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엘리엇 파킹거래했나…`5%룰` 위반 가능성
입력 2015-06-16 17:44  | 수정 2015-06-16 22:03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7.12%의 삼성물산 지분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파킹거래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다른 사람 명의로 주식을 분산해 사들인 뒤 이를 일정 시점에 한꺼번에 엘리엇 명의로 전환시켰을 가능성이다. 이럴 경우 실소유자를 기준으로 신고해야 하는 '대량 보유 및 변동 보고(5% 룰)' 규정을 위반한 셈이 되는 것이다.
16일 한국거래소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엘리엇은 삼성물산 주식을 지난 3일 339만3148주 매입해 총 1112만5927주(7.12%)를 보유하게 됐다고 지난 4일 공시했다. 2일까지 773만2779주(4.95%)를 보유하고 있었음을 감안하면 하루만에 지분을 2.17%나 늘린 것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3일 총매수량(417만3630주)의 81%를 엘리엇이 차지할 정도로 적극적인 매수세가 있는 상황에서 주가는 오히려 0.79% 하락한 것을 보면 이미 사전에 차명 계좌나 증권사 명의 등을 통해 확보해 놓은 지분을 장내에서 매매를 통해 엘리엇 소유의 계좌로 옮긴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3일 거래량이 큰 주요 외국계 증권사인 씨티(매수 189만2966주, 매도 189만4851주), 메릴린치(매수 71만854주, 매도 70만7915주), CS(매수 44만5207주, 매도 45만5250주) 등의 매수, 매도량이 비슷했던 점을 지적하면서 엘리엇과 사전에 약속된 이들이 대규모 물량 거래를 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러한 거래 패턴을 두고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스왑북 거래'를 한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스왑북(SWAP Book)이란 투자자들의 편의 또는 요청에 의해 거래 증권사의 명의로 주식 등을 일단 거래하되 그 실질적인 소유권은 투자자에게 있는 거래 형태를 말한다. 해외투자자 상대 경험이 풍부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일정 시점까지 실질적인 투자 주체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헤지펀드 등이 주로 사용하는 거래 기법"이라고 설명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공시가 나왔던 5월 26일에도 비슷한 거래 양상이 나타난다. 이날 거래량이 많았던 외국계 증권사인 맥쿼리, 노무라, 비엔피 등의 창구에서 일어난 매수, 매도량은 모든 비슷한 규모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5일 외국인투자자의 매수량은 24만주, 매도량은 15만주에 그쳤지만 26일에는 매수량이 429만주, 매도량이 420만주로 치솟았다. 외국인투자자의 매수량과 매도량이 어느 한쪽만 급증하지 않고 양쪽이 비슷한 수준으로 급증한 것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3일 이전부터 엘리엇이 차명 계좌 등을 통해 삼성물산 지분을 5% 초과 확보한 상태로 보이기 때문에 5% 초과 지분 보유 시 5일 내 보고해야 하는 '5%' 룰을 어기고 지연보고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5% 초과 지분 보유를 지연보고했을 경우 주의나 의결권 제한조치를 받을 수 있고 고의성이 입증될 경우는 과징금을 부과하거나 형사고발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엘리엇 측 관계자는 "차명으로 가지고 있다가 갑자기 나타날 이유가 없다"며 "과거부터 법적 대응에 능한 엘리엇이 법적으로 꼬투리 잡힐 일을 할 리가 없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아직까지 조심스러운 반응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차명계좌를 이용했다거나 고의성을 가지고 지분 공시를 했다는 혐의를 아직 찾지 못했다"며 "차명계좌 등을 이용했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을 밝히는 데까지는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은 일단 모니터링에 집중하는 단계"라고 밝혔다.
■ 용어설명
▷ 파킹거래 : 실제 소유주가 보유 주식·채권 등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 다른 사람 계좌에 임시로 맡겨 놓는 거래로 불법행위다.
[박준형 기자 / 용환진 기자 / 강봉진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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