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화단에서 천경자(91)는 신화적인 존재다. 미국 뉴욕으로 건너간 그의 생사가 불분명하다고 해 대한미국예술원이 회원인 천 화백에게 매달 지급하는 수당 180만원 지급을 중단한지 벌써 1년 4개월이 지났다.
천 화백의 생사가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는 가운데 1989년작 ‘막을 내리고(41x31.5cm, 종이에 채색)가 14일 K옥션 여름경매에 나와 화제가 되고 있다. 1980년대 여인 작품 중 최고의 수작으로 꼽히는 이 작품은 미국에 사는 한국인 소장가가 오래 소장하고 있어 국내에는 처음으로 실물이 공개된다. 이 작품은 천 화백이 2006년 3월 ‘내 생애 아름다운 82페이지전을 기념해 대표작 14점을 선정해 한정 제작한 판화 모듬집에 실린 작품. 대중적으로 이미지가 많이 노출된 인기작이다.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여인 두 명의 초상을 그린 이 작품은 화면 전반에 노란색과 녹색의 보색을 사용해 강렬하고 화려한 느낌을 선사한다. 싱싱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작가는 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한결같이 목이 길고 멍한 눈동자를 지녔다. 의상은 화려하고 머리에는 예쁜 꽃을 꽂았지만 저는 그 화려함 뒤에 숨은 고독을 찾고 싶었다”고 토로한 바 있다.
이 작품의 경매 추정가는 8억5000만원이다. 지금까지 천경자의 국내 경매 최고가는 2009년 9월 K옥션에 출품된 ‘초원(105.5x130cm)으로 낙찰가는 12억원이었다. 이번에 나온 작품이 6호 정도로 당시 작품은 60~80호 정도 크기였다. 이상규 K옥션 대표는 천경자 인물화는 시장에서 ‘최고로 친다. 시장 분위기가 좋고 좋은 작품이 오랜만에 나온 만큼 경합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눈길을 끄는 천경자 작품 외에도 근현대미술 수작들이 대거 나와 주목된다. K옥션 여름 경매에는 총 218점(87억원 상당)이 출품돼 예전에 비해 도록도 상당히 두텁다.
도쿄미술대학 출신으로 한국 서양화 1세대 화가인 김인승의 ‘도기를 다루는 소녀가 추정가 1억6000만원에서 2억5000만원에 나왔다. 이 유화는 1987년 회고전 이후 처음 선보이는 작품이다. 박서보 윤형근 이우환 정상화 권영우 하종현 등 단색화 작품 뿐만 아니라 재조명이 활발한 고암 이응노와 수화 김환기, 고미술 작품도 눈길을 끈다. 세계적 조각가 중 한 명인 클래스 올덴버그, 솔 르윗의 대형 조각 작품도 소개돼 메이저 경매답게 다양한 작품들이 총출동한다. 조선 후기 투구인 ‘용봉문두정투구도 1억2000만원에서 2억원에 출품된다.
김환기의 뉴욕시대 작품 ‘Sounding-3-Ⅷ-68 #32가 추정가 6억5000만~10억원에, 박수근의 ‘노목과 어린나무는 3억5000만~5억5000만원에 나온다. 이와는 별도로 경매에선 법원, 예금보험공사가 매각을 의뢰한 공간사층책장, 청자상감죽학문매병 등도 경매에 부쳐진다. 프리뷰는 서울 신사동 K옥션 경매장에서 4일부터 13일까지 이어진다. (02)3479-8888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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