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숭숭 뚫린 노란색 해면동물 스폰지밥, 물컹물컹한 뱃살을 출렁이는 불가사리 뚱이(패트릭). 바보같은 실수를 연발하면서도 악착같이 해저 세계를 지켜온 사고뭉치들이 이번에 바다 밖으로 나왔다. 오는 18일 개봉하는 애니메이션 영화 '스폰지밥 3D'는 스폰지밥 친구들이 사라진 게살버거 비법을 찾기 위해 뭍으로 나온 모험을 그렸다. 아기자기한 캐릭터와 기상천외한 유머, 상상 초월하는 모험이 생생한 3D로 구현돼 생동감을 높인다. 앞서 6일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는 10일만에 1억달러를 벌어들였다.
미국 관객을 동심에 빠뜨린 이 작품은 한국인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스폰지밥 3D'의 제작을 맡은 라프드래프트코리아(RDkorea)의 박경숙 대표(54)는 "(배급사)파라마운트 직원들이 작품을 10번 넘게 봤는데도 여전히 웃음이 터진다는 얘기를 듣고 뿌듯했다. 개봉 며칠만에 제작비(7400만 달러)를 회수해서 안심이 된다”며 웃었다.
지난 10일 서울 방배동에 있는 사무실에서 박 대표를 만났다. 건물 1층부터 대형 스폰지밥 입간판과 마주쳤다. 스폰지밥 인형, 뚱이 포스터로 장식된 집무실은 만화 속 해저 세계를 연상시켰다. '스폰지밥'을 독점 제작한 지난 20년간의 세월이 느껴졌다. 회사는 1996년부터 '스폰지밥' TV 에피소드 380편, MD 등을 제작했다.
"스폰지밥은 20년간 거의 변화가 없어요. 원작자(스티븐 힐렌버그)의 뜻이죠. 저희가 원작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잘 지켜냈기 때문에 원작자와 신뢰가 두터워요. 원작자가 저희만 고집해요.”
미국 제작사는 간단한 줄거리와 캐릭터 모델을 보낸다. 한국에선 스토리에 맞는 동작과 표정을 손으로 그리고 디지털로 색을 입혀 장면을 완성한다. 영화 작업에 3년간 300여명이 투입돼 총 32만장의 그림을 그렸다.
"영화에서 마요네즈를 쏘고 케찹을 쏘는데 흐르는 모습도 현실적으로 보여지도록 몇 십번이나 다시 그렸어요. 밤새 그려도 줄거리가 바뀌면 버리고 다시 그렸죠. 최종 작업때 10분 분량을 버렸어요. 아까웠지만 퀄리티를 위해서 인내했죠.”
박 대표는 남편인 애니메이션 감독 그렉 벤조와 함께 1992년 RD코리아 창립때부터 함께 일했다. 자본금이 부족했던 초창기, 경력은 일천하지만 열정이 뛰어난 젊은 애니메이터들을 대거 고용하는 도전을 감행했다. 열정은 실력으로 보답했다. '스폰지밥', '심슨','어드벤처 타임'등 작업이 몰려왔다. 에미상도 받았다. 사무실 한켠은 '수출의 탑' 트로피와 에미상으로 장식돼있었다.
"한국인처럼 근면한 민족이 없어요. 애니메이션 작업은 납기일을 맞추는 게 중요해요. 우리 직원들은 납기가 내일이면 밤을 새는 것을 마다않고 일했어요. 헝그리 정신에 헐리우드도 감탄했죠.”
손기술이 타고난 것도 있다.
"우리 직원들은 그리는 것 자체가 행복하기 때문에 그림도 잘 나오는 것 같아요. 미국 프로덕션이 (외주 회사를 찾기 위해)중국, 필리핀 여러 나라를 가보지만 한국만한 곳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한국은 수준 높은 애니메이터들의 저변이 넓어요.”
위기도 있었다. 지난 4년간 애니메이션 작업이 디지털화되면서 컴퓨터 몇대와 사람 한 두명을 둔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단가는 터무니없이 하락했다.
"10년전 가격을 요구하는 곳도 있더라고요. 안하면 안했지 절대 타협하지 않았죠. 우리는 퀄리티가 다르니까요. 미국으로 날아가 파라마운트 사장님을 만나서 인건비 상승 요인 등을 설명했죠.'딴 회사와 비교하지 말아달라. 우리는 특별하다'고 담판을 지었어요. (적정한 가격에)원하는대로 받았어요.”
박 대표가 싱긋 웃으며 박수를 '딱' 쳤다. 깡마른 체구 어디에서 저런 강단이 나오나 싶었다.
그는 "워낙 박하다보니 젊은 사람들이 애니메이션을 안하려고 한다. 우리 크루들도 40대에서 끊겼다. 현실에 맞는 가격을 받아야 저변의 인재를 육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RD코리아는 직원 350여명, 연매출은 150억원이다. 이십세기폭스, 월트 디즈니 등 헐리우드 메이져 스튜디오가 찾는 유일한 한국 회사다. 그동안 숱한 캐릭터를 애지중지 '키워온' 회사는 이젠 자신의 캐릭터를 잉태하기 위해 준비중이다.
"남편이 미국에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고 있어요. 이젠 한국인의 손으로 오리지널 캐릭터를 만들고 싶어요. ”
[이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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