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이태원 살인사건 패터슨 "리가 환각상태에서 저지른 범행" 17년 만에 법정 섰다
입력 2015-10-09 09:54  | 수정 2015-10-12 10:17
이태원 살인사건 패터슨/사진=MBN
이태원 살인사건 패터슨 "리가 환각상태에서 저지른 범행" 17년 만에 법정 섰다

"피고인 준비됐으면 출석시키시지요."

재판장의 말이 떨어지자 서울 법원종합청사 417호 법정의 왼쪽 문이 열렸습니다. 쑥색 수의를 입은 백인 남성이 성큼성큼 들어왔다. 175㎝가량의 키에 검고 짧은 머리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변호사와 검사에게 가벼운 목례를 하고는 굳은 얼굴로 피고인석에 앉았습니다.

'이태원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된 미국인 아더 존 패터슨(36)이 17년 만에 한국 법정에 선 순간이었습니다.

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심규홍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패터슨의 첫 공판준비기일은 법원 청사에서 가장 넓은 대법정에서 진행됐습니다. 하지만 재판 20분을 앞두고 100자리가 넘는 방청석이 꽉 찼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법원 경위도 10명이 넘게 투입됐습니다.

피해자 조중필(당시 22세)씨의 부모, 패터슨과 사건 현장에 있었던 에드워드 리(36)의 아버지도 법정에 왔습니다.


검찰이 공소사실을 읽으며 패터슨이 어떻게 조씨를 살해했는지를 말하자 조씨의 아버지는 괴로운 듯 눈을 꾹 감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는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었다가 다시 천장을 향해 고개를 들기도 했습니다. 리의 아버지는 "패터슨은 지금도 안 했다고 하는 데 나쁜 사람"이라며 "이번 기회에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패터슨은 법정에 입장해 방청객들을 한 번 둘러보더니 다소 긴장한 표정을 지습니었다. 입국 당시 있었던 수염은 깨끗이 면도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말을 알아듣느냐는 재판장의 질문에 매우 조금 알아듣는다고 영어로 답했습니다. 재판 말미에도 발언기회를 얻었지만 변호인이 내세운 쟁점이 재판에서 다뤄질 것인지를 물어보고는 "대단히 감사하다"고만 했습니다.

패터슨은 1997년 서울 이태원의 한 패스트푸드점 화장실에서 조씨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사건 당시엔 리가 단독 살인범으로 몰렸다가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았다. 패터슨은 흉기소지 등의 혐의로 실형을 받았다가 1998년 사면됐습니다. 그리고 검찰이 실수로 출국금지를 연장하지 하지 않은 틈을 타 1999년 8월 미국으로 도주했다가 지난달 16년 만에 국내로 송환됐습니다.

패터슨의 변호를 맡은 오병주 변호사는 당시 범행은 리가 환각상태에서 저질렀으며, 이후 교묘하게 진술을 바꿔 패터슨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오 변호사는 특히 "이 사건은 미국 사람이 한국 사람을 죽인 게 아니다. 패터슨은 한국인 홀어머니가 키운 한국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음식이 안맞는 패터슨을 위해 자신이 영치금을 줬다며 "패터슨이 감옥에서 어머니의 성경책을 넣어달라고 하고 기도도 해달라고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피해자 조씨의 어머니 이복수(73)씨는 재판 직후 기자들과 만나 "변호사가 미국 애를 한국 엄마라고 한국 사람이라 우기는 데, 우리 자식이 얼마나 억울하게 죽었는데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하느냐"며 울분을 터뜨렸습니다.

이씨는 "패터슨이 범인이라고 알고 있다"며 "재판을 공정하게 받아서 꼭 범인이 꼭 밝혀졌으면 좋겠다. 우리 가족과 중필이의 한을 풀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재판부는 리와 패터슨의 앞선 재판 기록을 참고하되 심리를 원점에서 진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재판은 6개월 내에 끝낼 예정이다. 다음 공판준비기일은 22일입니다.

[MBN 뉴스센터 / mbnreporter01@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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