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일 못 하는 사람들의 면면 들여다 보며 받는 따뜻한 위로
입력 2015-09-04 11:42 

일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조합이 있다. 페이스북 그룹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은 2014년 7월 처음 만들어졌다. 회원 수는 6000명이 넘는다. 주눅들어 있던 이들이 페이스북에서 자신의 입장을 항변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경험담을 모아놓으면 배꼽 빠진다. ‘반전 평화여야 하는데 ‘반 평화라고 인쇄된 책을 끌어안고 통한의 눈물을 흘렸던 기억, 선배의 귀한 출산 소식을 전하며 ‘득녀를 ‘득년이라고 쓴 패륜의 기억, 코트를 오랜만에 바꿔 입고 출근했다가 사무실 열쇠를 두고 와 집으로 돌아간 기억 등…. 어이없는 실수로 회사에서 비난받은 흑역사가 한 트럭 쏟아진다.
부끄러운 일이 무슨 자랑이어서 그렇게 당당히 밝히냐는 비난 댓글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어떤 사람을 ‘일 못(하는 사람)과 ‘일 잘(하는 사람)로 구분하기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항변한다. 저자들은 ‘일 못하는 사람의 존재가치에 대한 시점의 전환을 꾀한다. 서류의 오타는 일시나마 팀원들에게 큰 웃음을 주기도 하고, 무려 이면지를 생산하기도 한다. 일 못하는 사람도 긍정적 효과를 낼 수 있고 미덕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은 지긋지긋한 인정 투쟁을 그만두라고 조언한다. 인정투쟁의 문을 연 순간 개인의 자존감은 곤두박질친다. 인정 받을수록 허무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일이 곧 ‘나라는 생각을 동력 삼아 유지된 인정투쟁에선 진정한 자아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보면 불평을 넘어 불평을 야기한 사회 구조로 시선이 돌아간다. 그저 일 못하는 사람으로 평가받은 것을 분하게 여기고 좌절감에 빠져 자포자기할 것이 아니라, 왜 내가 그런 식으로 평가당할 수밖에 없는지 이유를 묻게 된다. 사무직이 됐어도 파리목숨 취급받는 노동 환경에서 ‘일 못의 자존감은 보장받을 수 없다고 책은 말한다.
세상 탓, 회사 탓, 상사 탓, 내 탓 등 온갖 성토가 쏟아진다. 직장인이라면 공감되는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무엇보다 불만을 쏟아내는 마음 속에서 행복한 일터를 향한 갈구가 느껴진다. 왜 회사에서 우리는 무엇이든 잘하는 ‘직장의 신, 온몸을 받치는 ‘장그래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것일까. 이 책은 이도 저도 아닌 평범한 99%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이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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