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조약이 체결된 1876년(고종 13) 이후 서울 청계천을 중심으로 밀집했던 한국 소상공인은 일본계 자본 등쌀에 허리를 펴지 못했다. 제대로 된 은행이 없었던 조선은 일본 자금이 한국에서 서민을 상대로 돈놀이로 고혈을 빠는 걸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만 했다.
그러자 뜻있는 지식인을 중심으로 민족자본으로 은행을 세우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수년간 절차탁마 과정을 거쳐 1899년 1월 당시 농상공부대신이던 민병석(閔丙奭)을 은행장으로 임명한 한국 최초 근대 금융기관 '대한천일은행(大韓天一銀行·사진)'이 종로에 들어선다. 고종 황제가 하사한 내탕금(황실 자금)이 설립 자본금으로 쓰일 정도로 황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이 은행이 1915년 3월 서울시(당시 경성부) 금고의 관리를 맡은 건 필연이었다. 대한천일은행을 빼고는 황실이 믿을 만한 다른 선택지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시간이 100년 흐르는 동안 경성부는 격동의 세월을 거쳐 인구 1000만의 국제도시 서울로 진화했다.
대한천일은행은 조선상업은행, 한빛은행으로 간판을 고쳐 달다 지금의 우리은행이 됐다. 변하지 않은 건 여전히 우리은행이 서울시 안살림을 맡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시와 우리은행의 끈끈한 관계가 한 세기 넘게 지속된 것이다.
10일 금융 업계에 따르면 서울시와 우리은행은 오는 31일 서울시금고와 우리은행 금고 계약 100년을 기념해 대대적인 행사를 연다. 우리은행은 시금고 계약 100주년을 기리는 이벤트 상품도 내놓는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아직 정확한 구조가 나오지 않았지만 100년 우정을 기념한 이벤트성 적금을 만들 계획"이라며 "기존 상품 대비 금리를 높여 선착순 소수 가입자를 상대로 계약을 받는 방안이 유력하다"고 말했다.
서울시와 우리은행의 전속 계약이 100년 내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왜 서울시가 우리은행에만 특혜를 주느냐"는 다른 시중은행들의 시비가 계약 내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서울시는 1999년 전속 계약 85년을 맞는 시점에 경쟁입찰제를 도입해 의혹을 해소하기로 한다. 85년 만에 벌어진 빅매치에 하나·한미·외환·농협과 한빛(현 우리은행) 5개 금융사가 진검승부를 벌였다. 결과는 한빛은행의 완승. 심사위원 10명이 △서울시와의 협력 사업 추진 능력 △금고 운영의 수익성 △재무구조의 건전성 △지역주민 이용 편리성 등의 기준을 정해 서류와 면접을 거치며 심사를 벌인 결과 한빛은행이 1000점 만점에 873.2점을 얻어 1위를 차지했다. 2등 외환은행의 점수는 820.5점이었다.
이후에도 수차례 입찰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우리은행이 매번 1등을 차지해 경쟁사는 입맛만 다셔야 했다. 가장 최근에 벌어진 입찰은 지난해 3월. 우리은행은 또다시 계약을 따내 2018년까지 시금고를 관리할 권리를 확보했다.
서울시금고는 한 해 관리하는 자금만 예산 24조원, 기금 2조원 등 무려 26조원에 달한다.
서울시청 담당 본부장을 지냈던 허정진 우리은행 본부장은 "지방채 발행 등 분야에서 우리은행만의 강점과 시민들 편에서 각종 공과금 수납 전산 시스템을 갖춘 능력을 인정받아 서울시와 오랜 인연을 맺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은행 전산이 복잡해지면서 주거래은행을 교체하면 주요 설비를 바꿔야 해 단기간 비용 부담이 크게 드는 점도 세간에서 우리은행 전속 계약 가능성을 높게 보는 이유 중 하나다.
