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선한 바람이 부는 봄. 무거운 겨울옷은 장롱에 넣고 봄옷으로 갈아입고 싶지만 계속되는 경기불황으로 쉽게 지갑은 열리지 않습니다. 감소하고 있는 의류 소비를 통해 삭막한 소비자의 심리가 들어나고 있지만 여기 추세를 거스르고 있는 여성 CEO가 있습니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연 (주)아이디조이 이은경 대표가 그 주인공입니다. 39살의 늦은 나이에 패션 사업에 발을 들여놓은 이은경 대표. 시작은 늦었지만 그녀의 행보는 누구보다 빨랐습니다. 백화점의 매니저로 일하며 매출을 5배로 끌어올리는 기염을 토한 이은경 대표. 그 능력을 인정받아 중국 사업에도 발령을 받으며 시아를 넓힐 수 있었습니다. 그런 경험들을 토대로 그녀는 아이디조이를 창업해 26개의 매장을 거느리는 CEO가 되었습니다. 추세를 거스르는 이은경 대표의 성공비결을 MBN ‘성공다큐 최고다(최고 경영자의 고귀한 다섯 가지 비밀) 제작진이 직접 들어봤습니다.
Q. 39살, 늦게 패션계에 발을 들여놓으셨는데... 시작 계기가 궁금합니다.
패션은 예전부터 관심이 많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옷을 만들거나 그림을 그리는 일은 아주 좋아했었죠. 친구들과 직접 가방을 만들기도 했고요. 그런 예체능 솜씨를 발휘해 공예과를 졸업하고 바로 미국으로 이민을 가 광고 디자이너로 오래 일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패션과는 전혀 관련 없는 일들이었죠. 그러다 우연히 한국으로 들어와 지내야 하는 상황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잠시 한국에서 지내던 중 지인에게 연락이 왔죠. 한국에 있을 때까지만 이라도 인천 백화점에 있는 의류 매장 매니저 일을 해보는 건 어떠냐고요. 저는 3개월 뒤엔 출국을 해야 할 상황이었기 때문에 3개월만 일을 하겠다고 얘기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매장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가벼운 마음으로 일할 상황이 아니더군요. 매출은 바닥을 치고 있었고 존폐위기의 상황이 눈에 보였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간 매장을 살리기 위한 고군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Q. 존폐위기의 매장에서 어떻게 5배의 매출을 올리셨나요?
우선 저희 주변의 매장들은 어떻게 영업을 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패션이나 영업은 제가 알고 있는 것들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러던 중 주변 매장에서 영업을 하지 않는 빈 시간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다 같이 점심을 먹으러가는 시간이나 다 같이 쉬는 날 같을 때요. 그리고 그 시간에 서성이는 고객들이 꽤 있었죠. 그런 버려진 고객들을 저희 고객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저희 고객을 늘리는 중 한 고객이 입은 우리 브랜드의 옷이 눈에 띄었습니다. 같은 브랜드의 옷이었지만 저희 매장에는 없었죠. 저는 바로 본사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본사에서는 매장별 등급에 따라 가는 옷이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요청한다면 보내주겠다고 했죠. 그 말을 듣고 저는 며칠을 출근 전과 퇴근 후에 다른 매장에 찾아보았습니다. 어떤 상품들이 다른 매장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죠. 상품들이 다른 매장보다 저희 매장이 뒤처진다면 고객들은 다른 매장으로 떠날건 불 보듯 뻔했으니까요. 이런 영업 노력들로 제가 미국으로 돌아가야 할 때쯤에는 매출이 5배는 올라있었습니다. 저는 마음 편하게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죠.
Q. 미국으로 돌아갔는데 어떻게 다시 패션을 시작하셨죠?
제가 매출을 5배 넘게 올렸을 때 브랜드 회장님께서 저에게 전화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누군데 그렇게 매출을 올릴 수 있었는지 궁금하셔서 전화를 건 것이었죠. 그렇게 미국에 들어가기 전 저는 회장님을 한 번 만나 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제 모습을 회장님은 좋게 보셨나봅니다. 다시 한국에 올 때 연락을 달라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렇게 몇 개월 지나지 않아 한국으로 들어왔을 때 인사차 회장님께 연락을 드렸고 그때 회장님은 뜻밖의 제안을 하셨습니다. 중국으로 진출하려고 하는데 제가 직접 중국 마케팅을 도와주는 건 어떻겠냐고 말이죠. 가족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저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 도전이었죠. 저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중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걸 시작으로 제가 패션계에 뛰어들게 된 것 같네요.
Q. 중국에서 어떤 일을 하셨나요?
중국은 고객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아니라 뒤에 팔짱을 끼고 서서 감시하는 것처럼 서있더라고요. 판매원이 아니라 감시원 같았습니다. 서비스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죠. 그런 상황들을 보고 저는 직원들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비스 교육뿐만 아니라 미술의 기초도 모르는 직원들에게 3원색부터 교육하며 패션에 대한 것들도 알려주었습니다. 그런 저를 중국 직원들은 선생님이라고 부르더라고요. 정말 보람 있었죠.
