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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70년 한국의 은행史> 독립운동자금부터 경제개발까지…국가 주춧돌로
입력 2015-08-12 10:09 
대한천일은행 본점

화폐융통은 상무흥왕에 근본이므로 은행을 설립코저하여 청원하오니....”
110여년 전인 1899년 1월 대한천일은행(우리은행의 전신)의 은행설립청원서의 일부다. 금융위원회에 제출하는 ‘은행설립인가 신청서 격인 이 문서에는 ‘화폐경제를 발전시켜 국가를 부강하게(상무흥왕) 만들고자 하는 선조들의 뜻이 담겨있다.
당시 대한제국은 위기였다. 서구열강의 침략이 이어지고 자본주의가 한국에 뿌리를 내리려는 시점이었다. 일본이 1878년 세운 제일은행 지점이 각종 특권을 누리며 식민지화 정책의 기반을 닦아나가는 중이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백동화 남발로 인한 인플레이션 상황으로 민족은행 설립에 필요한 조치였다.
힘겹게 설립된 대한천일은행과 또다른 민족은행 한성은행은 훗날 민족운동인 국채보상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1907년 당시 일본이 한국 경제를 파탄에 빠뜨리기 위해 한국정부에 빌려준 차관만 해도 1300만원에 달했다. 한국 정부 세출부족액이 한해 77만원인 상황에서였다. 뜨거운 민족열로 모인 230만원은 한일은행, 대한천일은행, 한성은행에 의해 관리됐다. 현재 은행들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이들 은행은 민족운동에서 나름의 역할을 수행했던 셈이다. 아쉽게도 이들 은행은 일본 자본의 침투로 훗날 식민지 정책수행 은행이 되는 슬픈 역사도 갖게된다.
오히려 일제강점시기 지방 곳곳에 세워진 지방은행들이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앞장섰다. 호남은행(1920년 설립)은 일본인 직원을 단 한명도 채용하지 않고 일본인에게는 융자도 해주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경남은행의 전신인 구포은행(1912년 설립)은 최초의 민족은행으로서 일제의 불이익을 당하면서도 독립운동자금을 간접적으로 댔다.

꿈에 그리던 광복을 맞이하자 금융업에도 꽃이피웠다. 우선 1950년 한국은행이 설립됐다. ‘은행의 은행으로서 한국은행은 화폐발행, 통화신용정책, 금융시스템 안정 등 명실상부한 중앙은행의 역할을 시작하게 된다.
1960~70년대를 맞이한 은행들은 경제개발시기 당시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은행들은 정부가 진행하던 전국민적인 저축운동에 적극적으로 호응해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금들을 모았다. 현재 한국 경제의 뼈대가 된 대기업들도 당시 은행의 중소기업 지원 업무를 통해 내실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
은행제도의 기본골격이 잡히던 시기였다. 1962년 서울은행이 시중은행으로 바뀌고 1968년에는 한국신탁은행이 신설돼 2개의 시중은행이 추가됐다. 1967~1971년에는 지방경제 발전을 위해 지방은행 10곳이 설립됐다. 특히 1960년대에는 6개의 특수은행이 설립됐다. 1961년 설립된 것이 중소기업은행이었다. 1963년 설립된 국민은행은 ‘반관반민은행으로서 서민금융이 고유 업무였다.
1970년대에는 중화학공업화 정책에 따라 정책금융이 본격화됐다. 수출산업, 중화학공업, 대기업 중심으로 배정된 정책금융은 정부 정책의 동맥과도 같았다. 1986년까지 정부가 다섯차례에 걸쳐 경제개발계획을 수행하면서 은행을 비롯한 금융사들은 자금을 조달하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1990년대는 한국 금융산업이 크게 탈바꿈한 시기였다. 민주화와 더불어 정부 통제에 묶여있던 금리규제 등이 자유화되면서 은행들이 자율적은 금융회사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은행의 수신고만 봐도 그렇다. 1990년 이후 20년간 금융권 전체의 수신은 연평균 7.5%의 성장세를 보였다. 수신규모가 제일 컸던 예금은행들의 수신고는 1990년 85조2000억원에서 879조3000억원으로 10.3배 늘었을 정도다.
1997년 예고없이 맞이한 외환위기는 안타깝게도 은행에 큰 타격을 줬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금융산업 수신성장률은 크게 떨어져 외환위기 이전의 절반수준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망하는 은행이 속출했다. 1998년에는 5개 부실은행이 퇴출되고 1999년에는 5개 은행이 합병되는 등 은행업에서는 먹구름이 드리운 시절이었다.
당시 합병되거나 인수된 은행에는 제일은행, 서울은행 등 큰 규모의 은행도 포함됐다. 당시 명예퇴직을 신청한 제일은행 행원들의 목소리를 담은 ‘내일을 준비하며라는 비디오는 큰 화제가 됐다. 당시 제일은행의 회생을 바라는 직원들의 모습에 눈물을 뿌린 이들이 적잖았다. 외환위기 이후에는 3개의 외국계 은행(SC은행·한국씨티은행·구 외환은행)이 탄생하기도 했다.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당시는 철저한 준비와 대책으로 국내 은행들에 큰 위기가 도래하지 않았다. 2009년 금융위원회는 한국은행에서 20조원 규모의 재원을 조달해 은행 후순위채 등을 매입해 은행자본을 확충했다.
우리땅에 우리 손으로 은행이 설립된 지 110여년이 지난 지금 한국 금융업은 또다른 발전의 길을 걷고 있다. 해외에 법인을 설립하며 진출의 발을 한발짝씩 내딛고 있다. 또 내부적으로도 저금리·저성장 시대에서 인터넷전문은행 등 새로운 길을 준비하고 있다. 자본에는 국적이 없다지만 일제강점기와 경제위기 등 어려운 시기를 함께 이겨내며 민족과 함께 한 은행들의 발전을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김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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