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의 이야기는 언제나 매력적이다. 천부적인 자질, 대체불가능한 존재감, 화려한 명성…. 모두의 부러움을 산다. 그러나 광기와 집착으로 점철된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손사레 치면서 도망칠만하다. 완벽을 향한 극한의 집착을 보통내기는 엄두조차 못낸다. 광기 또한 천재의 능력인 것이다.
다음달 12일 개봉하는 '위플래쉬'는 최고를 갈망하는 풋내기 드러머가 포악한 스승을 만나 천재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다.채찍질을 뜻하는'위플래쉬'(Whiplash)는 행크 래비가 작곡한 재즈곡이다. 휘몰아치는 리듬이 일품인 연주처럼 영화 또한 정신없이 관객을 몰아친다. 스승과 제자가 갈등을 거듭하며 폭발하는데 심장이 멎을 것 같고 머리가 멍해진다. 천재의 광기에 압도당하는 106분이다.
드럼을 배우는 음악학교 신입생 앤드루(마일즈 텔러). 우연히 교내에서 악명이 높은 천재 지휘자 플래처(J K 시몬스)가 이끄는 '스튜디오 밴드'에 합류하게 된다. 에이스가 된 것만 같은 자만감에 둥둥 떠 있기도 잠시. 앤드루는 오줌을 지릴 정도로 폭언을 쏟아붓는 플래처 앞에서 스틱조차 제대로 쥘 수 없다. 플래처는 연주자도 눈치 못챈 실수를 잡아내고 실력없는 학생에게 가차없이 욕설을 퍼붓는다. "똥덩어리”이라는 인격 모독적 언사는 예사고"박자가 틀렸다”며 의자와 악기를 집어던진다.
"'그만하면 잘했어(good job)'라는 말은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플래처 밑에서 '병아리' 앤드루는 괴물이 돼간다. 스승의 비웃음은 앤드루 내면에 잠복해 있던 열등감을 점화시킨다. "위대해지고 싶어” 존재 증명 욕구가 폭발한다. 열정이 섬뜩해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연주장으로 가던 애드류는 차가 전복되는 사고를 당한다. 제 시간에 도착하지 않으면 드럼 자리를 뺏긴다는 생각에 머리에 피를 흘린 채 연주장으로 뛰어간다.
영화 후반 완벽을 향한 사제간의 경쟁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경지다. "저 정도까지 해야하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많다. 범인(凡人)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집착이다. 천재는 능력이 타고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영화는 천재를 만드는 것은 광기에 가까운 몰입감이라고 말한다. 1%의 소질만 갖고도 세상을 전율시킬 수 있는 것은 "미쳤다”고 흉을 들을 정도로 자신을 내던졌기 때문이다. 뜨거운 집념이야말로 천재의 것이었다.
플래처는 전설적인 색소폰 연주자 찰리 파커를 만든 것은 한 공연에서 드러머 조 존스가 던진 심벌즈라고 말한다. 모욕감은 아마추어를 전설로 만들었다고. 결국 인격 파괴까지 감수하며 나락으로 떨어져야지만 예술이 움트는 것일까. 완벽의 대가는 처절하다.
긴장으로 팽팽한 인물을 맡은 두 배우의 연기가 놀랍다. 이 영화는 약 두달 전부터 총 4만여명 규모의 일반 시사회를 열고 있다. 입소문만으로 흥행을 일으키겠다는 전략으로 그만큼 영화의 품질을 보장한다는 얘기다. 기립박수가 나온 시사회도 있다. 영화 마지막 5분간 이어지는 연주는 화룡점정이다. 무아지경으로 만드는 흡입력에 휘청거릴 수도 있다.
음악 전문 고등학교에서 드럼을 배웠던 다미엔 차젤레 감독의 자전적 영화다. "박자를 놓칠 수 있다는 두려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무엇보다도 지휘자에 대한 두려움”이 학창시절의 전부였다는 그는 영화 가득 음악에 대한 경외심을 불어넣었다. 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및 남우조연상 등 5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앞서 전세계 140여개 영화제에선 각종 상을 휩쓸었다.
[이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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