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 역사 속의 오늘과 유승민의 버티기
입력 2015-07-06 19:14  | 수정 2015-07-06 19:25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국회법 개정안이 결국 자동폐기 수순을 밟게 됐습니다.

국회는 오늘 본회의를 열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재표결에 들어갔지만, 새누리당 의원들이 대거 불참하면서 정족수 미달로 표결이 성립하지 않았습니다.



▶ 인터뷰 : 정의화 / 국회의장
- "이 안건에 대한 투표는 성립되지 않았음을 선포합니다."

내년 4월 19대 국회가 끝나면 이 법안은 자동폐기됩니다.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은 재표결을 해야 하는 것은 헌법이 정한 국회의원의 의무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새누리당 내에서 이를 듣는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태경 의원만이 참으로 부끄러운 날이라고 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하 의원 역시 당론에 따라 표결에는 불참했습니다.


역사는 오늘을 어떻게 기억할까요?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국회가 표결조차 하지 못하고 법안을 폐기시킨 우스운 날로 기억할까요?

아니면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 했던 용기있는 행동이었다고 기억할까요?

▶ 인터뷰 : 김무성 / 새누리당 대표 (오늘 오후)
- "정부 내 법령 유권 해석 기관인 법제처에서 이와(국회법 개정안) 관련해서 위헌이라는 의견을 내고, 대통령께서 거부권을 행사하신 만큼, 집권 여당으로서 그 뜻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 국회 입법활동을 하는데 더욱 신중을 기하고 국민과 민생을 위해 매진하겠다는 약속을 드립니다. 죄송합니다."

역사가 기억할 사람은 또 있습니다.

유승민 원내대표입니다.

유승민원내대표는 법안 표결이 이뤄지지 않으면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연스럽게 사퇴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렸습니다.

하지만 유 원내대표는 사퇴하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사퇴 얘기를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버티기로 갈 것인지, 아니면 조만간 결심을 할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은 오늘 아침 최고위원회의 직후 유 원내대표와 차례로 독대를 갖고 사퇴를 종용했습니다.

▶ 인터뷰 : 유승민 / 새누리당 원내대표(오늘)
- "(오늘 중에 거취 관련해서 입장을 말씀하실 계획이 있으신지?) 오늘 본회의 잘 (처리)하는 게 우선입니다."

▶ 인터뷰 : 서청원 / 새누리당 최고위원(오늘)
- "내가 (유승민 원내대표에게) 몇 마디 얘기 했지만 여러분에게 공개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같이 잠시 얘기 나눈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유 원내대표하고 나눈 얘기를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는 것은 온당치도 않고 예의도 아니죠. (공개 발언에서 국회법 처리에 맞춰서 당이 조용히 정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말씀을 하셨잖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유 원내대표가 사퇴해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으신 거죠?) 그만합시다."

김무성 대표는 자신 역시 백의종군했던 시간을 언급하며 큰 정치인이 되려면 때로는 물러서야 할 때도 있다고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김 대표가 백의종군했던 때와 다릅니다.

유승민 원내대표가 지금 물러나면 그의 정치인생은 사실상 끝난다고 봐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있는 한 내년 4월 총선에서 공천을 받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합니다.

야인으로 적어도 5년을 떠돌아야 합니다.

그러느니 차라리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국회 위상을 지키려했던 명예로운 의원으로 남는 게 낫다고 판단하지 않을까요?

유 원내대표가 버티기에 들어가면서 친박계 의원은 부글 부글 끓고 있습니다.

▶ 인터뷰 : 김태흠 / 새누리당 의원 (오늘 오후)
-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서 국회에서 처리됐기 때문에 이에 대한 입장 표명과 자기의 거취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또 정확하게 추경까지 하고 물러난다는 얘기도 없이, 그건 무책임한 행동이다…."

비박계 역시 유 원내대표가 이대로 물러나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립니다.

▶ 인터뷰 : 정두언 / 새누리당 의원 (오늘)
- "제가 볼 때는 명시적으로 (원내대표 나가라.) 그렇게 얘기한 적은 없는데, 만약에 그게 그런 뜻이라면 그건 잘못된 거라는 거죠. 그래서 잘못된 걸 고치는 게 맞지, 그런 잘못된 건 놔두고 거기에 맞춰서 가야 하는 건 이상한 거죠. 그렇게 국가가, 국정이 운영돼서는 나라 꼴이 좀 이상해질 것 같습니다."



한 여론조사 기관의 자료를 보면 유승민 의원의 지역구인 대구 동구을 주민의 여론조사는 박 대통령이 유 원내대표를 포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사퇴를 요구하는 의견보다 더 높습니다.

(대통령 사퇴 요구 철회하고 포용해야 51.4%,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 43.2%. 폴스미스 대구 동구을 주민 1,000명 대상 4일 조사. RDD방식의 자동응답전화조사로 실시됐으며, 신뢰수준은 95% ± 3.1%)

다른 여론조사를 보면 전체 국민 여론도 사퇴보다는 사퇴 반대가 더 높습니다.

하지만, 정치평론가들은 국민 바람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이 유 원내대표를 용서할 리 없고, 유 원내대표가 버틸 힘도 없을 것이라는데 이견이 없습니다.

유 원내대표는 이런 여론 흐름도 알고 있을 것이고, 현실적인 한계도 알고 있을 겁니다.

어떤 선택을 할까요?

대통령이라는 권력과 이른바 대세를 거스르기에는 개인 유승민이 너무나 보잘 것 없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 무수한 역사에서 보았듯이 무모하지만, 용기있는 도전이었다고 스스로 평가하며 그 험한 길을 갈까요?

역사는 그 선택에 대해 어떻게 기록할까요?

아무래도 오늘 밤은 유 원내대표로서는 평생에서 가장 힘든 결정을 한 날로 기억될 겁니다.

그리고 박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 새누리당에 대해서도 어떤 식으로든 기록을 하게 될 겁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이가영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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