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박근혜-김무성-유승민의 질긴 인연
입력 2015-06-25 16:37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국무회의에서 배신의 정치는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국민들께서 심판해야 한다”며 날을 세운 것을 놓고, 정치권에서는 박 대통령이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를 향해 ‘불신임카드를 던진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 때 ‘원조 친박(친박근혜)계 핵심이었던 김 대표와 유 원내대표가 이제는 비주류를 넘어 불신 대상으로 지목된 것이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여당 지도부가 야당과 공무원연금 개혁을 협상하면서 처리에만 급급해 미진한 개혁안을 통과시킨데다, 야당이 요구한 국회법을 청와대와 제대로 상의도 없이 받아주는 것을 보고 박 대통령이 이를 항명이나 배신으로 느낀 것 아니겠냐”고 풀이했다.
특히 지난달 28일 여야간 공무원연금과 국회법 연계 협상에서 유 원내대표와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이 공방을 벌인 것도 박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이 비서실장은 유 원내대표에게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더라도 국회법 개정은 막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한데 반해, 유 원내대표는 이미 청와대와 사전 협의를 했고 승인을 받았다는 취지로 해명한 바 있다.
청와대와 당 지도부간 갈등은 올 초부터 감지됐다. 비선 조직의 국정개입 의혹인 ‘십상시 논란이 터졌을 당시인 올해 1월 김 대표와 유 원내대표가 파문을 주도한 배후라는 주장이 청와대에서 흘러나왔다. 올 1월12일 본회의장에서 김 대표가 ‘문건파동 배후는 K,Y. 내가 꼭 밝힌다. 두고봐라라는 메모가 적힌 수첩을 들고 있는 장면이 포착됐고, 이후 청와대 관계자가 사퇴하는 선에서 봉합이 됐다. 또 유 원내대표는 취임 이후인 지난 4월8일 교섭단체대표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임이 입증됐다”며 박 대통령의 경제정책 기조에 날을 세우기도 했다. 이런 잠복된 갈등이 국회법 개정안을 계기로 터진 셈이다.

과거를 살펴보면 박 대통령, 김 대표, 유 원내대표간 인연은 필요에 따라 분열과 봉합을 반복했다. 김 대표는 박 대통령이 2005년 한나라당 대표를 역임할 당시 사무총장을 맡은데 이어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는 선거를 진두지휘했다. 경선에서 패하자 눈물까지 흘렸다.
하지만 둘은 2010년 세종시 수정안 정국에서 김 대표가 수정안을 지지하자, 박 대통령이 친박에는 좌장이 없다”고 말하면서 멀어졌다. 이후 김 대표는 친이계 지원으로 원내대표를 맡아 갈라섰다. 하지만 2012년 4.11 19대 총선에서 김 대표가 공천에서 탈락하자 무소속 출마 대신 불출마를 선택했고, 그 효과로 당내 갈등이 봉합되자 박 대통령(당시 비대위원장)은 고맙다”고 전화를 걸었다. 박 대통령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김 대표에게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총괄본부장을 맡기며 손을 내밀었다.
박 대통령과 유 원내대표간 인연은 2005년에 당대표와 비서실장으로 맺었다. 사석에서 유 원내대표가 박 대통령을 향해 ‘누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가까운 관계였다. 또 2007년 대선 후보 경선에서는 ‘MB 저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2012년 유 원내대표는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당명 개정에 반대했고 복지 강화를 요구하면서 대립을 했다. 작년 10월 국회에서는 미국하고 중국 사이에서 우리가 어떤 포지션을 취할 것이냐”면서 외교부에서 누가 하냐? 청와대 얼라들이 하냐?”며 청와대 참모진을 질타하기도 했다. 여당 일각에선 이번 당청 균열과 관련해 김 대표가 당분간 몸을 낮추며 물밑 노력을 벌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나, 청와대와의 관계 복원 여부는 미지수다.
[이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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