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 표범이고 싶어한 유승민 원내대표와 사퇴 권고 결의안
입력 2015-07-07 18:18  | 수정 2015-07-07 18:36
새누리당이 내일 의원총회를 열어 유승민 원내대표에 대한 사퇴 권고 결의안을 채택하기로 했습니다.

유 원내대표는 의총결과를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오늘 아침 최고위원회의에서 결정된 내용을 들어보죠



▶ 인터뷰 : 김무성 / 새누리당 대표 (오늘 브리핑)
- "최고위원회에서 그렇게 의논이 된 것이고 유승민 원내대표도 수용했어요. (만장일치로 결의안이 채택돼야 되는 건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앞서 새누리당에서 원내대표에 대한 사퇴 결의안을 낸 적이 있나요?) 그런 일은 없었을 겁니다. (내일 의총 끝나고 나서 재신임 받을 가능성은?)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떻게 해. (대표는 명예로운 사퇴를 요청하셨는데 결국 의총까지 가는 걸 어떻게 생각하세요?) …

최고위원들이 사퇴권고 결의안을 채택하자고 하는 얘기를 듣고 있던 유승민 원내대표는 회의장을 나왔습니다.

▶ 인터뷰 : 유승민 / 새누리당 원내대표 (오늘 긴급최고위서 도중 나와)
-"의총 결과를 따르겠습니다. 방식은 의총에서 결정될 것입니다. 제가 더 이상 있을 이유가 없고 나머지는 최고위원들이 알아서 하시겠죠. 전 하여튼 의총 소집 요구에 응했고 의총에서 결정되는 대로 따르기로 했습니다."

유승민 원내대표로서는 대통령의 부당한 퇴진 요구에 자신을 지켜줘야 할 당 지도부가 자신을 내모는데 앞장 선 상황을 어찌 이해해야 할까요?

회의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을 겁니다.



어쩌면 유 원내대표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이고자 했는지 모릅니다.

"아무리 깊은 밤일지라도 한가닥 불빛으로 나는 남으리
메마르고 타버린 땅일지라도 한 줄기 맑은 물소리로 나는 남으리
거센 폭풍우 초목을 휩쓸어도 꺾이지 않는 한그루 나무되리
내가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은 21세기가 간절히 나를 원했기 때문이야"
-조용필, 킬리만자로의 표범

유 원내대표는 내일 의총 결과가 뻔히 예상되는데도 자진사퇴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엄포에 놀라 스스로 물러나는 연약한 동물이 되기는 싫다는 뜻일까요?

최고위원회의 이후 김무성 대표는 청와대와 바로 소통할 수 있는 친박계 의원, 그리고 유 원내대표를 불러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이 자리에서 김 대표는 유 원내대표의 자진사퇴를 요구했지만, 유 원내대표는 "내 목을 쳐달라"는 말과 함께 끝까지 버티었다고 합니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서 내 말을 듣지 않는다"는 김무성 대표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이런 유 원내대표를 표범으로 생각하는 의원은 몇이나 될까요?

이재오 의원이 그 중 한명일까요?

이재오 의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내가 입당한 1996년이래 이토록참담한 때가없었다.

오늘 최고위원회 결정은 후안무치한 결정이다. 즉각취소되어야한다

모든 결정은 최고위가 사실상 해놓고 청와대 말 한마디에 원내내표를 희생양으로 삼는 것은 정치 도의적으로도 파렴치하다

청와대가 국회법 개정안의 재의 요구를 할수 는있어도 원내대표를 그만 두게 할 수는 없다

최고위는 의총이라는 이름을 빌려 그들의 책임을 회피하고 의총에서의 재신임까지 뒤엎고 청와대지시에 충실한다고 한다면 더 이상 최고위는 존재이유도 존재가치도 없다. 지금 물러나야 될 사람들은 최고위원들이다.

의원들이 선출하고 재신임까지 한 원내대표를 권력의 이름으로 몰아내고도 어떻게 정치혁신을 감히 말할수있겠는가 이러한 당에 미래가 있겠는가? 끝없는 권력투쟁만 되풀이 될 것이다.


이재오 최고위원은 아마도 내일 의총에서 사퇴권고 결의안이 채택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 표결이 이뤄져서 반대가 많기를 바라는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당 안팎에서 들려오는 얘기를 들어보면 새누리당 의원 대다수가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찬성한다고 합니다.

사퇴를 반대했던 비박계 역시 시끄러운 상황이 계속되는 것에 대한 피로도 때문인지 유 원내대표의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기울었다고 합니다.

표결은 당을 더 분열시키고, 유승민 원내대표를 두 번 죽이는 일인만큼 하지 않겠다는 기류가 강합니다.

결국 끝까지 표범이고자 하는 유 원내대표를 용기있게 감싸 보호할 수 있는 이는 아주 드문 상황이 됐습니다.

어찌됐든 대통령을 이기는 원내대표는 없다는게 증명됐습니다.

박 대통령은 오늘 국무회의 자리에서 의미 심장한 말을 했습니다.

▶ 박근혜 / 대통령
- "국무위원들께서도 국민을 대신해서 각 부처를 잘 이끌어 주셔야 합니다. 여기에는 개인적인 행로가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내년 총선 출마를 염두에 둔 장관들의 행보에 제동을 걸기 위한 발언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듣기에 따라서는 유승민 원내대표와 새누리당 의원들에 대해 강한 경고를 보낸 것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개인적 행로, 배신의 정치를 엄단하겠다는 의지가 새누리당 당사까지 전해졌음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번 일로 박 대통령 역시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여당 원내대표와도 소통이 되지 않는 불편함을 드러냈고, 그 불편한 감정이 국정운영 과정에서 거칠게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이는 분명 통치 리더십에 상처를 줄 만한 것입니다.

내일 아침이 오고, 다시 저녁이 되면 모든 것들이 제자리를 찾을까요?

유승민 원내대표가 떠난 뒤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자리는 금방 새로운 사람으로 바뀌겠지만, 유 원내대표가 남긴 정치적 여운은 꽤나 길게 그 흔적을 드리울 겁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이가영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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