우리은행은 서울시금고 외에 두산그룹과도 100년 넘는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1896년 탄생한 두산그룹 모태 '박승직상점' 출범 초기에 대한천일은행과 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100년 넘는 기업 역사를 공유하는 두산과의 관계도 서울시 못지않게 끈끈하다"고 말했다.
[홍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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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뜻있는 지식인을 중심으로 민족자본으로 은행을 세우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수년간 절차탁마 과정을 거쳐 1899년 1월 당시 농상공부대신이던 민병석(閔丙奭)을 은행장으로 임명한 한국 최초 근대 금융기관 '대한천일은행(大韓天一銀行·사진)'이 종로에 들어선다. 고종 황제가 하사한 내탕금(황실 자금)이 설립 자본금으로 쓰일 정도로 황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이 은행이 1915년 3월 서울시(당시 경성부) 금고의 관리를 맡은 건 필연이었다. 대한천일은행을 빼고는 황실이 믿을 만한 다른 선택지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시간이 100년 흐르는 동안 경성부는 격동의 세월을 거쳐 인구 1000만의 국제도시 서울로 진화했다.
대한천일은행은 조선상업은행, 한빛은행으로 간판을 고쳐 달다 지금의 우리은행이 됐다. 변하지 않은 건 여전히 우리은행이 서울시 안살림을 맡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시와 우리은행의 끈끈한 관계가 한 세기 넘게 지속된 것이다.
10일 금융 업계에 따르면 서울시와 우리은행은 오는 31일 서울시금고와 우리은행 금고 계약 100년을 기념해 대대적인 행사를 연다. 우리은행은 시금고 계약 100주년을 기리는 이벤트 상품도 내놓는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아직 정확한 구조가 나오지 않았지만 100년 우정을 기념한 이벤트성 적금을 만들 계획"이라며 "기존 상품 대비 금리를 높여 선착순 소수 가입자를 상대로 계약을 받는 방안이 유력하다"고 말했다.
서울시와 우리은행의 전속 계약이 100년 내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왜 서울시가 우리은행에만 특혜를 주느냐"는 다른 시중은행들의 시비가 계약 내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서울시는 1999년 전속 계약 85년을 맞는 시점에 경쟁입찰제를 도입해 의혹을 해소하기로 한다. 85년 만에 벌어진 빅매치에 하나·한미·외환·농협과 한빛(현 우리은행) 5개 금융사가 진검승부를 벌였다. 결과는 한빛은행의 완승. 심사위원 10명이 △서울시와의 협력 사업 추진 능력 △금고 운영의 수익성 △재무구조의 건전성 △지역주민 이용 편리성 등의 기준을 정해 서류와 면접을 거치며 심사를 벌인 결과 한빛은행이 1000점 만점에 873.2점을 얻어 1위를 차지했다. 2등 외환은행의 점수는 820.5점이었다.
이후에도 수차례 입찰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우리은행이 매번 1등을 차지해 경쟁사는 입맛만 다셔야 했다. 가장 최근에 벌어진 입찰은 지난해 3월. 우리은행은 또다시 계약을 따내 2018년까지 시금고를 관리할 권리를 확보했다.
서울시금고는 한 해 관리하는 자금만 예산 24조원, 기금 2조원 등 무려 26조원에 달한다.
서울시청 담당 본부장을 지냈던 허정진 우리은행 본부장은 "지방채 발행 등 분야에서 우리은행만의 강점과 시민들 편에서 각종 공과금 수납 전산 시스템을 갖춘 능력을 인정받아 서울시와 오랜 인연을 맺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은행 전산이 복잡해지면서 주거래은행을 교체하면 주요 설비를 바꿔야 해 단기간 비용 부담이 크게 드는 점도 세간에서 우리은행 전속 계약 가능성을 높게 보는 이유 중 하나다.
우리은행은 서울시금고 외에 두산그룹과도 100년 넘는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1896년 탄생한 두산그룹 모태 '박승직상점' 출범 초기에 대한천일은행과 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100년 넘는 기업 역사를 공유하는 두산과의 관계도 서울시 못지않게 끈끈하다"고 말했다.
[홍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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