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누군가는 낫고 누군가는 죽고…메르스 왜 그럴까
입력 2015-06-19 11:26 
메르스-민간병원 군 의료진 파견 [사진공동취재단]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감염 첫 확진자가 발생한 지 한달이 지났다. 시간이 갈수록 30~40대 감염자가 늘고, 평소 기저질환이 없는 50~60대 사망자도 증가하고 있다. 특히 천식, 당뇨, 폐렴,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등을 앓고 있는 일부 환자들은 메르스에 감염되면 증세가 빠르게 악화돼 며칠을 못넘기고 사망했다. 일반적으로 폐렴이나 천식 환자는 항생제를 사용해 완치하거나 생명을 연장하지만, 메르스에 감염된 일부 호흡기질환자는 빠르면 하루 이틀, 늦어도 보름만에 사망했다.
폐질환을 앓았던 3번째, 6번째 환자는 각각 메르스 확진 보름, 나흘만에 사망했다. 또 천식과 COPD를 앓았던 23번, 24번, 25번, 36번째 환자는 각각 12일, 11일, 당일, 사흘만에 사망했다. 폐렴과 폐암을 알던 84번, 83번째 환자는 각각 하루, 나흘만에 목숨을 잃었다.
호흡기 기저질환이 없는 건강한 사람들도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거나 사망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의사인 35번째 환자(38), 평택 경찰인 119번째 환자(35)는 모두 30대로 비교적 건강한 상태였지만 심폐보조기인 ‘에크모(ECMO)를 착용하고 완치자 혈장치료를 받을 정도로 현재 상태가 불안정하다. 또한 특별한 기저질환이 없는 50~60대 감염자들도 사망했다.
이같은 양상을 놓고 전문가들은 메르스 전파력이 사스나 신종플루보다 낮지만 일부 환자들의 경우 일단 몸안에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증식(복제)속도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되는 게 아닌가하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기저질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상태가 더욱 악화되고, 일부 건강한 사람은 면역물질인 사이토카인(cytokine)이 과다하게 분비돼 보호해야 할 장기를 오히려 망가뜨리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가설이고 추측이지만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상현 경상대 수의학과 교수는 RNA 바이러스 증식은 사례가 워낙 다양하고 케이스가 많아 확정지어 말할 수는 없다”면서도 바이러스 종류나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다”고 말해 사람에 따라 메르스 바이러스의 빠른 증식속도 가능성을 시사했다. 송대섭 고려대 약학대 교수는 감염자수가 늘어나다 보면 개중에 바이러스 복제가 활발하게 일어나면서 병이 급속도로 진행되는 환자가 나올 수 있다”고 한 인터뷰에서 설명했다.
몸에 들어온 바이러스 양이 중요한 요인이라는 주장도 있다. 엄중식 한림대 강동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한꺼번에 많은 양의 바이러스에 노출되면, 지병이 없는 건강한 사람이라도 치명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폐질환자 사망경로는 메르스 감염→바이러스성 폐렴(세균성 폐렴) →폐기능 급격히 저하→호흡곤란 또는 패혈증을 거치는 것으로 추정된다. 보건복지부가 전국 모든 병원에 입원 중인 폐렴환자를 대상으로 메르스 의심환자 전수 조사를 실시한 이유도 폐질환의 메르스 노출 위험을 심각하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9년 발생해 270명 목숨을 앗아간 신종플루 역시 폐질환자들이 주로 희생됐다.
폐기능이 떨어지는 만성 질환자는 폐활량이 부족해 공기(산소) 순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당연히 폐포까지 도달한 바이러스가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폐에 달라붙어 서식하면서 폐조직을 파괴시키는 염증(폐렴)을 일으키며 각종 폐질환을 유발한다. 호흡기가 건강해야 산소가 풍부한 맑은 공기를 마셔서 폐를 통해 뇌와 심장에 깨끗한 산소를 공급한다. 맑고 깨끗한 산소는 혈액과 함께 혈관을 타고 우리 몸 구속구석을 돌며 나쁜 병원균을 죽이고 각종 장기들을 튼튼하게 해준다. 면역력이 증강된다는 얘기다.
