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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기자24시] 객관적이나 공정하지 않은 대한민국 음악 순위
입력 2015-06-11 15:04  | 수정 2015-06-11 17:21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조우영 기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989)란 영화가 있었다. 성적 지상주의에 빠진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과 삶의 진정한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 성장영화였다. 25년 여가 지난 현재 달라진 것은 없다. 주변을 둘러보면 이 영화의 축소판은 많다. 각 분야 곳곳에서 숫자 놀이는 계속되고 있다.
가요계도 마찬가지다. 서로 자기가 1등이라고 주장한다. 음원·음반·방송 등 분야도 여러개다. 멜론 지니 몽키3 등 국내 주요 음원 차트는 11개다. KBS·MBC·SBS 지상파를 비롯해 케이블TV까지 포함하면 음악 방송 순위 프로그램은 총 6개다. 매주말이면 누가 트로피를 몇개 들어올렸느냐, 누가 누구를 꺾었느냐 난리다.
요즘은 빅뱅과 엑소의 순위 다툼이 치열하다. 최정상 아이돌 그룹의 맞대결이 흥미진진하다. 길어야 1~2주면 인기가 시들해지는 21세기 가요 시장에서 이들은 이례적으로 '롱 런'하는 특급 스타이기도 하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이들을 제치고 '잠시'라도 1위를 했거나 어깨를 나란히만 해도 소속사는 호들갑이다. 아성을 깼으니 우리 가수 존재감이 대단하지 않느냐는 식이다. 이러한 자화자찬 보도자료에 일부 기자들도 맞장구를 쳐준다. 타당성을 떠나 차트 순위 사실만 맞다면 객관적으로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문제는 어른들의 상술이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마케팅 논리로 접근하겠다는 데 어쩌라는 것이냐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 정도가 유별나다.
대표적인 사례가 음원 사이트 실시간 차트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차트다. 30분~1시간마다 음원 다운로드·스트리밍 수를 종합 집계해 순위를 업데이트하는 방식이다. 미국 빌보드와 일본 오리콘은 장르별 일간·주간·월간 차트만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 음악사이트는 시간대별로 순위 집계를 한다. 산술적으로만 따지면 하루에 1위곡은 총 24개까지 나올 수 있다. 11개 음원 차트별로 따지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물론 시간대별 1위를 만든다는 것조차 쉬운 일은 아니나 팬들을 다수 확보한 가수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막강한 자본력이 투입된 프로모션과 대중의 호기심이 더해지면 최소 한 개 음악 사이트에서 '반짝 1위'는 어렵지 않다.
결국 1위 가수가 너무 많아 피로감이 들 정도다. 덕분에 상(賞)의 권의는 바닥이다. '그들만의 리그'라는 비아냥이 나온다.
가요 제작자는 소속 가수에 1위 타이틀을 안기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 덤으로 이득을 얻어서다. 방송 출연료는 푼돈이다. 방송을 통해 인지도가 높아져야 수 천 만원짜리 광고·행사를 따낸다. 그러려면 일단 음원 순위가 좋아야 한다. 유통사 입장에서는 '우리 오빠·누나(아이돌)가 경쟁 상대에게 지고 있다'는 팬심을 자극해야 음원을 많이 팔기 쉽다. 유통사가 투자한 가수라면 금상첨화다.
가요계에서는 실시간 차트가 없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지 오래다. (앨범 수록곡을 디지털 싱글로 나누어 발매하는) 음원 '쪼개기'와 '줄 세우기' 등으로 팬덤의 경쟁심을 유발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한 때 일부 기획사의 '음원 사재기' 논란까지 나온 배경이다. 공 들인 곡을 묻히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이해하나 대형기획사와 중소기획사간 빈부 격차가 심해질 수밖에 없다.
박진영 JYP 대표 프로듀서는 얼마 전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제작자의 불안한 심리를 잘 잡아낸 게 음원사이트 실시간 차트다. 우리 직원들을 보면 마치 주식하는 사람들처럼 그 그래프를 들여다보고 있다. 내가 아무리 과정을 강조해도 직원들이나 언론 대부분 결과만 이야기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순위를 집계할 때 음원 판매 비중을 가장 높게 잡고 있는 방송사도 나름의 자사 이익을 꾀하는 측면이 있다. 방송 점수나 시청자 선호도라는 명목으로 자사 타 프로그램 출연 공헌도를 따진다. 심지어 사전 (인기) 투표는 유료다. 문자 한 통당 100원. 시스템 운영비 수준일 수 있다. 다만 참고할 자료가 있다. 최근 논란이 된 SBS '인기가요' 사전 투표에서 빅뱅의 '배배' 한 곡의 단 이틀간 투표 수는 약 4만 건으로 알려졌다.
순위에 대한 집착은 가수 당사자들에게도 부담이다. 올해 3년차인 한 아이돌 그룹 A는 "사활을 걸었다"고 했다. 음원 차트 상위권에 들지 못하면 팀 자체가 존폐 위기다. 이러한 사활은 좋은 음악을 만드는 데 집중될 수 없다. 눈에 보이는 퍼포먼스나 인기 예능 프로그램 출연에 목말라 한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다수 아이돌 그룹의 목표는 방송 차트 1위다. "오래 남는 음악을 하고 싶다"거나 "가슴을 울리는 음악을 하겠다"는 공식적인 바람은 차트에서 1위를 하고 인기를 얻은 뒤 가능한 현실이다.
박진영은 "음악 방송 순위, 음원 사재기 의혹 등 지금 가요계는 내가 보기에 객관적일 수 있어도 공정하다고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내가 당장 힘들지 않지만 신생 기획사에서 신인 가수 한 명 데리고 시작한다고 상상하면 끔찍한 현실이다. 각자의 셈법 속 힘이 없으면 싸울 수 있는 판 자체가 되지 않는다." 이것이 국내 대표 가요 기획사 수장의 말이다.
곱씹어 볼수록 쓰기만 하다. '달콤한 과일' 멜론 실시간 음원 차트 100위권에도 없는, 음악 방송에 단 한 번 출연 못한 가수의 노래를 대중이 찾아 듣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창작자에게 돌아가는 돈이 곡당 10원꼴도 안 되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해 실시간 차트 순위 대로 듣기 바쁜 우리나라에서는 음악도 성적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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