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사라진 한국 영화
입력 2015-02-12 15:14  | 수정 2015-02-12 21:57

매년 이맘때면 독일의 수도 베를린은 청명한 아름다움으로 빛난다. 이 도시가 품고 있는 넓은 숲과 맑은 호수 때문만은 아니다. 지난 5일(현지시간)부터 10일간 열리는 '제65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세계적 배우와 감독들이 이 도시에 우아한 멋과 품격을 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세계 영화인들의 축제에 한국의 자리는 없다. 최우수작품상인 황금곰상을 다투는 20편 중 한국 영화는 찾을 수 없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경쟁부문 진출에 실패했다. '칸 영화제'에서도 2년 연속 진출하지 못했다. '베니스 영화제'는 작년 홍상수 감독이 '자유의 언덕'으로 경쟁부문에 진출했지만 빈 손으로 돌아왔다.
불과 4~5년전만 해도 칸, 베를린, 베니스를 지칭하는 세계 3대 영화제에서 한국은 신흥 강자였다. 2000년 칸 영화제에서 임권택 감독이'취화선'으로 감독상을 거머진 후 매년 승전보가 이어졌다. 박찬욱, 이창동 감독은 칸에서 상을 휩쓸었고, 김기덕 감독은 베를린에서 감독상('사마리아')을, 2012년 베니스에선 황금사자상('피에타')을 받았다. 하지만 최근엔 세계적 영화제가 '그들만의 무대'로 멀어진 듯하다. 경쟁 진출작이 눈에 띄게 줄었으며 (장편 경쟁부문) 수상작은 전무하다. 한국영화는 지난해 사상 최초로 국내 영화 매출이 2조원을 넘어섰다. 2년 연속 연 관객 2억명을 돌파하며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는데, 권위와 명예를 상징하는 국제 무대의 성적은 초라하다.
전문가들은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가주의 감독의 부재를 꼽는다. 세계 3대 영화제의 프로그래머들은 유망한 감독들의 차기작에 대한 정보를 인지하고 작품을 본뒤 후보작을 추린다. 이 때문에 유럽쪽 프로그래머들 사이에서 인지도가 높은 감독들의 작품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다. 영화제가 인정한 한국 감독은 이창동, 김기덕, 박찬욱 감독 등이다. 그러나 지난 10여년간 형성된 '감독 풀'이 정체된 것으로 보인다.
2012년 김기덕 감독은 황금사자상 수상 직후 기자회견에서 "요즘 해외 영화제에 가보면 '한국영화가 새롭지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홍상수, 박찬욱, 이창동, 봉준호 감독 이후 그 다음 타자가 없는 현실”이라고 우려한 바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김미현 국제사업부 팀장은 "3대 영화제가 선호하는 작품은 저예산 독립영화에 한정되지 않는다. 박찬욱, 봉준호 감독의 작품처럼 어느 정도 제작비 규모가 되면서 고유의 세계관이 갖춰져야 하는데 상업영화에서 찾기가 힘들다”고 했다.

흥행을 최우선에 염두에 둔 상업영화로 쏠림 현상이 심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 2~3년간 국내는 '1000만 경쟁'이 심화되면서 여름 성수기와 연말을 노린 '텐트 폴'(기획 영화)로 투자가 몰렸다. 지난해는 1700만명을 모은 '명량'이 나왔지만, 500만명 안팎의 '중박' 영화는 전무했다.
임권택 감독은 올초 본보와 인터뷰에서 "1000만 영화를 노리고 흥행될 만한 요소를 죄다 끌어와서 만드는 이상한 풍조가 생겼다”고 걱정했다.
배급사 인디플러그의 김정석 대표는 "흥행성은 적더라도 뚜렷한 작품 세계를 펼치는 감독군이 활발해야하는데 흥행코드를 의식한 비슷한 패턴의 영화가 쏟아지고 감독들은 될만한 영화로만 몰리고있다. 자연히 작가주의 감독층은 얇아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했다.
아직 절망은 이르다. 비록 장편 경쟁부문은 아니지만 '주목할만한 시선' 등 신인 감독들을 조명하는 주요 부문에서 정주리('도희야'), 박정범('무산일기') 등 신예 감독이 조명받고 있다.
김미현 팀장은 "3대 영화제에선 거장 감독이 중요하지만, 요즘 권위가 높아진 북미·라틴계 영화제에서 한국 영화의 선호가 높다. 국내 작품에 대한 시사 요청 문의가 늘고 있다”면서 "해외 영화제 진출을 위한 시사 지원에 더욱 역량을 쏟을 것”이라고 했다.
[이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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