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토록 귀한 한국 미술 한자리에 모이다니...
입력 2015-07-05 15:23  | 수정 2015-07-05 22:21
청자진사 연화문 표형주자-함부르크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에 가면 두 번 놀란다. 교과서에서 봐 왔던 한국 미술 국보급 명품 140여 점이 한자리에 모인 것에 놀라고, 그 소장처에 다시 한번 놀란다.
지난 2일 '세밀가귀(細密可貴) : 한국 미술 품격'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개막한 이 전시는 올해 설립 11주년을 맞은 리움이 그 운영주체인 삼성문화재단 5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 있는 전시라 세간의 관심이 높다.
각계각층 인맥을 총동원해 영국 대영박물관과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은 물론이고 독일과 네덜란드, 일본 미술관에서 소장한 한국 미술 보물들을 대여했다. 국내와 일본 사찰 본당에 있는 불상뿐만 아니라 콧대 높기로 소문난 간송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 고려대박물관, 동국대박물관, 호림박물관도 모두 대표작을 보냈다. 소장처가 무려 40군데(해외 21개)다. 부여국립박물관의 얼굴인 국보 287호 '백제금동대향로'도 모처럼 서울에 왔다. 전시장에 나온 140여 점 가운데 국보가 21점, 보물이 26점이다. 삼성의 공력과 저력을 새삼 엿볼 수 있다.
'세밀가귀'라는 말은 12세기 고려 미술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는 사료인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1123년)'에 인용된 표현이다. 고려 인종 때 중국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를 방문한 서긍이 고려 나전을 일컬어 '세밀가귀', 즉 "세밀함이 뛰어나 가히 귀하다 할 수 있다"고 평한 데서 기인한다.

세밀가귀라는 키워드로 기원전 5세기 청동 거울부터 19세기 조선 청화백자까지 2300여 년을 꿰뚫었다. 세밀함과 정교함이라는 측면에서 디테일에 강한 한국 미술 면모를 보여주자는 기획 의지가 돋보인다.
특히 전 세계에 17점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희귀한 고려 나전 8점을 위한 특별 공간을 마련한 점이 눈에 띈다.
통일신라부터 조선시대까지 나전을 조망하는데, 독일 함부르크미술공예박물관과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에서 작품을 공수해 국내 처음으로 전시한다.
유물 시기가 방대하다 보니 장르별로 전시를 풀어나가기보다는 작품 제작 기법을 중심으로 '문양' '형태' '묘사'라는 세 부분으로 나눠 전시를 구성했다.
음각과 양각 등 장식 기법을 중심으로 한 '문양'에서는 신라 금귀걸이, 가야 금관, 고려 나전, 청감 청자들이 차례로 전시된다.
'형태'는 장인들이 손으로 빚어낸 모양의 아름다움에 주목했다. 1993년 온전한 형태로 출토돼 화제가 됐던 백제금동대향로와 일본 후묘지에 있는 '금동보살좌상',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청자투각칠보문향로'가 정제된 형태미를 자랑한다. 마지막 '묘사' 부문에서는 붓질의 섬세함과 아름다움이 도드라진다. 리움과 동국대박물관에 각각 소장된 청화백자 국보 두 점을 비교 감상하는 재미부터 '오재순 초상' '채제공 초상' ,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 간송 소장품인 '강산청원도' '어초문답도' 등 쟁쟁한 명품 고전들이 눈길을 확 휘어잡는다.
야심찬 기획전을 위해 삼성은 유리를 특수 제작해 작품과 관람객 거리를 최소화했다. 육안으로 보기 어려운 디테일을 위해 디지털 인터랙티브 기술을 활용했다.
전시를 기획한 조지윤 책임 큐레이터는 "조선시대 순백과 여백의 미(美)가 한국 미술의 전부인 것마냥 인식되고 있는데, 사실 한국 미술 최고 명품만을 꼽아보면 중국·일본에 뒤지지 않는 섬세함과 화려함, 정교함이 있다는 사실을 재조명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관람료는 일반 8000원. 이 전시는 9월 13일까지.
(02)2014-6901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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