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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의 이승엽 피해가기 논란 ‘막전막후’
입력 2015-06-01 06:01  | 수정 2015-06-01 07:26
지난달 31일 잠실구장서 열린 "2015 KBO리그"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와 LG 트윈스의 경기, 9회초 2사 2루서 삼성 이승엽이 볼넷으로 출루한 뒤 씁쓸한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옥영화 기자
[매경닷컴 MK스포츠 서민교 기자] 이승엽과 정상적으로 승부하겠다. 평소 경기와 똑같이 한다면 볼넷이라도 비난해서는 안 된다.”
양상문(54) LG 트윈스 감독이 취재진 앞에서 공언을 한 뒤 불과 4시간 만에 거센 비난에 시달리고 있다. 31일 잠실 LG-삼성전에서 나온 ‘이승엽 피해가기 논란이다.
이날 경기는 이승엽(39·삼성)에게 온통 관심이 집중됐다. 이승엽은 KBO리그 사상 첫 개인 통산 400홈런 달성에 1개만 남겨두고 있었다. 취재진도 몰렸고, 구름관중도 잠실구장을 찾았다. 외야에는 잠자리채가 등장했고, 이승엽이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2만 관중이 들썩인 날이었다.
이승엽은 9-3으로 크게 앞선 9회초 2사 2루서 마지막 타석에 들어섰다. 이승엽은 앞선 타석에서 2루타 1개와 파울 홈런 뒤 몸에 맞는 볼로 기대감을 고조시킨 터였다.
들썩이던 관중석은 일순간 야유로 물들었다. 이승엽이 스윙 한 번 하지 못하고 볼넷으로 출루했기 때문. LG 구원투수 신승현은 바깥쪽으로 한참 빠진 볼을 연속으로 4개 던졌다. 포수 유강남도 바깥쪽으로 빠져 앉아 볼을 유도했다. 의도를 떠나 결과는 고의4구에 가까웠다.
그렇게 이승엽의 역사적인 400홈런 대기록을 볼 수 있는 기회는 포항구장으로 넘어갔다.

▲ 벤치 사인은 없었다”
‘이승엽 피해가기 논란이 벌어진 뒤 LG측 입장이 궁금했다. 양상문 감독과 강상수 투수코치의 직접적인 말은 들을 수 없었다. 대신 포수 유강남을 통해 어느 정도 정황을 파악할 수는 있었다.

첫 번째 궁금증은 벤치 사인 여부였다.
이날 경기 직전 양상문 감독은 이승엽을 상대로 투수가 부담 되는 것은 있다. 하지만 정상적으로 승부를 하겠다. 대기록을 막기 위해 고의4구를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덧붙여 제구가 되지 않아 볼넷을 내주거나 경기 상황에 따라 평소와 똑같이 한다면 그런 것으로 비난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중요했다. 경기 상황은 6점차로 벌어져 고의4구를 해야 할 정도의 접전이 아니었다. 벤치 사인이 있었다면 경기 전후 말이 달라진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유강남은 벤치의 사인은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자의적인 판단이었다는 것.
그렇다면 왜 정면승부를 하지 않았을까.
유강남은 이승엽 선배는 언더핸드에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신승현 선배는 언더핸드 투수다. 조심스럽게 승부를 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이승엽은 올 시즌 언더핸드 투수를 상대로 타율 3할8리(13타수 4안타)를 기록했고, 이 중 홈런 1개가 있었다.
유강남은 고의4구 의혹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유강남은 고의로 피하지 않았다. 몸쪽으로 몰리면 장타 위험이 있기 때문에 바깥쪽으로 유도한 것뿐이다. 신승현 선배의 제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바깥쪽 꽉 찬 볼이 들어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볼넷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 고의4구에 극단적 시프트?
LG는 이승엽의 마지막 타석 때 극단적인 수비 시프트를 시도했다. 내야수 3명을 1-2루 간에 배치했다. 내야땅볼을 맞혀 잡겠다는 의도가 엿보인 시프트였다. 이런 상황에서 고의4구를 의도했다면, 벤치와 배터리간의 사인 미스나 다름없다.
이런 시프트 상황서 바깥쪽 볼을 유도했다는 것도 납득하기 힘들다. 1-2루 간 내야땅볼을 잡아내기 위해선 몸쪽 승부를 해야 하는 것이 맞다. 또한 6점차 승부에서 이승엽을 잡기 위해 극단적 수비 시프트까지 사용했어야 했을까. 4연패 직전의 LG였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려고 했을 수 있다. 그러나 대기록을 앞둔 이승엽 타석에서 꼭 그래야 했는지 아쉬움이 남는다.
차명석 LG 수석코치는 난감한 입장을 전했다. 차 수석코치는 당시 벤치에서 사인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른다”며 경기 후 이승엽 타석 때 사인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이야기도 나누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차 코치는 경기 전 감독님께서 정상적인 승부를 하겠다고 하셨다. 누구라도 그런 상황에서 고의4구를 하면 욕을 먹는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어떻게 고의4구를 했겠나”라고 말했다. 이어 차 코치는 유지현 수비코치도 시프트를 했다. 그런 상황에서 고의4구를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유 코치의 말은 맞는 것 아닌가”라고 항변했다.

▲ 결과론적 비난, 피할 수 없다
LG의 항변을 떠나 LG는 ‘이승엽 피해가기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승엽이 도저히 칠 수 없는 스트레이트 볼넷이었다. 포수가 일어서서 이승엽을 거르지 않았고, 의도성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고의4구에 가까웠다.
과거에도 비슷한 논란은 있었다. 지난 2003년 이승엽이 56개의 홈런 신기록을 세울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기록을 앞둔 이승엽을 상대하는 투수는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다. 구단도 정면승부로 소속팀 투수가 희생양이 되길 원하지 않는다. 자신의 홈구장이라면 더 그렇다. 안방에서 남의 잔치에 들러리가 되기 싫은 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현대 야구에서는 노골적으로 고의4구를 하지 않는다. 교묘하게 피해갈 수도 있다. 하지만 팬들이 다 아는 세상이다. 대기록이 걸린 승부서 승패에 크게 영향을 끼치는 상황이 아니라면 정정당당한 승부를 해야 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비난을 피할 수 없다. LG의 결과론적 이승엽 대처법은 정정당당하지 못했다.
이승엽은 산전수전 다 겪은 ‘국민타자다. 고의4구 여부에 상관없이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러나 이승엽의 역사적인 400홈런 대기록을 기다리던 팬들은 허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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