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맹은 생활을 불편하게 하지만 금융 문맹은 생존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에 문맹보다 더 무섭다.”
1987년 이래 네 번에 걸쳐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 의장을 역임하며 세계 경제를 호령했던 앨런 그린스펀의 말이다. 그가 세계적인 금융 전문가가 될 수 있었던 데는 어린 시절 주식 중개인인 아버지에게서 받은 금융 교육이 큰 힘이 됐다. 다섯살일 때 아버지가 증권사를 데려가 주식과 채권이 무엇인지, 본인이 어떤 일을 하는지 자세히 알려줬다고 한다. 커가면서 급여를 받아 생활비를 얼마나 쓰고 저축해야하는지, 돈은 빌려서 어떻게 갚아야하는지 같은 자산 관리 방법을 배웠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배운 경험은 그가 나중에 세계 금융 시장을 관리 감독하는데 중요한 토대가 됐다.
한 때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 카피가 유행할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들은 돈 버는 데 관심이 많다. 그런데 정작 돈을 어떻게 버는 지에 대해서는 ‘무관심을 넘어 ‘무지하다.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전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금융 이해력 조사 결과 전체 대상자의 평균 점수는 100점 만점에 66.5점에 불과했다. 특히 측정 영역별로 봤을 때 금융 행위와 관련된 점수가 59점으로 지식(75.6점), 태도(61점)에 비해 가장 낮았다.
돈에 관심이 많으면서 정작 자기가 번 돈을 어떻게 쓰고 모으고 불려야할 지를 제대로 모른다는 얘기다.
특히 국가 경제를 짊어질 20대 청년층의 재무설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20대는 경제활동이 왕성한 40대와 30대는 물론이고 50·60대보다도 금융 이해력이 낮았다. 국제적으로 봐도 단순한 금융 지식 점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보다 높았으나 재무상황 관리 등 금융행위와 금융태도는 평균보다 조금 낮은 수준에 불과했다.
금융 산업이 발전하면서 무수한 금융 상품이 쏟아져나오고 있지만 ‘무지한 소비자들은 그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대포통장이나 불법 사금융 같은 금융 사기에 쉽게 노출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금융당국의 감시망을 피해 사기꾼들 수법은 날로 진화하지만 일반인들 지식 수준은 여전히 낮기 때문이다. 중·고등학생, 취업준비생, 주부 등 금융지식이 부족한 취약계층들이 금융사기의 최대 피해자들이다. 최근에는 아르바이트나 취업을 빙자해 청소년들의 돈을 뜯어내는 사기꾼들도 횡행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돈에 대한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평생 후회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금융 교육은 조기에 이뤄져야한다.
금융 교육의 힘은 국가 경제의 힘으로 이어진다. 미국 전체 인구 중 유태인의 비율은 2% 약간 웃도는 800만명 정도지만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20%가 유대인들 몫이라고 한다. 유태인은 일찍부터 경제교육을 시키는 민족으로 유명하다. 부모가 돈의 중요성과 개념을 어려서부터 알려준다.
아버지가 사업을 하면 직접 자녀를 일터에 데려가 고객을 대하는 태도나 사업하는 자세, 자금을 관리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고, 돈을 어떻게 버는지 수입은 얼마나 되는지 알게 된 아이들은 부모를 따라 용돈을 관리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다. 부모가 직접 얼마나 어렵게 돈을 모으는지 알게 된 아이들도 스스로 용돈을 헤프게 쓰지 않고 모으는 법을 따르게 된다.
우리나라에도 이같은 금융 교육 문화가 자리잡게 하기 위해서는 민간과 더불어 학교에서부터 금융 부문 교육이 대폭 강화돼야한다. 현재로선 학교가 일반인들이 돈을 어떻게 벌고, 어떻게 절약해서 모아 미래에 대비해야 할지를 배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창구가 될 수 있다.
매일경제신문은 청소년금융교육협의회와 함께 관련 정부 부처인 교육부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은 물론 금융 관련 협회들과 협약을 맺고 청소년 금융·경제교육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올해에만 290개 초·중·고등학교를 직접 방문해 2만 5000여명의 청소년들에게 금융 교육 수업을 진행했다. 특히 새터민 같은 취약계층과 지방권에도 금융·경제교육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올해는 새롭게 ‘1사1교 찾아가는 금융 뮤지컬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후원자나 후원 기업이 특정 학교를 지정해 ‘1사 1교 형태로 금융 뮤지컬을 후원하는 금융 교육 기부 캠페인이다.
어린이·청소년들의 눈높이에 맞게 체험형 금융교육용 게임을 개발해 보급할 계획이다. 2016년 자유학기제 도입을 앞두고 금융 교육 수요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금융 교육 전문 강사를 양성하기 위해 ‘강사 인증제도 실시한다.
[배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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