Q.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은데, 위기는 없었나요?
누구보다 즐겁게 일을 한 것 같네요. 일을 하는 중에는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중국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다 2007년 미국 브랜드에 스카우트 당해 한국지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당시에는 미국과 한국의 시차 탓에 밤낮없이 일을 하고 있었죠. 그런 밤낮 없는 스케줄을 소화해주며 오랜 기간 함께 일한 기사님이 계셨습니다. 어느 날 휴일을 잘 보내시라고 인사하고 그 다음날 충격적인 전화를 받았죠. 기사님이 돌아가셨다는 전화였습니다. 저는 재밌게 일했지만 혹시 무리한 스케줄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닌지 아주 힘들더군요. 저는 일을 하면 안 되는 사람 같았습니다.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라는 생각이 들었죠. 충격이 심했던 저는 그 일이 있고 바로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Q. 다시 패션 사업을 시작한 이유가 있나요?
2007년 한국에서 일을 할 당시 친구에게 맡기며 운영하던 작은 의류 매장하나가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인형놀이도 하며 친하게 지낸 친구였기에 믿고 맡기고 있었죠. 그 친구와 학창시절 놀이는 하는 것처럼 쉬는 동안 함께 매장을 운영했습니다. 그런데 그 매장에 손님들이 점점 늘더군요. 입소문으로 패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지방에서도 올라오곤 했습니다. 고객들과 직접 만나며 즐겁게 일을 하는 중 매장이 늘고 규모가 커져 좀 더 싼 가격의 옷을 고객들에게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 제 얘기를 들은 지인이 흔쾌히 지원해주겠다고 나서며 아이디조이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Q. 경기 불황이 계속되며 의류 소비는 감소하고 있는데...
어떻게 추세를 거스르며 어떻게 단기간에 성장할 수 있었나요?
저는 단가를 낮추려면 유통이 변해야겠더라고요. 많은 양의 옷을 만들어 단가를 낮추는 건 성공했지만 유통에서 다 무너졌죠. 유통수수료가 낮아지지 않으면 합리적인 가격으로 소비자들한테 다가갈 수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백화점이든 마트든 문턱을 낮추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잠도 못 자고 고민만 많아졌죠. 그러는 중 백화점에 자리가 나며 낮은 수수료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수수료가 낮아지니 희망이 보이더군요. 들어가자마자 1억 매출을 달성하며 성공적인 첫 한발을 내딛었습니다. 그것을 시작으로 지금은 26개의 매장이 문을 열었죠. 좋은 제품과 합리적인 가격으로 소비자들에게 다가갔기 위해 노력했기에 추세를 거스를 수 있었던 것 같네요.
Q. 앞으로의 계획이 있나요?
아직은 시작단계라고 생각합니다. 세계로 뻗어나갈 시작단계요.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지도가 하나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동쪽 끝에 있는 지도죠. 이 지도를 따라 서쪽을 향해 저희 브랜드가 뻗어나가는 것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볼 때마다 모두 제 옷을 입고 있으면 어떤 기분일지 상상이가지 않네요. 편안하고 아름다운 옷, 자신을 자신 있게 만드는 옷을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입었으면 좋겠습니다.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는 것 같습니다.
Q. 39살, 늦게 패션계에 발을 들여놓으셨는데... 시작 계기가 궁금합니다.
패션은 예전부터 관심이 많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옷을 만들거나 그림을 그리는 일은 아주 좋아했었죠. 친구들과 직접 가방을 만들기도 했고요. 그런 예체능 솜씨를 발휘해 공예과를 졸업하고 바로 미국으로 이민을 가 광고 디자이너로 오래 일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패션과는 전혀 관련 없는 일들이었죠. 그러다 우연히 한국으로 들어와 지내야 하는 상황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잠시 한국에서 지내던 중 지인에게 연락이 왔죠. 한국에 있을 때까지만 이라도 인천 백화점에 있는 의류 매장 매니저 일을 해보는 건 어떠냐고요. 저는 3개월 뒤엔 출국을 해야 할 상황이었기 때문에 3개월만 일을 하겠다고 얘기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매장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가벼운 마음으로 일할 상황이 아니더군요. 매출은 바닥을 치고 있었고 존폐위기의 상황이 눈에 보였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간 매장을 살리기 위한 고군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Q. 존폐위기의 매장에서 어떻게 5배의 매출을 올리셨나요?
우선 저희 주변의 매장들은 어떻게 영업을 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패션이나 영업은 제가 알고 있는 것들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러던 중 주변 매장에서 영업을 하지 않는 빈 시간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다 같이 점심을 먹으러가는 시간이나 다 같이 쉬는 날 같을 때요. 그리고 그 시간에 서성이는 고객들이 꽤 있었죠. 그런 버려진 고객들을 저희 고객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저희 고객을 늘리는 중 한 고객이 입은 우리 브랜드의 옷이 눈에 띄었습니다. 같은 브랜드의 옷이었지만 저희 매장에는 없었죠. 저는 바로 본사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본사에서는 매장별 등급에 따라 가는 옷이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요청한다면 보내주겠다고 했죠. 그 말을 듣고 저는 며칠을 출근 전과 퇴근 후에 다른 매장에 찾아보았습니다. 어떤 상품들이 다른 매장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죠. 상품들이 다른 매장보다 저희 매장이 뒤처진다면 고객들은 다른 매장으로 떠날건 불 보듯 뻔했으니까요. 이런 영업 노력들로 제가 미국으로 돌아가야 할 때쯤에는 매출이 5배는 올라있었습니다. 저는 마음 편하게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죠.
