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온 그대의 이름은 닭
입력 2015-11-06 11:06 

‘치느님(치킨+하느님)이라는 단어가 있다. 포털사이트 국어사전에 등록될 정도로 요즘 널리 쓰이는 말이다. 치킨은 얼마나 대단하기에 ‘신의 영역까지 넘보는 존재가 되었을까?
미국의 과학·기술 전문 기자 앤드루 롤러는 인류 문명과 궤를 같이하는 닭의 역사를 작심하고 파헤쳤다. 동아시아 밀림에서 살던 닭은 인간과 함께 때론 카누를 타고, 때론 수레 안에 실려 전 세계로 퍼져나가 필수 단백질 공급원이 됐고 인류 생존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그 결과 오늘날 지상에는 200억 마리 이상의 닭이 살고 있다. 인간 숫자의 3배에 달한다.
저자에 따르면 지구상에서 닭을 볼 수 없는 장소는 바티칸 시국과 남극 대륙 두 군데뿐이다. 바티칸에는 닭장이 없기 때문이고, 남극에서는 펭귄을 바이러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반입을 금지해서다. 이토록 흔한 존재이기에 우리는 종종 닭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잊곤 한다. 2012년 멕시코에서 닭 수백만 마리가 살처분되는 탓에 멕시코시티의 달걀 값이 큰 폭으로 뛴 적이 있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거리로 뛰쳐 나와 대대적인 시위를 벌이며 정부의 무능을 규탄했다. 이른바 엄청난 달걀 위기(The Great Egg Crisis)”다. 그런가 하면 같은 해 이집트 카이로에서는 비싼 닭고기 값이 이집트 혁명의 시발점이 됐다. 시위대는 외쳤다. 저들은 비둘기 고기와 닭고기를 먹고, 우리는 매일 콩만 먹는다!”
저자는 음식 외의 수없이 다양한 닭의 용도들에도 주목했다. 세계적 제약회사 화이자는 닭의 볏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관절염 치료제를 만들고 있다. 이 성분은 피부의 탄력을 더해주는 보톡스에도 사용된다. 인플루엔자 백신으로도 기능한다. 필리핀에서 엄청나게 성행한 투계(닭싸움)는 에스파냐 식민지 시절 식민당국의 세수입이자 통제 수단이 됐다.
이처럼 온갖 군데에서 도움을 준 닭을 우리 인간들은 참 잔인하게 다뤘다. 비좁은 공간에 최대한 많이 집어 넣고 살이 빠르게 오르도록 품종개량된 닭들은 골격이 발육을 따라가지 못해 다리와 엉덩이에 만성적인 병이 생겨 사료통까지 걸어가지도 못하게 된다. 저자는 인간의 기쁨과 편리를 위해 한 종의 동물에게 영속적인 고통을 주는 게 올바른 것이냐는 질문을 던지며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오신혜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