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오늘이면]비틀즈 해체, 그들이 비틀즈를 버린 4가지 이유
입력 2015-04-10 11:20  | 수정 2015-04-11 13:51
출처 = MK패션
이전의 오늘은 어떤 날이었을까.
'오늘裏面'은 이러한 궁금증으로 시작됐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쏟아지는 뉴스와 사건들 속에서 울고 웃는 누군가가 있습니다.
오늘이면은 과거의 오늘이 가진 다른 의미를 추적합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소외당하고 잊혀질 뻔한 사실들을 적습니다.
오늘의 역사를 통해서 지금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45년 전 오늘, 4월 10일은 영국의 팝밴드 비틀즈가 해체한 날입니다.



"어느 날 우리는 서른이 되었고 결혼까지 한 뒤 모두 변했다. 이미 우리는 비틀스의 삶을 지탱할 수 없었다."

1970년 4월 10일, 비틀즈의 멤버 폴 매카트니는 솔로 앨범 ‘McCartney' 발매 기자회견을 통해 비틀즈의 해체를 선언했습니다. 놀란 취재진을 향해 그는 개인적, 사업상 그리고 음악적 차이‘ 때문에 비틀즈를 그만 둔다고 못을 박았습니다. 그렇게 비틀즈는 단숨에, 단 한명의 입으로부터 끝이 났습니다. 리버풀 촌구석에서 함께 자란 네 명의 꼬마들은 그날 이후 각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다시는 함께 공연한 적이 없고, 마지막 앨범 Let it be'의 이름을 딴 동명의 다큐멘터리도 그해 5월에 상영됐지만 시사회장에는 비틀즈의 멤버 그 누구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비틀즈는 왜 해체했을까? 그것은 무척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해체 전까지 총 12개의 음반을 발표하면서 그들이 세운 업적은 대단합니다. 5억 장 이상의 판매고, 그래미상 수상 7회, 빌보드 차트 1위 21번 등 비틀즈를 뛰어넘는 밴드는 전무후무했고 그래서 그들의 해체소식은 세상에 큰 충격을 줬습니다.

출처 = MK 패션


팬들은 그들이 해체한 이유를 4가지 정도로 요약합니다.

첫째는 밴드의 리더격이었던 존 레논이 오노 요코와 사랑에 빠지면서 밴드에 소흘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요코를 만날 당시 존은 이미 대학 시절에 만난 연인과 가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존은 68년 한 아방가르드 작품전에 초대됐는데 그곳에서 작품을 전시하던 오노 요코를 만났습니다. 이들은 금세 예술을 매개로 친해지게 되고 연인사이로 발전합니다. 이때 폴 매카트니는 전처와 함께 버려진 아들 줄리안 레논을 가엾게 여겨 ‘hey jude'이라는 곡을 만듭니다. 요코와 레논은 세상에 둘 밖에 없는 것처럼 사랑했고 요코는 비틀즈의 작업실에도 찾아와 음악에 대해 사사건건 간섭하기에 이릅니다.

두 번째는 그들의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약물 중독으로 사망하면서 그들을 묶어주던 구심점 또한 함께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시골 밴드에 불과했던 비틀즈를 발굴해 더 좋은 콘서트를 기획해줬던 엡스타인은 비틀즈가 세계적인 밴드가 되면서 매니저 재계약에 대한 압박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 같은 스트레스는 약물에 더 많이 의지하게 만들었고 끝내 67년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세 번째는 비틀즈의 멤버였던 조지 해리슨이 폴과 존에 가리면서 밴드 활동에 불만을 품었다는 것입니다.
활동 초기, 조지는 멤버들과 흡사한 비율로 곡을 만들었습니다. 일본의 소설가 하루키가 영감을 받았기로 유명한 ‘Norwegian Wood'에서 서양음악 최초로 시타르 연주를 도입한 것도 바로 그였습니다. 하지만 밴드가 유명세를 탈수록 폴과 존 사이에 존재하는 유대감과 천재적인 재능에 그는 점점 설자리가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곡 수록 자체가 힘들어졌고 동양의 종교와 문화에 많이 영향을 받았던 그의 음악적 성향은 비틀즈가 추구해오던 것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해체 후 어떤 평론가는 조지 해리슨을 비틀즈 전설의 당당한 주역이었음을 죽을 때까지 증명해야 했던 피해의식의 희생자‘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비틀즈가 해체한 네 번째 이유는 그들은 더 이상 한 동네 같이 살았던 16세의 꼬마들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비틀즈는 공식적으로 10년간 활동했지만 그들은 아주 어린 소년 시절부터 함께 자랐던 동네 친구들이었습니다. 시골의 밴드에서부터 세계적인 아이콘이 되기까지 돈, 명예, 여자 등 그들이 가질 수 없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분명 한 사람이 인생에서 느낄 수 있는 극한까지를 맛본 이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비틀즈로 끝까지 살 수 없었습니다. 훌쩍 큰 그들은 이미 어른이 되었고, 비틀즈로서가 아닌 좀 더 자기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를 내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비틀즈를 버렸고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과 링고 스타가 되었습니다.

훗날 존 레논은 비틀즈를 해체시킨 장본인이라며 여론의 질타를 받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람들은 마치 지구 종말이 온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지만 겨우 록 그룹 하나 해체된 것일 뿐이다. 추억에 잠기고 싶으면 얼마든지 옛 음반들이 있지 않은가. 모두 대단한 음악들이다.”

존 레논은 1980년 12월 8일 밤 11시 뉴욕 맨해튼에 있는 자신의 집 앞에서 데이비드 채프먼이 쏜 총에 맞고 사망했습니다. 조지 해리슨은 2001년 암으로 사망, 그의 유해는 갠지스 강에 뿌려졌습니다.

1969년 1월 애플사 옥상에서 게릴라 공연을 끝으로 그들이 한데 있는 모습은 볼 수 없었습니다. 몇 번 재결합 설이 돌았지만 이도 멤버의 절반이 없기에 불가능한 염원으로 남았습니다.

출처 = 폴 매카트니 내한공연 공식 포스터


하지만 아직 남은 멤버들은 꾸준히 노래를 하고 있습니다.
73살이 된 폴은 올해 5월 2일에 한국을 찾을 예정이고, 거뭇한 수염에 선글라스를 낀 74세의 링고 스타는 지난달 31일 신보 ‘postcard from paradise'를 발매해 미국 롤링스톤지와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링고 스타는 이날 인터뷰에서 끝내 다시 합치지 못한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냥 모여 앉아 ‘다시 시작하자고 말하기만 하면 됐는데… 우리 인생에서 하루만이라도 그렇게 했어야 했다”


영상뉴스국 박준상 인턴기자 [mbnreporter01@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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