Q. 미국으로 돌아갔는데 어떻게 다시 패션을 시작하셨죠?
제가 매출을 5배 넘게 올렸을 때 브랜드 회장님께서 저에게 전화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누군데 그렇게 매출을 올릴 수 있었는지 궁금하셔서 전화를 건 것이었죠. 그렇게 미국에 들어가기 전 저는 회장님을 한 번 만나 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제 모습을 회장님은 좋게 보셨나봅니다. 다시 한국에 올 때 연락을 달라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렇게 몇 개월 지나지 않아 한국으로 들어왔을 때 인사차 회장님께 연락을 드렸고 그때 회장님은 뜻밖의 제안을 하셨습니다. 중국으로 진출하려고 하는데 제가 직접 중국 마케팅을 도와주는 건 어떻겠냐고 말이죠. 가족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저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 도전이었죠. 저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중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걸 시작으로 제가 패션계에 뛰어들게 된 것 같네요.
Q. 중국에서 어떤 일을 하셨나요?
중국은 고객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아니라 뒤에 팔짱을 끼고 서서 감시하는 것처럼 서있더라고요. 판매원이 아니라 감시원 같았습니다. 서비스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죠. 그런 상황들을 보고 저는 직원들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비스 교육뿐만 아니라 미술의 기초도 모르는 직원들에게 3원색부터 교육하며 패션에 대한 것들도 알려주었습니다. 그런 저를 중국 직원들은 선생님이라고 부르더라고요. 정말 보람 있었죠.
Q.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은데, 위기는 없었나요?
누구보다 즐겁게 일을 한 것 같네요. 일을 하는 중에는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중국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다 2007년 미국 브랜드에 스카우트 당해 한국지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당시에는 미국과 한국의 시차 탓에 밤낮없이 일을 하고 있었죠. 그런 밤낮 없는 스케줄을 소화해주며 오랜 기간 함께 일한 기사님이 계셨습니다. 어느 날 휴일을 잘 보내시라고 인사하고 그 다음날 충격적인 전화를 받았죠. 기사님이 돌아가셨다는 전화였습니다. 저는 재밌게 일했지만 혹시 무리한 스케줄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닌지 아주 힘들더군요. 저는 일을 하면 안 되는 사람 같았습니다.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라는 생각이 들었죠. 충격이 심했던 저는 그 일이 있고 바로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Q. 다시 패션 사업을 시작한 이유가 있나요?
2007년 한국에서 일을 할 당시 친구에게 맡기며 운영하던 작은 의류 매장하나가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인형놀이도 하며 친하게 지낸 친구였기에 믿고 맡기고 있었죠. 그 친구와 학창시절 놀이는 하는 것처럼 쉬는 동안 함께 매장을 운영했습니다. 그런데 그 매장에 손님들이 점점 늘더군요. 입소문으로 패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지방에서도 올라오곤 했습니다. 고객들과 직접 만나며 즐겁게 일을 하는 중 매장이 늘고 규모가 커져 좀 더 싼 가격의 옷을 고객들에게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 제 얘기를 들은 지인이 흔쾌히 지원해주겠다고 나서며 아이디조이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Q. 경기 불황이 계속되며 의류 소비는 감소하고 있는데...
어떻게 추세를 거스르며 어떻게 단기간에 성장할 수 있었나요?
저는 단가를 낮추려면 유통이 변해야겠더라고요. 많은 양의 옷을 만들어 단가를 낮추는 건 성공했지만 유통에서 다 무너졌죠. 유통수수료가 낮아지지 않으면 합리적인 가격으로 소비자들한테 다가갈 수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백화점이든 마트든 문턱을 낮추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잠도 못 자고 고민만 많아졌죠. 그러는 중 백화점에 자리가 나며 낮은 수수료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수수료가 낮아지니 희망이 보이더군요. 들어가자마자 1억 매출을 달성하며 성공적인 첫 한발을 내딛었습니다. 그것을 시작으로 지금은 26개의 매장이 문을 열었죠. 좋은 제품과 합리적인 가격으로 소비자들에게 다가갔기 위해 노력했기에 추세를 거스를 수 있었던 것 같네요.
Q. 앞으로의 계획이 있나요?
아직은 시작단계라고 생각합니다. 세계로 뻗어나갈 시작단계요.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지도가 하나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동쪽 끝에 있는 지도죠. 이 지도를 따라 서쪽을 향해 저희 브랜드가 뻗어나가는 것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볼 때마다 모두 제 옷을 입고 있으면 어떤 기분일지 상상이가지 않네요. 편안하고 아름다운 옷, 자신을 자신 있게 만드는 옷을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입었으면 좋겠습니다.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