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뮤지컬로 재탄생한 대하소설 `아리랑`
입력 2015-06-09 16:14 

3년전 소설가 조정래 선생(72)은 대하소설 ‘아리랑(전12권)을 뮤지컬 무대로 옮기는 것을 흔쾌히 허락했다. 일제 강점기 파란의 시대를 살았던 민초들의 삶과 사랑, 투쟁의 역사를 현대 뮤지컬 언어로 되새기는 작업에 의미를 뒀다.
9일 서울 충무아트홀에서 만난 그는 역사는 오늘을 비추는 거울이자 미래를 가르치는 나침반이다. 마침 올해는 광복 70주년이다. 한반도는 작은 땅이고 5000년 세월 동안 131번의 외침을 받았다. 그 끄트머리에서 나라를 잃어버린 굴욕과 치욕, 저항의 역사를 반드시 기억하고 새 삶의 방향타로 삼아야 한다. 망각의 딱정이를 뜯어내서 생채기에 소금을 뿌리는 일이지만 좋은 작품으로 탄생시켜 이 땅을 대표하는 좋은 뮤지컬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제작자인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52)는 부담이 컸다. 3년 동안 공들이고 제작비 40억원을 투입한 대형 창작 뮤지컬 ‘아리랑을 세상에 내놓는다. 7월 16일~9월 5일 LG아트센터.
박 대표는 7년전 차범석 희곡 ‘산불을 뮤지컬 ‘댄싱 셰도우로 만들어 쫄딱 망했다. ‘아리랑은 그 전철을 밟지 말아야겠다는 각오로 후회없이 열심히 만들고 있다. 뮤지컬 ‘아이다에서 조국을 잃고 핍박받는 누비아 백성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처절한 아리아가 감동적이었다. ‘아리랑도 못지 않은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뮤지컬 제작 과정에서 오디션은 없었다. 참여하고 싶은 배우 위주로 캐스팅했다.
주인공인 독립 운동가 송수익 역을 맡은 안재욱(44)은 2000년 뮤지컬 ‘렌트 초연에서 박 대표와 인연을 맺었던 배우다. 최근 결혼식을 올린 안재욱은 신혼여행을 포기하고 연습실로 왔다.
그는 훌륭한 배우가 많은데 감히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줘서 너무 감사하고 책임감을 느낀다. 송수익을 잘 표현하는 것은 어깨에 무거운 짐이다. 객석에서 ‘아리랑 공연을 보면 속상할 것 같아서 참여했다. 우리 색시(뮤지컬 배우 최현주)가 적극적으로 권유했다”며 소감을 밝혔다.
조 선생은 그에게 아이는 둘 이상 낳아라. 내가 아들 하나만 두니 외로워하더라”며 결혼 축하 인사를 건넸다. 그 옆에서 박 대표는 재산이 아니라 형제를 물려줘라”며 맞장구를 쳤다.
조 선생은 이날 뮤지컬 대본을 처음 받았다. 뮤지컬에는 절대 개입하지 않는다는게 원칙이었다.
조 선생은 작가 생각을 무대 특성에 맞게 바꾸도록 도와야 한다. 내 욕심 때문에 산으로 갈 수 있다. 헤밍웨이는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시사회에서 감독에게 주먹을 날려 코뼈가 부러졌다. 작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좋은 교훈을 준다”며 웃었다.
그는 절절한 각오로 ‘아리랑을 썼다. 보통 작품 제목을 정할 때 100개 이상 쓴 후 하나씩 지워가면서 마지막 남은 것을 선택했지만 이 작품은 ‘아리랑이 첫번째로 떠올랐다.
조 선생은 아리랑이 애국가를 대신했다. 우리는 그 속에 녹아있다. 소설 속 가장 매력있는 인물인 공허스님을 통해 만주 벌판 동포에게 ‘당신들 하나하나는 조선이라고 말했다. 김성녀 선생(감골댁 배역)이 ‘우리는 의병처럼 연기한다고 해서 감동했다. 대본을 보지 않아도 이 작품이 잘 되리라고 생각한다”며 흡족해했다.
40년 세월이 흐르는 대하소설을 2시간 40분 남짓 뮤지컬 속에 응축시키는 작업은 고단했다.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와 연극 ‘푸르른 날에를 매진시킨 스타 연출가 고선웅은 너무 대단한 작품이어서 파면 팔수록 늪에 빠지는 느낌이다. 다행히 내 유전자 속에 아리랑이 들어 무대 언어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됐다. 슬프지만 겉으로는 슬프지 않게, 애통하지만 카타르시스가 있는 ‘아리랑을 만드는게 목표”라고 했다.
무대는 고루하지 않다. 첨단 전자동 세트 속에 과거를 담는다. 음악은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신아리랑을 기반으로 클래식과 뮤지컬 어법을 섞는다. 지리산 정기를 받아왔다는 작곡가 김대성은 전자 음향을 배제하고 20인조 오케스트라로 편성했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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