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전날 구속된 신부, 대신 웨딩드레스 입은 언니

결혼자금을 마련하려고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했다가 결혼식 전날 구속되는 바람에 자신의 언니를 식장에 세워 '가짜 결혼식'을 치른 20대 여성의 촌극이 재판 과정에서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경기도 부천에 사는 A(27·여)씨는 작년 10월 고등학교 동창 B(26·여)씨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B씨는 "보이스피싱을 하는데 도와주면 일당을 많이 받을 수 있다"며 가담할 것을 제의했고, 마침 결혼자금을 마련하느라 고민하던 A씨는 덜컥 제의를 받아들였습니다.

B씨의 손에 이끌려 보이스피싱 조직원이 된 A씨는 필리핀에 있는 '민 사장'의 지시에 따라 속칭 '인출책' 겸 '송출책'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들은 작년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보이스피싱에 속은 피해자 40여명이 입금한 1억8천만원을 찾아 필리핀에 송금했습니다.

B씨는 인출 금액의 10%를 수수료로 받아 챙겼지만 A씨가 받은 보수는 일당 5만원밖에 안됐습니다.

손쉽게 결혼자금을 모으려던 A씨의 철없는 꿈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경찰이 3월 두 사람을 포함해 보이스피싱 조직원 45명을 일망타진한 것입니다.

A씨와 B씨는 사기 및 전자금융거래법위반 혐의로 다른 조직원 8명과 함께 3월 21일 구속됐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다음날은 A씨의 결혼식 날이었습니다. A씨는 웨딩드레스 대신 수형복을 입었습니다.

신부가 결혼식에 올 수 없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결혼식을 취소했다간 아무 죄 없는 예비 신랑이 주변 사람들에게 심하게 망신을 당할 상황이었습니다.

A씨 가족들은 예비 사돈댁에게까지 피해가 번지지 않도록 부랴부랴 임기응변을 마련했습니다.

A씨는 막내이자 넷째 딸이었는데, 둘째 언니가 구속된 동생 대신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장에 입장해 가짜 결혼식을 치렀습니다.

사고뭉치 막내의 '대형 사고'를 조금이라도 무마해주고 싶었던 언니는 제부라 부르던 남자의 손을 잡고 결혼식을 치렀습니다. 둘째 언니는 기혼자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후 A씨는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녀를 범죄에 끌어들인 친구 B씨에게는 징역 4년8개월이 선고됐습니다.

A씨의 항소심을 맡은 서울북부지법 형사2부(강인철 부장판사)는 2일 A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습니다.

예비 신랑은 1심 때는 A씨의 선처를 호소하며 탄원서도 냈지만 끝내 부모의 반대에 부딪혀 현재는 파혼하고 헤어진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