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시대의 아픔과 온몸으로 같이 울어온 한국문학
입력 2015-08-12 14:10 

광복과 함께 한국 문학은 일본어라는 언어의 족쇄에서 해방됐다. 광복의 기쁨은 한국 문학이 본격적으로 발아하는 계기를 만든 셈이다. 광복 직후 6.25전쟁의 참상과 폐허를 겪어야했지만 이 전쟁은 역설적으로, 전후 문학작품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됐다. 휴전 이후부터 전쟁에 대한 반성과 그 체험이 문학작품에 반영되어 독특한 분위기를 이루게 된 것이다.
휴전 이후 4·19까지의 우리 문학은 전쟁으로 입은 피해를 반영하고 아물게 하는 과정이었다.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와 자유를, 문화적으로는 전쟁으로 입은 정신적인 상처를 치료하는 작업이 진행됐다. 전후에 등장한 손창섭, 서기원, 오상원, 장용학, 선우휘, 송병수, 하근찬, 이호철 등의 작품에는 전쟁에서 얻은 허망감·고독감·억압감·배신감 등의 경향이 나타났다. 특히 전후에 등장한 젊은 세대의 문학은 윤리의식 측면에서 파격성을 드러낸다. 전시 중 부산 피난지에서 신문 소설인 정비석의 ‘자유부인이 크게 인기를 끈 것도 그것이 새로운 성의식을 내세웠다는 점에서였다.
1960년의 4·19혁명은 정치적인 사건일 뿐만 아니라 문학 발전을 촉진시켰다는 점에서도 의의를 갖는다. 한글을 모국어로 쓰는 1세대 작가들이 등장하며, 다채로운 문학적 결실을 빚어냈다. 또한 오랫동안 짓눌렸던 자유에의 갈망은 최인훈의 ‘광장이 그 첫 결실을 나타냈고, 민족의 수난의 역사를 소설에 담기 시작했다. 박경리의 ‘시장과 전장‘김약국의 딸들, 안수길의 ‘북간도, 최정희의 ‘인간사, 서기원의 ‘전야제‘혁명 등 기성작가들에 의해 유명한 장편들이 탄생했다. 김승옥도 ‘무진기행 ‘서울, 1964년 겨울 ‘서울의 달빛 0장 등 빛나는 작품을 잇따라 발표하며 1960년대 초반 한국 문단에 ‘감수성의 혁명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70년대 한국문학은 도시로 몰려드는 사람들의 군상을 담기 시작했다. 당시 많은 이농민들은 도시 변두리에 몰려 빈민층을 형성했다. 이 뿌리 뽑힌 삶들의 현장을 그린 70년대 소설로 뛰어난 것들이 황석영의 ‘객지, 박태순의 ‘외촌동 사람들 연작, 이문구의 ‘장한몽, 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등이다. 한편 1972년의 남북 공동성명은 작가들에게도 큰 충격을 주어 박영준의 ‘72년 하절, 박용숙의 ‘소경 아즈바이, 이호철의 ‘이단자 연작 등이 남북으로 갈린 혈연의 가족에 대한 애착 혹은 분단된 조국의 현실 등을 주제로 다뤘다. ‘70년대 작가의 대표군으로는 신문연재 소설진에 대거 등장한 최인호, 이정환, 조선작, 조해일, 김주영 등이 있는데, 이들의 활동은 문학의 상업화를 이끄는 동시에 퇴폐화라는 측면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1979년 발표된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도 주인공 난쟁이네 가족을 통해 1970년대 도시 빈민층의 삶을 통해 좌절과 애환을 다룬 문제작으로 이 시대를 대표하는 소설로 남았다
1980년대는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인 광주민주화항쟁에 의해 70년대의 문학과 구별되어 시작된다. 현대문학사에서 80년대만큼 정치적·사회적 변동에 의해 문학의 흐름이 크게 달라진 경우는 없었다. 정치적 사건으로 인해 다소 위축됐던 소설은 변혁의 물줄기를 표출하는 역할을 상징언어인 시나 르포에 넘겨 주었다. 황석영은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라는 르포집으로 광주민주화항쟁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80년대 소설의 특징은 대하소설의 등장을 들 수 있다. 70년대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에 이어서 황석영의 신문연재 소설인 ‘장길산과 김주영의 ‘객주가 대단원의 막을 올린 한편, 조정래는 여순반란사건을 주내용으로 다룬 대하소설 ‘태백산맥으로 수많은 독자를 확보했다. 이문열도 이 시기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며 ‘사람의 아들‘영웅시대 등의 대표작을 발표했다. 김홍신의 ‘인간시장이 한국 소설 최초의 밀리언셀러로 등장한 이래 80년대 이후부터는 꾸준히 소설 밀리언셀러도 탄생했다.

90년대에도 소설 전성시대는 이어졌다.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함께 한국 문학의 소재로 내면, 일상, 문화 등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신경숙, 윤대녕, 김이태, 박청호, 배수아, 성석제, 은희경, 전경린, 차현숙, 조경란, 김연경 등 신세대 작가들을 대거 배출하면서 새로운 한국 문학의 풍경을 만들어냈고, 상업적으로도 숱한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냈다. 90년대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여성주의 문학과 여성작가들의 약진이라 할 수 있다. 박완서, 오정희, 양귀자, 최윤, 신경숙, 전경린, 공선옥, 조경란, 하성란 등 많은 여성 작가들이 남성작가들의 시선으로는 좀체 포착하기 어려운 여성의 문제들을 발표했고, 광범위한 독자들의 지지도 얻었다.
IMF 사태 이후, 한국 사회는 반복되는 불황과 그 속에서의 무한 경쟁과 세계화의 논리가 사회적으로 자리잡으며, 문학에서도 변해버린 시대적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마도 한국의 2000년대 문학은 이즈음부터 시작된다고 말해서 무리는 없을 것이다. 2000년대에 들어 본격적으로 활동한 천운영, 윤성희, 정이현, 김애란 등 여성작가들은 90년대 내면지향적 여성문학이 보여주지 못한 새로운 미학적 차원을 열어 보였다. 박성원, 전성태, 김중혁, 박민규, 이기호, 김태용, 편혜영, 박형서, 한유주, 황정은 등의 작가도 좀 더 다채로운 방식으로 2000년대의 서사적 공간을 만들어내었다. 2000년대 주요 작가들의 글쓰기의 방식은 과거의 문학적 소재와는 방향을 달리하고 서사의 파괴를 실험하는 혼종적 글쓰기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2000년대 들어 한국문학은 해외에도 적극적으로 번역 소개되고 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거론되는 고은 시인을 비롯해, 황석영, 이문열, 이승우, 오정희 등의 소설은 세계 20여개국 이상에 출판되고 있으며,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는 미국 등지에서 상업적으로도 의미있는 판매부수를 기록했다. 최근 한국 문학은 상업적으로는 위기상황에 놓여있지만, 순수문학 외에도 장르문학에서도 인기작가를 꾸준히 배출하고 있다. 광복 이후 이제 70돌을 맞은 한국 문학이 노벨문학상을 받는 순간이 온다면, 아마도 해방 이후 최대 경사로 기록될 것이다.
[김슬기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