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디젤사기극으로 최대 위기를 맞이한 폭스바겐 그룹이 문제해결을 위해 새CEO를 선임하는 등 전방위적 문제해결에 나섰지만 또 다른 경영권 싸움”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애초 시작점이 3세 경영인간 다툼이 잦은 불안한 지배구조와 오너 눈치만 살피며 단기실적만 쫓는 조직문화에서 비롯됐는데 근본적 문제해결은 외면하고 자기 사람을 고위직에 앉히는 등 밥그릇 싸움에만 몰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즈(NYT)는 25일(현지시간) 이번 디젤 사기극을 일으킨 폭스바겐 문제의 중심에 대주주 눈치만 보는 폭스바겐 경영진과 오너의 잦은 경영권 다툼이 자리잡고 있다고 보도했다.
찰스 마이클 엘손 델라웨어대학 기업지배구조 센터장은 NYT와 인터뷰에서 폭스바겐 이사회는 피가 흘러 넘치는 전장과 같았다”며 언젠가는 터질 일이 터지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NYT와 인터뷰한 옛 배기기술 R&D업무를 맡았던 폭스바겐 고위 관계자는 오너들은 자신들의 경영권 장악에 힘을 싣기 위한 실적에만 골몰하며 환경규정에 적대적이었다”며 오로지 실적만 쫓는 엔지니어와 경영진을 양산한 이유”라고 지적했다.
독일 현지매체인 수드도이치 자이퉁도 잦은 경영권 다툼이 양산한 폭스바겐의 전제주의적 오너리더십은 북한의 김정은 체제나 다름없었다”며 줄서기를 강요했고 효율적 기업경영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비판했다.
‘폭스바겐 내 혈투는 10년 가까이 지속되는 포르쉐가문 내 경영권 다툼을 말한다.
창업자 포르쉐 박사의 성을 이어받은 두명의 손자인 볼프강 포르쉐와 페르디난트 피에히 폭스바겐 회장 얘기다.
이들의 싸움은 디젤사태로 물러난 마르틴 빈터콘 CEO와 24일(현지시간) 새로 임명된 마티아스 뮐러CEO와도 관련이 깊어 주목을 끌고 있다.
얘기는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은 같은 그룹아래 있는 포르쉐와 폭스바겐은 이때까지만 해도 각각 딴 회사였다.
포르쉐는 창업주의 친손자인 볼프강 포르쉐 회장 소유였고, 폭스바겐은 외손자인 페르디난트 피에히 회장이 갖고 있었다. 그러나 2005년 포르쉐가 폭스바겐 주 매집에 나서면서 양측간 싸움이 불거졌다. 아우디, 부가티, 람보르기니 등 9개 명품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었던 폭스바겐그룹을 내심 탐냈던 포르쉐 측 볼프강 포르쉐 회장이 폭스바겐그룹에 대한 적대적 M&A를 시도한 것.
포르쉐는 폭스바겐 지분을 절반 넘게 매입하며 승리하는 듯했지만 금융위기 사태로 오히려 폭스바겐측에 인수·합병됐다. 서로 앙금이 남아있던 양측은 올해초부터 전문경영인을 놓고 다시 싸움을 벌였다. 이번에 사퇴한 빈터콘 CEO의 재신임을 놓고 첨예하게 맞선 것이다. 피에히 폭스바겐 회장은 포르쉐 회장과 가깝게 지내는 빈터콘 CEO를 내치려 했다.
그러나 볼프강 포르쉐 회장이 우호지분을 확보하고 노조까지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면서 피에히 회장이 되레 의장자리에서 물러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번엔 ‘디젤 사기극 사태로 상황이 역전됐다. 피에히 회장측이 주주들을 선동해 모든 사태 책임을 빈터콘CEO에게 뒤집어 씌우면서 빈터콘 CEO가 물러났다. 새CEO로 지명된 뮐러CEO는 피에히 회장 측 라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피에히 회장은 1977년 그를 아우디 견습생으로 채용했으며 2009년 포르쉐의 새 CEO자리에 뮐러를 앉히기도 했다.
언론과 외부서 폭스바겐이 반성은 커녕 사태를 이용해 되레 밥그릇 싸움에 몰입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이유다.
디젤사기 문제는 피에히 회장이 그룹을 장악했던 2009년부터 시작된 것이기 때문에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이 되레 개혁세력을 쳐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후 능력있는 엔지니어들이 회사를 떠나고 피에히 회장측 인사들이 자리를 채웠다는 후문이다.
한편, 독일에 이어 영국 정부도 디젤사기 자체 조사에 착수하면서 영국 내에서 판매되는 모든 신(新) 모델 디젤 차량에 대해 배출가스 재검사를 실시키로 했다. 디젤 차량에 대한 영국 정부의 배출가스 재검사는 실험실과 실제 도로 주행시 배출가스량이 일치하는가를 확인하게 된다.
[이지용 기자 / 이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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