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우리 조상들은 10차 방정식도 거뜬…수포자 없었죠”
입력 2015-08-31 15:15 
김영욱 교수가 고려대 연구실에서 조선시대 10차방정식 풀이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김영욱 교수가 고려대 연구실에서 조선시대 10차방정식 풀이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역사적으로 보나, 개인적 경험으로 보나, 수포자(수학포기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수학과 함께 한 지 50년, 수학밖에 모르던 수학자가 옥편을 잡았다. 모르는 한자를 찾아 옥편을 뒤져가며 그가 공부하는 것은 우리 수학사다. 기원전부터 1800년대까지, 한국은 물론 중국과 일본 수학까지 아우른다. 28일 고려대학교 수학과 연구실에서 김영욱 교수(59·한국수학사학회장)를 만났다. 흥미로운 동양 수학의 역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우리 수학의 최고 전성기는 세종대왕 때였어요. 정인지 등 집현전 학자들이 중국에서 들여온 ‘산학계몽과 ‘양휘산법같은 책으로 열심히 공부했거든요. 세조 실록에 보면 ‘세종때 산원들(수학과 천문관측 등을 맡았던 기술직 관리)은 10차방정식도 풀만큼 실력이 출중했는데, 요즘은 영 공부를 안해 3차방정식도 제대로 풀지 못한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세종 때는 중국도 자기네 수학을 등한시 할 때였고, 서양은 기하학 위주였으니, 우리가 세계 톱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김 교수는 지난 7월 고전번역원의 의뢰를 받아 한국 전통수학사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조선시대에도 원주율을 터득하고 방정식을 풀었으며, 독창적인 일식 관측과 역법을 가지고 있었다는 연구결과는 전통수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김 교수는 저는 은사님들이 같이 공부하자고 하셔서 따라다니다가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연구한 것일뿐”이라며 김용운 교수님 등 선배들이 20년 가까이 틀을 잡으셨고, 지금도 한국수학사학회 등에서 동료들과 후배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 산학 책 번역과 연구가 더 활발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작년 세계수학자대회가 한국에서 열렸잖아요? 그때 개최국의 수학사를 소개하는 지면이 있어요. 한국 수학사 연구에 독보적인 홍성사 교수님과 여섯 페이지 페이퍼를 쓰는데 꼬박 1년을 공부했습니다. 시간이 엄청 들어가지만, 아주 흥미로워요. 우리가 폄하하는 당파싸움을 예로 들어볼까요? 1653년 도입된 청나라의 새 역법인 ‘시헌력을 쓸지 말지 논쟁이 붙었어요. 자기네 논리를 펼치기 위해 양 당파가 ‘산학계몽을 인쇄해서 죽어라 공부를 합니다. 옛날 것이 더 낫다, 아니다 시헌력이 낫다고 주장하기 위해 이론으로 증명하려 한 것이죠. 그렇게 60년을 논쟁한 끝에 시헌력을 쓰자고 결정해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수학도 발전했겠지요. 당파싸움으로 시간을 낭비했다, 는 식으로 이해해선 곤란해요.”
뉴스에 오르내리는 ‘수포자(수학포기자) 이야기를 꺼내자 김 교수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는 그렇게 쉽게 말한다면, 초등학교때 계산이 자꾸 틀려서 수학이 싫었던 저도 수포자”라며 수학은 하나도 모르겠거나, 원리를 깨닫고 나니 다 알겠거나 둘 중 하나다. 10살에는 수학이 싫지만 서른 살에는 좋아질 수도 있는 건데 함부로 말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머리좋은 아이들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수학을 못하게 되는 건 외우기 때문이에요. 아이에게 억지로 시키지 마세요. 재미를 못 느끼면 영영 멀어집니다. 시간제한을 두지말고 원리를 이해하는 기쁨을 줘야하는데, 지금 입시제도 하에서는 어려운 문제지요. 하지만, 개인의 실력도 학문도 계속해서 생각해야 발전한다는 걸 잊어선 안됩니다. 좋은 툴이 있었던 동양수학은 너무 쉬워서, 죽어라 생각했던 서양수학에 밀렸거든요. 우리 아이들이, 어려운 문제를 이렇게 푸니까 더 잘 풀리네, 하는 기쁨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
[신찬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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