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한강진길 품은 이태원상권
입력 2015-08-16 17:04  | 수정 2015-08-16 21:47
다가구·다세대 주택 반지하와 1층을 리모델링한 가게들이 들어서고 있는 용산구 한남동 한강진길 전경. [이승환 기자]
16일 지하철 6호선 한강진역에 내려 패션5와 엘본더테이블 이태원점 옆 샛길로 들어가니 작은 골목을 따라 허름한 주택가가 나왔다. 빨간 벽돌로 지은 3~4층짜리 다세대·다가구 주택 반지하와 1층엔 33~50㎡(10~15평) 크기 한두 가구를 리모델링한 레스토랑, 디저트카페, 라이프스타일숍, 네일·헤어숍 등 20여 개 점포가 들어서 있었다. 지난 4월 문을 연 퓨전레스토랑 한 직원은 "올 들어 작지만 세련된 가게들이 잇달아 등장하자 대로변과 차별된 상권이 형성되고 있다"며 "20·30대 여성 고객들이 많다"고 말했다.
서울 강북 대표 상권인 이태원이 빠른 속도로 팽창하고 있다. '이태원 거리'로 불리는 중심 상권은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이태원역~한강진역을 잇는 이태원로 대로변에 걸쳐 있다. 이국적인 카페와 레스토랑, 클럽, 주점, 패션·잡화점 등이 밀집해 있다.
상권이 유명세를 타면서 상가가 포화 상태에 다다르자 2011~2012년 즈음 서쪽 녹사평역을 기점으로 회나무로를 따라 경리단길, 지난해부터 인근 신흥로에 해방촌길 등이 생겼다. 이번엔 동쪽 제일기획과 블루스퀘어 사이 꼼데가르송길에 이어 한강진역 뒷골목 낡은 주택가 사이로 '한강진길'이 싹트는 상황이다.
한강진길은 이태원로 이면도로인 이태원로42·54길, 대사관로5길을 따라 형성되고 있다. 이 일대에 대기업 프랜차이즈 등이 들어오면서 건물 매매가와 임대료가 급등해 임차인들이 가격이 싼 주택가를 파고든 게 주효했다.
이태원 거리 중소형 빌딩과 다가구·다세대 주택 매매가는 3.3㎡당 6000만~1억원을 호가한다. 현대카드 동서식품 등 기업과 연예인 큰손이 건물을 사들이면서 가격이 크게 올랐다. 한강진길 등 골목에 있는 건물보다 두 배 이상 비싸다고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이태원 상권 3.3㎡당 임대료는 16만377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1분기(13만4428원)보다 19.3% 오른 수치로 서울 주요 상권 중 상승률이 가장 높았다. 김은진 부동산114 리서치팀장은 "경리단길 등 뒷골목 상권에도 3.3㎡당 임대료 12만~13만원대 점포가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거리 인근 A공인 관계자는 "1~2년 전보다 임대료가 30~50% 이상 뛰었다"며 "메르스가 터졌을 때도 상인들이 새벽까지 장사하느라 바빴을 정도로 상권이 활기차다"고 말했다. 이태원 대로변 상가 1층 66㎡ 점포는 보증금 5000만~1억원에 월세 300만~500만원 수준이다. 반면 한강진길 가게는 다세대·다가구 주택 반지하 또는 지상층 일부 가구를 빌려 쓰기 때문에 보증금 500만~1000만원에 월세 50만~80만원대로 훨씬 저렴하다.
한강진길은 임차인 열에 아홉은 젊은 창업가다. 소자본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가게가 작아 테이블 10개도 놓기 힘들지만 거꾸로 아지트 같은 콘셉트가 소박한 골목과 잘 어울리고 '나만의 공간'을 선호하는 젊은 층 성향과 맞아떨어진다는 평이다. 업종이 같아도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가게들이 많아 질리지 않는 것도 매력이다. '제2 경리단길'로 불리는 이유다.
하지만 대기업에 밀려 소상인이 떠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이 걱정이다. 강남 가로수길과 홍대 중심 상권 등은 시세차익을 노리는 건물주와 대기업 유명 브랜드 간에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점포가 하루가 멀다하고 바뀌어 상권 개성이 퇴색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경리단길에도 최근 프랜차이즈가 생기면서 상권 분위기가 예전만 못하다는 얘기가 나온다"며 "건물주와 상인이 함께 상권을 공동으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영신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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