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중견시인 원구식 8년만에 신작 시집 ‘비’ 발표
입력 2015-03-26 14:11 

하늘에서 물이 온다./ 우리가 비라고 부르는 이것은 물의 사정, 물의 오르가즘./ 아, 쏟아지는 빗속에서 번개가 일러준 한 마디의 말. 모든 사물은 날기를 원하는 것이다.”(‘비 부분)
물은 비가되어 내린다. 강이나 바다로 흘러가고, 다시 증발한다. 이 증명된 과학적 사실을 통해 시인은 찰나의 깨달음을 얻는다. 낮은 곳으로 흐르기 위해, 물은 자신의 몸을 증발시켜 하늘에 이른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바위가 부서져 모래가 되고, 모래가 부서져 먼지는 되는 이유와 마찬가지로.
월간 ‘현대시의 발행인인 중견시인 원구식(60)의 세번째 시집 ‘비(문학과지성사)가 나왔다. 8년만에 나온 신작 시집에 실린 36편의 시들은 아무도 주목하거나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던 자연 현상 속에서 사물의 이치를 발견해낸다. 시인은 탁월한 시적 직관을 통해 물과 불과 흙과 공기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속에서 존재의 이유를 발견해낸다. 그가 사물과 세상의 이치를 설명하는 말로는 외마디 감탄사면 충분하다.
쾌락이여, 너는 과연 물속에서 완성되는구나.”(‘얼음)
시인이 관심을 갖고 바라보는 대상은 또한 ‘나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낸 오늘의 사람들이다.혁명이 불가능하기에/ 우리는 삼삼오오 모여 삼겹살을 뒤집”(‘삼겹살을 뒤집는다는 것은거나, 하루하루를 헛되이 보내는 것”(‘탕진)을 꿈으로 삼는 사람들은, 오늘도 살기 위해서 지하철을 탄다”(‘지하철의 기적)
순간 시간이 정지되고, 어리석은 나는 벼락같이 깨닫는다, 보잘것없는 인간의 육체가 바로/ 인간이라는 사물의 소중한 기호임을./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이미 위대한 물질인 것이”(‘풀밭에서 금지된 것들 부분)
이광호 문학평론가는 그의 시는 우주적 규모의 상상력을 추구하는 지적인 쾌락주의, 즉 시적 직관의 힘으로 객관적 사실에서 사물의 이치를 발견한다”고 읽어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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