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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파산한 STX다롄 고물 선박…670억짜리로 되살린 농협銀
입력 2015-07-02 21:22  | 수정 2015-07-03 11:55
중국 대련 장흥도에 STX대련조선의 파산으로 오도가도 못하고 3년째 정박해있던 초대형 가축운반선 D-1093이 다음달 말 한국으로 '금의환향'한다.
 2013년 4월 STX조선해양이 채권단 자율협약에 들어간 후 공정이 중단되고, 경매에 붙여져 중국 고물업체에 팔려나갈 위기에 놓이기까지 했던 배다. 이 배가 2년여만에 글로벌 축산업체인 호주 웰라드 그룹이라는 든든한 주인을 만나고, STX조선해양과 농협은행에 총 6000만불(약 670억원)을 돌려주는 '효자'가 됐다.
 선박 D-1093은 8월 말 경남 진해 STX조선해양으로 예인돼 수리를 받고 역대 최대 규모의 최신 가축운반선으로 다시 태어날 전망이다. D-1093은 200m 길이와 아파트 15층에 버금가는 24.3m 높이, 3만 5000톤의 무게를 자랑한다. 살아있는 소•양 같은 가축 수만마리를 호주 서부에서 동남아•중동 지역으로 운반하는 일종의 '가축용 선상 호텔'이다.
 D-1093을 최신식 가축운반선으로 재탄생시킨 숨은 공신은 농협은행이다. 농협은행은 D-1093을 웰라드 그룹에 매각함에 따라 과거 선수금환급보증(RG)용으로 대신 지급했던 800억원 상당을 회수할 수 있게 됐다. 국내 금융사가 RG 대지급금을 회수하는 데 성공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정식 농협은행 기업개선부장은 "모두가 가능할지 반신반의하는 가운데 중국 현지에서 협상을 적극적으로 이끌었다"며 "훌륭한 배를 살리고, 유출된 외화도 한국으로 다시 들여왔다는 데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D-1093은 STX조선해양이 STX대련조선에 하도급해 건조 중이던 배로 농협은행이 선수금 7100만불(약 800억원)에 대한 지급보증(RG)을 섰다. 보통 선주가 선박을 주문할 때 선수금을 지급하는 데 선박이 계약대로 인도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은행에 RG보험을 가입한다. 그런데 STX조선해양이 자율협약에 들어가고 STX대련조선 조업이 중단되면서 농협은행은 선수금을 고스란히 선주에 지급한 것이다. 농협은행은 RG대지급에 따른 담보처분권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에 있는 배를 어찌할지 몰라 난감한 형편이었다. 다른 금융회사들도 RG를 대지급한 배를 줄줄이 포기하고 있던 터였다.
 농협은행은 포기하지 않고 중국 현지 법원에 배에 대한 권리 주장부터 시작했다. 1라운드 상대는 중국 공상은행이었다. 공상은행은 STX대련조선에 청구할 채권을 구실로 D-1093에 가압류 조치를 해놓은 상태였다. 이에 대응해 농협은 양도담보처분권을 근거로 대련해사법원에 재산보전이의신청을 접수했다. 가압류가 해제되면 어떻게든 한국으로 끌고와 매각시킬 생각이었다.
 그런데 STX대련조선의 파산을 관할하던 대련인민중급법원이 경매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 강제로 공상은행의 가압류를 해제시켰다. 농협은행에는 경매로 낙찰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농협은행은 이미 글로벌 축산업체인 웰라드에 D-1093을 매각하려고 물밑작업을 진행하던 중이었다. 예전부터 STX조선해양과 거래해온 웰라드도 STX조선의 기술력을 인정해 D-1093에 눈독을 들여왔다. 90% 이상 완성됐는데도 불구하고 주인을 못 만나 버려진 D-1093은 웰라드에게 '진흙 속의 진주'였다. 눈치 빠른 농협은행이 웰라드 싱가폴 현지 법인을 직접 찾아가 선박 구매와 관련한 협약을 체결했다. 양광회 농협은행 기업개선부 특수금융개선팀장은 "D-1093의 기술력과 수익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면 웰라드같은 그룹이 선박을 확보하려고 애쓰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2라운드에서 농협의 전략은 경매에서 웰라드가 높은 금액에 낙찰을 받게 하는 것이었다. 1차 경매 때 뚜렷한 경쟁자가 없자 웰라드가 입찰을 포기하면서 경매가 유찰됐다. 웰라드 입장에서는 경매가 지지부진해져 낙찰가격이 떨어지는 게 유리하지만, 더 많은 금액을 회수해야하는 농협은 속이 탔다. 2차 경매 전후 중국 업체가 D-1093에 눈독을 들인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마음은 더 급해졌다. 잘못하다 D-1093이 중국 업체에 넘어가면 배를 지키기는 커녕 농협은행의 돈도 전부 다 떼일 위기였다. 막후 협상을 거듭한 끝에 지난달 26일 2차 경매일 웰라드그룹인 가장 높은 가격인 1700만불(190억원)을 제시하면서 낙찰을 받는 데 성공했다. 이로서 농협은 경매낙찰가와 재매수 합의금 1800만불 등 3500만불(약 400억원)을 회수할 수 있게 됐다. 또 웰라드가 STX조선해양에서 배를 수리하도록 제안해 수리비로 2500만불(약 280억원)을 추가로 받기로 했다. 기타 선박 관련 세금과 예인비 등을 고려하면 대지급한 비용 전부를 회수하게 된 것이다.
 농협은행에서는 이같은 성과가 임종룡 전 농협금융지주회장과 김주하 은행장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에 가능했다고 평가한다. 2013년 6월 취임한 임종룡 전 농협금융지주회장은 취임 직후 3대 경기민감업종 여신 특별관리 TF를 꾸리고 STX대출 관리를 직접 진두지휘했다. 양광회 팀장은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이 실무진들을 믿고 STX 관련 채권 회수를 앞장서서 지원해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라고 말했다.
[배미정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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