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기업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전후해 특혜를 준 혐의로 김진수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55)에 청구된 구속영장을 법원이 22일 기각했다.
서울중앙지법 김도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기업 구조조정에서 금융감독기관의 역할이나 권한 행사의 범위·한계가 문제 되는 이 사건의 특성과 제출된 자료에 비춰 범죄사실을 둘러싼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점 등을 종합해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금융권은 구조조정 업무의 금융감독원의 역할과 한계가 애매모호하다는 점을 법원도 인정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김 전 부원장보의 행위가 월권인지 정상적인 업무인지를 두고 법정에서 따져볼 여지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김 전 부원장 보는 경남기업이 유동성 위기를 겪던 2013년 4월 신한은행과 국민은행, 농협은행 같은 시중은행 3곳에 700억원대 대출 압력을 행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남기업이 2013년 10월 29일 3차 워크아웃을 신청한 뒤에도 채권단에 외압을 넣어 특혜 대출과 함께 대주주의 무상감자 없는 출자전환을 성사시킨 혐의도 받고 있다. 김 전 부원장보는 성 전 회장의 추가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3차 워크아웃을 신청하라고 직접 권유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남기업은 3차 워크아웃 과정에서 받은 신규 여신 3433억원 중 3374억원을 갚지 않은 채 지난달 상장 폐지됐다.
검찰은 김 전 부원장보가 당시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으로 있던 성완종 전 회장의 요청을 받고 채권은행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해 자금이 투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고객 예금으로 운영되는 채권은행 자금을 부실기업에 퍼줘 결과적으로 막대한 손실을 초래했다고 판단해 김 전 부원장보에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이다.
하지만 김진수 부원장보 측은 금감원의 정상적인 구조조정 업무의 일환”이라며 이같은 혐의를 반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금융당국 관계자도 (김 전 부원장보가) 대가성 금품을 받은 정황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구조조정 업무 특성상 유무죄 여부를 따져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사태가 금감원 업무 범위 혼란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고 있다. 감사원이 지적했듯이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상 워크아웃은 채권단 자율 원칙으로 운영되며, 금융감독원이 개입할 수 없게 돼있다. 하지만 그동안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에 처한 기업들을 신속하게 살린다는 명분으로 금융당국은 회생 가능한 기업들이 워크아웃을 신청하도록 직간접적으로 유도해왔다. 기업이 자율협약이나 워크아웃 대신 법정관리를 신청하면 모든 채권이 동결돼 다수의 협력업체들이 피해를 입고 국가 경제적 차원에서 부작용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법을 비롯한 금융관련법에서 규정한 금융사 건전성 감독 차원에서도 개입이 가능하다는게 금융당국의 입장이다.
이같은 금융당국의 개입을 두고 채권은행들은 ‘관치금융이라고 불만을 제기했지만 정부나 정치권이 용인해온 측면이 있다. 한 채권은행 관계자는 경남기업 사태는 기촉법의 부실함 같은 제도적인 미비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금감원 자체의 정체성 혼란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며 금감원 역할이 모호하다는 점을 정치 금융이 파고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회나 청와대,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 정치권과 행정부가 정치금융의 수단으로 금감원을 악용하는 악순환이 끊어져야한다는 지적이다. 최근 경남기업 사태로 금감원의 구조조정 업무가 사실상 마비된 가운데 성동조선에 대한 채권단 지원이 끊기자 이군현 새누리당 의원이 직접 채권은행 담당자들을 불러다 신규 자금 지원을 종용하기도 했다.
조선과 건설, 해운 등 한계 업종 구조조정 과정에서 반복되는 ‘정치금융의 악순환을 끊으려면 구조조정 당국과 구조조정 제도에 대한 전면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채권은행들은 구조조정 업무와 무관하게 금감원의 상시적인 감시를 받고 있는데다 금융위, 기재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복수의 행정부처와 국회 정무위원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등 정치권의 개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표적인 채권은행이자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시어머니가 각각 금융위원회와 기획재정부(대외경제국)로 다르다. 한 국책은행 관계자는 부처별 역할과 책임이 모호한 구조조정 업무 체계를 재정비하고, 행정부처와 기능 중복으로 ‘옥상옥 논란이 일고 있는 금감원 기업구조개선국은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존 구조조정 제도를 대대적으로 정비하는 한편 구조조정 전문 사모펀드(PEF) 등 민간 주도의 구조조정 활성화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신인석 자본시장연구원장은 은행들이 운용사(GP)가 되고 민간 투자자(LP)를 모집하는 형식의 펀드(PEF)를 만들어 민간 주도의 구조조정을 추진할 수 있다”며 구조조정 전문 펀드가 활성화돼야한다”고 말했다.
[정석우 기자 / 배미정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