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권 정국으로 정국이 급속히 얼어붙으면서 국회가 또다시 멈춰섰다. 박근혜 대통령의 강경한 목소리에 대해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도 대국민 담화로 맞받아치면서 상황은 장기화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세월호 정국 속에 작년 약 5개월간 단 1건의 법안도 통과시키지 못했던 최악의 ‘식물 국회가 다시금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여야간 갈등이나 행정부와 입법부의 갈등으로 국회가 장기간 올스톱되는 사례는 역대 국회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2006년 17대 국회에서는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 사학법 개정에 대해 반발해 국회 일정을 보이콧하면서 약 2달간 국회가 개점 휴업 상태에 빠졌다.
이후 한나라당이 총선에서 승리했던 2008년 18대 국회는 임기가 개시되기도 전에 삐걱댔다. 미국산 쇠고기 사태가 터지면서 약 3달간 국회 문을 열지 못하고 파행 사태가 이어진 것이다. 2011년 11월엔 당시 민주당이 한나라당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단독 처리를 규탄하며 국회일정 전면 보이콧에 나선 결과 국회는 한달 동안 공전했다.
이렇게 역대 국회마다 파행 사례가 있음에도 19대 국회는 법안 처리 면에서는 역대 최악의 국회로 꼽히고 있다.
작년 세월호 정국이 대표적이다. 야당의 세월호특별법이 통과되기 전에는 어떤 법도 처리할 수 없다”는 발목 잡기에 국회는 올스톱됐고 민생법안은 하나도 통과되지 못했다.
여야는 국회 정상화를 위해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 선출 문제 등 세월호 특별법의 핵심쟁점을 두고 협상을 이어갔으나 의견 차이가 커 번번이 결렬됐다. 당시 박영선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야당 내 강경파 반발에 직면하면서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했던 합의를 2번이나 깨면서 리더십에 결정적 타격을 입기도 했다.
결국 작년 5월부터 9월 말까지 단 한 건의 법안도 처리하지 못해 ‘입법 제로(0) 국회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특히 19대 국회가 식물 국회의 대명사처럼 전락한 것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 국회선진화법의 영향이 크다. 국회선진화법은 여야간 몸싸움 등 폭력을 없애고 합의를 통해 국정을 잘 운영하자는 것이 근본 취지였지만 이내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이 없으면 사실상 법안 처리를 어렵게 만든 법 규정 때문이다.
여당이 의석 수에서 절대적 우위를 점하지 못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야당은 걸핏하면 ‘국회 보이콧 카드를 들고 나왔고 그때마다 국회는 부분적으로 파행이 이어졌다.
국회선진화법은 또 모든 법안이 연계 처리의 대상이 되는 부작용을 가져왔다. 여당이 원하는 경제활성화법안의 통과를 위해선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라 야당이 주장하는 법안과 함께 통과시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 거부권 사태도 야당이 공무원연금 개혁을 처리하는데 동의하는 대신 세월호법 시행령을 수정하기 위해 정부입법에 대한 국회의 수정 요구 권한을 강화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들고 나오면서 촉발된 것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번 거부권 정국도 작년 세월호 정국처럼 장기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대통령이 야당은 물론 여당까지 한꺼번에 비난하면서 정국은 꼬일대로 꼬여버렸다. 여당 입장에서는 대통령의 질책을 놓고 당내 갈등이 고조돼 야당에 먼저 손을 내밀기는 어렵다. 야당은 야당대로 국회 일정에 참여할 경우 항복 선언으로 비칠 수 있어 의사일정 협조는 받아들일 수 없다. 양쪽 다 꼼짝달싹할 수 없이 손이 묶인 상태인 것이다.
전문가들은 결국 대통령의 결자해지 밖에는 답이 없다고 강조했다. 국회선진화법이란 현실적 제약으로 인해 여야간 협상이 필수적인 상황에서 대통령이 여당을 ‘강(强) 대 강 상황으로 끌고 가선 산적한 현안을 푸는데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는 대통령이 김무성 대표도 만나고 문재인 대표도 만나 대화를 해야 정국이 풀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런 식으로 가면 국회와 정당 뿐만 아니라 대통령도 아무 일도 못한다. 감정싸움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국회와 함께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욱 배재대 교수도 우리나라는 아직 권위주의 시대의 제왕적 대통령에 익숙해서 국민들은 대통령에게 엄청난 힘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대통령도 뭐든 혼자서 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이제 그런 시대는 끝났고 무조건 의회와 협조해야 한다. 대화와 타협 말고는 길이 없다”고 지적했다.
[우제윤 기자 / 김강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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