폐기능은 나이가 들면서 떨어진다. 평소 장기간 흡연을 했거나 천식을 앓고 있다면 폐기능은 더 빨리 악화된다. 호흡기 기관에 있는 섬모세포들 숫자가 줄고 남아있는 세포들도 기능이 약해진다. 이처럼 폐기능이 떨어진 상태에서 메르스 바이러스에 감염된 비말이 폐포에 침투해 빠른 속도로 증식하면 급성호흡곤란으로 이어져 사망에 이르게 된다. 직경이 5μm(μm=100만분의 1m)보다 큰 침방울을 비말(droplets)이라고 하는데, 다른 사람 호흡기로 들어가면 코나 기관지 등 상부 호흡기 점막에 달라붙는다. 그중 작은 비말입자는 수분증발이 되면 쪼그러지면서 비말핵이 되어 폐포까지 침투한다.
바이러스의 빠른 증식(복제)은 ‘사이토카인 폭풍(cytokine storm)을 유발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사이토카인 폭풍이론은 1993년 미국 미시간대 암센터 제임스 페라리가 처음 사용한 용어다. 1918년 스페인 독감 유행 때 젊은층 사망이 다른 판데믹(대유행 감염병)보다 20배 이상 높은 이유를 찾기위해 ‘바이러스 독성과 ‘폐에서의 바이러스 증식능력을 조사한 결과, 일반 유행성독감보다 무려 3만 9000배 이상 증식된 바이러스가 관찰됐다. 과도한 바이러스 증식은 면역체계 혼란을 초래해 면역세포가 과도하게 감염세포 주위에 몰려 아군·적군 구분없이 죽여 오히려 보호해야할 숙주 장기조직을 망가뜨린다. 그 후유증으로 출혈, 염증, 체액 등이 폐속에 가득차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스페인독감에 이어 1998년 말레이시아 니파뇌염, 2003년 중국 사스, 2009년 신종플루 초기 때 관찰됐다. 최강석 바이러스 전문가(국립수의과학검역원·‘바이러스의 습격저자)는 젊은층은 대부분 질병을 이길 만한 강한 저항력을 갖추고 있지만, 면역반응이 너무 왕성하다 보니 사이토카인 통제능력을 쉽게 상실할 수 있는 게 문제”라고 설명했다.
최원석 고려대 안산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메르스가 20~40대에서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지만 사이토카인 폭풍 발생 가능성이 전혀 없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면서 하지만 현재 젊은 층이 고위험군이 아니라서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한 대학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메르스가 사이토카인 폭풍과 연관됐다는 연구결과는 없지만 젊은 층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인체 내에서 바이러스 증식속도가 빨라 슈퍼 전파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메르스의 사이토카인 폭풍 현상이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는 목소리도 있다. 고윤석 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폐포의 상피세포를 침범해 급성호흡곤란이 생겨서 인공호흡기를 다는데, 그래도 상태가 회복이 안 되면 에크모를 쓰게 된다”며 환자가 갑자기 에크모를 달았다고 해서 사이토카인 폭풍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고 교수는 염증매개물질로 인해 장기부전이 발생한 것은 맞지만 사이토카인 폭풍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기저질환이 있는 고령층 뿐만 아니라 젊은층에게 위협적인 메르스감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치료시기다. 최재필 서울의료원 감염내과 교수는 메르스는 발병 초기 인터페론, 리바비린 등을 투약하는 항바이러스 치료를 시작하면 가볍게 잃고 넘어갈 수 있다”며 그러나 폐렴으로 진행된 뒤 뒤늦게 치료를 시작하면 결과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 동안 완치된 감염환자들은 거의 모두 면역력이 좋은 젊은 사람들이거나 치료를 빨리 시작한 사람들이다.
[이병문 의료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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