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작가-작품-관객…예술 권력을 조롱하다
입력 2015-02-04 11:29 
New York Public Library, Lambda printdi

데미 무어가 주연한 1994년작 영화 '폭로'는 남자와 여자의 역전된 성희롱 문제를 다룬 화제작이다. 당시만 해도 성희롱 문제가 남자가 여자에게 일방적으로 가하는 성(性)에 따른 문제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지만 그보다는 권력의 문제라는 점을 집중 조명한 영화였다.
예술 작품에서도 엄연히 권력이 존재한다. 화이트큐브 안에 걸린 마스터피스 작품을 생각해보자. 관람객은 작품 앞에 설치된 안전 바를 넘지 못하고 일정한 거리를 두며 작품을 감상해야 한다. 어찌 보면 일방적인 감상을 강요 받는 셈이다. 현대미술계에서는 이러한 일방주의를 깨고 관람객이 작품에 적극 개입하는 '참여형 작품'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관람객의 반응과 경험에 따라 작품이 움직이기도 하고 바뀌는 식이다. 그러나 이 역시 작가가 관객의 반응을 미리 짐작하고 정해진 시나리오 틀 안에서만 작동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10여년간 활발했던 참여형 전시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서울대미술관에서 올해 처음으로 여는 기획전 '숭고의 마조히즘'전은 바로 현대미술 속 '관객 참여'의 전시에서 작가와 관객 사이의 불편한 권력 관계에 대한 통찰과 전복을 다루고 있다. 이 전시에서 중요한 키워드는 '숭고'와 '마조히즘'이다.
전시를 기획한 주민선 학예사는 "숭고라는 감정은 불편하고 두려우면서도 감탄하면서 경외심을 품는 것이고 마조히즘 역시 타인에게 물리적이거나 정신적인 고통을 받으면서 만족을 느끼는 심리 상태를 말한다”며 이 두 단어의 이중성을 파고드는 전시라고 말했다. 삼성의 후원을 받아 건축가 렘쿨하스가 설계한 전시장에 들어가려면 관람객은 일단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계단을 오르는 행위는 숭고함을 느끼는 미적 체험과 맞닿아 있다. 산이나 절벽 위에서 광활한 자연을 바라보는 인간은 두려움과 감동이 뒤섞인 숭고함을 맛보기 때문이다.
계단을 오르면 첫 번째 눈에 들어오는 작품은 사진 작가 임상빈(39)의 콜라주 '뉴욕공립도서관'이다. 도서관 앞에는 빼곡하게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데 작가가 뉴욕 곳곳의 계단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찍어 정교하게 붙인 작업이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대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절대적인 위치와 시선이다.
미디어아티스트 오용석(39)은 다양한 영화에서 수평선이 나오는 부분만을 오려 모았다. 영화만큼 한 개인의 권력이 집중된 장르는 흔치 않다. 장면을 컷하고 편집하고 이어 붙이고 여기에 이야기를 주입시킨다. 오용석은 바로 영화 속 권력을 해체하는 작업을 통해 영화 문법을 배격한다. 설치 미술가 구동희는 그림 앞에 설치된 안전바를 수십개 모아 미로처럼 바닥에 설치해 놓았다. 이 미로를 따라가다보면 한번쯤은 안전바를 넘어야 한다. 관람객은 '결코 넘지 말아야 할 안전바'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전복에서 오는 쾌감을 느낀다.
정재연의 작품 '~라는 제목의'는 무거운 쇠공처럼 보이는 설치물을 여럿 선보이는데 사실 만지면 '탱탱볼'이다. 이 전시는 시종일관 이렇게 묻는다. "관객으로서 작품을 감상할 때 지켜야 할 특정한 태도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답은 관람객의 몫이다. 7인의 작가가 설치와 영상 사진 등 15점을 선보이는 전시는 4월 19일까지. 관람료는 일반 3000원 (02)880-9508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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