸민다. 전자사 추모 기념비로 일을 꾸민 그들은 국가와의 유쾌한 한판 승부를 벌인다. 두 참전용사는 기념비를 32퍼센트의 할인”해준다거나 먼저 들어온 주문들만을 선착순”으로 판매한다는 식의 황당 사기극을 통해 참전용사를 잊은 국가를 유쾌하게 조롱한다.

백발에 가까운 노작가는 ‘오르부아르가 전후세대의 망각을 겨냥한 소설이라고 고백했다. 그는 세계대전 당시 희생자 수는 프랑스 전체 인구수와 같은 4000만명”이라며 한 나라의 온 국민을 한 전쟁터에 몰아넣고 ‘단테의 지옥과 같은 곳에서 젊은이들은 희생시켰는데, 국가가 희생자들에게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사자는 추모하면서 정작 전쟁의 생존자는 망각해버리는 위선이 소설의 맨 처음과 맨 끝을 장식한다.
전쟁을 통해 함몰된 인간성에 대한 고발도 이어진다. 구덩이에 떨어질 당시 알베르는 ‘잘린 말 머리(대가리)와 함께 묻힌다. 말의 입 속에 남은 공기로 알베르는 3~5초간 호흡을 유지한다. 르메트르는 인간이 아닌, 인간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짐승에 의해 알베르가 살아난 것”이라며 전쟁은 인간에 의한 죽음이며, 인간성의 죽음”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소설 ‘오르부아르는 르메트르의 소설이 본격 순수문학으로 분류된 첫 소설이다. 추리소설 거장인 그는 2013년 ‘오르부아르로 맨부커상, 노벨문학상과 함께 전세계 3대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거머쥐었다. 르메트르는 처음엔 탐정소설로 시작했지만 내가 당초 쓰려던 이 소설이 탐정소설의 DNA를 갖고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며 일종의 모험소설이지만 사회에 대한 묘사는 여운을 남길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어로 오르부아르(au revoir)는 ‘잘가요, 안녕이라는 뜻이다. 결국 ‘오르부아르는 참전군인을 망각하며 사는 비극적인 세태를 고발하면서 망각해버린 과거에 대한 치유가 없이는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없음을 고백한다. 6.25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한국인에게도 유의미하게 읽힌다. 프랑스문학 특유의 유머 코드가 담겼음에도 그 진지함이 희석되지 않은 것도 소설의 묘미다.
르메르트는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절친한 친구다. 르메트르는 베르베르를 뛰어넘겠다며 여유를 부렸다. 베르베르가 ‘한국에 가면 많은 독자들이 환영해줄 테니 많이 만나야 한다고 조언했죠. 그래서 나는 베르베르에게 ‘한국 독자들에게 내 소설을 더 많은 읽게끔 해주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왔습니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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