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 사실상 백지화 책임 소재를 놓고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꼬리자르기'에 나서자 보건복지부가 사면초가 상황에 놓였다. 민원이 몰렸던 저소득 지역가입자 문제 해결은 신속히 추진한다는 입장이지만 고소득 피부양자 문제 등 해결에는 여당이 먼저 당정 협의를 요청해야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건의 발단은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달 28일 건보료 개편을"올해 안에는 추진 않겠다”고 입장을 바꾸면서 시작됐다. 불과 이틀전 매일경제신문과 인터뷰할 때만해도 "현재 건보 체계에 무임승차하는 피부양자들이 누리는 이익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바꾸는 것은 증세가 아니라 구조적인 합리화의 문제”라며 적극적인 개혁 의지를 밝혔던 그다. 복지부 내부 움직임을 보면 연말정산 파동으로 '증세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자 청와대가 개입한 정황이 짙었다. 하지만 고소득층의 보험료를 올리고 저소득층의 보험료를 내리는 쪽으로 바꾸는 취지의 개편안이 무산된 데 대한 비판여론이 거세자 청와대는 거리두기에 나섰다. 지난달 29일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전적으로 복지부 장관이 판단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지난달 30일 '연내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안이 발표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당정회의에서 종합적으로 처리할 문제”라고 발언했다.
여당은 아예 "복지부 탓”이라고 대놓고 말했다. 지난 3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건강보험료 개편안의 경우 불합리한 관행을 바로잡자는 좋은 취지에서 마련됐지만, 부처에서 일방적인 연기를 발표하면서 국민의 신뢰를 잃어 버렸다”고 말했다. 같은날 유승민 원내대표도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완전히 추진하지 않고 백지화한다는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결국 복지부는 기존에 밝힌대로 연 소득 500만원 이하 저소득 지역가입자 보험료 산정기준을 합리화하는 방안을 우선 추진하는 한편 당의 요청에 따라 직장가입자 피부양자 문제 등 다른 문제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내부적으로는 '차라리 잘 됐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복지부 한 관계자는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을 하면서 상대적으로 손해를 볼 전체 가입자 1% 가량의 거센 반발을 예상했는데, 여론이 오히려 건보료 개혁을 반드시 해야하는 쪽으로 밀어붙이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문형표 장관이 지난달 28일 '금년중에는' 이라는 단서를 달아 개편 중단을 발표한 게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라는 옹호론도 있다. 복지부 다른 관계자는 "저소득 지역가입자 문제 해결은 당연히 해야하는 것이었고, 나머지 문제는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야하는 거였는데 이번 논란으로 그 시간이 더 당겨졌다”며 "장관도 그런 의미에서 '올해안'이란 단서를 달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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