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에서 근무하는 김형일 씨(24·가명)는 매달 200만원에 불과한 월급에서 60%를 떼어 빚 상환에 쓰고 있다. 김씨가 인터넷 도박의 성지인 스포츠토토에 발을 담근 건 지난 2012년. 은행에 돈 넣으면 손해다. 토토 하는 게 훨씬 이득”이라는 친구의 유혹에 넘어간 게 화근이었다. 입대한 뒤에도 휴가를 나오면 습관처럼 토토를 했다. 전역 후에는 대출까지 받아 현재 진 빚만 2800만원에 달했다. 김씨는 불시에 걸려오는 상환독촉 전화에 이제는 잠도 잘 못잘 지경”이라고 했다.
예금금리가 0%대인 초저금리 시대를 맞아 서민과 젊은 층 사이에 ‘한탕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더 이상 은행에 예·적금을 넣는 것으로는 돈을 모을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지면서 서민들은 사행성 도박과 주식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 결과 재(財)태크가 아닌 ‘재(災)태크가 되고 있다.
대학생 이창민 씨(24·가명)는 경남에서 군복무를 마친 뒤 DVD방 아르바이르를 했다. 하루 8시간씩 일하며 받는 저임금이지만, 일부는 꾸준히 은행에 예금했다. 하지만 금리가 거의 제로인데 바보같이 은행에 넣냐. 한 번에 수십만원 벌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친구의 꾀임에 넘어가면서 마약과 같은 인터넷 도박에 빠졌다. 저축해둔 돈 마저 탕진한 그는 결국 제2금융권 학생 대출로 1000만원, 대부업에서 500만원을 꿨다. 전액 배팅했지만, 이마저도 결국 다 잃었다. 이씨는 도박에 빠지기 전으로 시계태엽을 돌리고 싶다”고 했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에 따르면 초저금리 시대와 함께 도박 중독자 수는 가파르게 늘고 있다. 지난 2009년 도박 중독 상담자는 883명에 불과했지만, 이듬해 1774명으로 두 배로 늘더니, 지난해 1만233명으로 6배 이상 껑충 뛰었다. 더욱이 ‘2030세대가 전체 도박 중독 상담자의 60%를 웃돌았다.
도박중독치유센터를 거쳐간 ‘2030 세대는 2009년 29.2%에서 2010년 30.2%, 2011년 35.4%로 해마다 늘더니 지난해 64%를 차지했다.
서울도박중독예방치유센터에 따르면 집단 치유 프로그램은 지난해 8900건으로 5년전에 비해 18배 늘었다. 개인상담도 지난해 1만2541건으로 6년 새 14배 늘었다.
예·적금 재태크 시대의 종언은 서민의 눈길을 도박과 함께 주식투자로 돌리게 하고 있다. 중소기업 직장인 유 모씨(36)는 최근 은행에서 연간 3.5% 금리로 4000만원의 대출을 받았다. 주식시장 호황 뉴스를 접한데다, 주변에서 재미 좀 봤다는 얘기에 귀가 솔깃했다. 인터넷 카페 등을 수소문하다 한 코스닥 상장사에 주식을 소위 ‘몰빵(전액 투자)했지만, 두달 만에 3만원대 주가는 2000원대로 고꾸라졌다.
박대근 한양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초저금리 시대를 맞아 서민들이 고부담 상품 투자나 도박 등 한탕주의에 빠질 개연성이 커졌다”며 예금으로 돈을 불릴 수 있었던 과거 세대에 반해 단순 예금 만으론 노후 대비가 힘들다는 인식이 일반화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는 장기적으로 예측 가능성이 높은 예·적금 메리트가 사라지면서, 고부담 제태크나 도박에 뛰어드는 서민들이 많아졌다”며 이들에게 올바른 금융교육을 제공해 자산관리를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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