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미국, 임금 불평등 ‘판도라의 상자’ 연다
입력 2015-08-06 16:51 

미 규제당국이 상장기업 최고경영자(CEO)와 종업원간의 임금 격차 공개를 의무화하기로 결정했다.
기업 활동의 자유를 침해하고 불필요한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며 제도 시행에 반발해온 미국 기업들에 불똥이 떨어진 것으로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미 산업계 일각에선 임금 불평등의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는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5일(현지시간) SEC 표결을 통해 CEO 임금이 종업원 임금(중간값)의 몇 배인지를 재무제표처럼 공개하도록 하는 제도를 찬성 3, 반대 2로 통과시켰다. 공화당 측 위원 2명은 반대표를, 민주당 추천 위원 2명은 모두 찬성표를 던진 가운데 메리 조 화이트 위원장이 찬성표를 행사해 극적으로 통과됐다.
이번 결정으로 소기업이나 신성장기업으로 분류되는 경우 등을 제외한 대다수 상장회사는 2017년 1월 이후 회계연도가 시작할 때부터 사장과 종업원간 임금 격차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지난 2010년 시행된 금융규제법 ‘도드-프랭크법에 기업 CEO와 종업원간의 임금 격차를 보고하도록 하는 조항이 있었지만 기업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해 시행이 유보돼왔다. 회사 종업원들의 임금 중간값이 공개되면 타사 임금 수준과 비교돼 노사 갈등이 불거질 수 있고 사내 경영진과 종업원간 위화감이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임금 불평등은 해소해야 할 과제지만 임금격차 정보 공개가 해결책이 될 수는 없으며 정책의 ‘표퓰리즘 성격이 강하다는 불평도 제기됐다.
흐지부지 유보돼온 임금격차 공개 문제에 진보적 성향의 뉴욕타임스가 기름을 끼얹었다. 뉴욕타임스는 미 경제정책연구센터의 조사 결과를 인용해 로버트 아이거 월트디즈니 회장이 일반 종업원들 보다 무려 2238배나 많은 연봉을 받았다고 지난 4월 보도했다. 아이거 회장이 지난해 4370만달러(약 513억원)를 벌어들인 반면 디즈니 직원들의 연봉 중간값은 1만9530달러(약 2290만원)에 불과했다는 것.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CEO는 직원들보다 2012배 많은 연봉을 지난해 받았고 래리 엘리슨 오라클 회장은 임금 격차가 1183배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MS 측은 조사 숫자가 잘못 됐다면서 반발했고 오라클은 입장 표명을 거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자유시장경제의 선봉에 선 미국이 CEO의 거액 연봉을 문제삼고 나선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후폭풍 영향이 크다. 대규모 공적자금을 받은 AIG 등의 경영진들이 천문학적 연봉과 보너스를 챙겨간 사실이 밝혀지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 경제가 회복되는 점차 과정에서도 임금 불평등 문제는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미 근로자들의 임금 상승률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반면 최고 경영진들의 임금은 가파르게 오른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미 경제정책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미국 CEO들의 임금 격차는 1965년 20배에서 2013년 296배로 수직 상승했다.
미국 경제 회복의 온기가 빠르게 확산되지 못하는 원인 중의 하나로 지지부진한 임금상승률이 거론되기도 했다. 미국의 올해 2분기 임금상승률은 0.2%로 지난 1분기(0.7%) 보다 둔화됐다. 이는 1982년 이후 가장 낮은 임금 상승률이다.
보수 성향의 공화당 측은 임금 격차 공개가 투자자들에게 의미 있는 정보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노조의 입김만 키울 수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반면 민주당과 노조단체는 유용한 투자 기준인 동시에 과도한 CEO 연봉 관행에 제동을 걸 수 있다고 밝혀 정치·사회적 논란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뉴욕 = 황인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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