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김원익 기자] ‘두목곰 김동주(39)가 17년간의 프로 생활을 접고 은퇴를 선언했다. 프로야구를 수놓은 슈퍼스타들의 은퇴 방식도 다양하다.
김동주는 31일 MK스포츠에 지난해까지 계속해서 운동을 하면서 현역 복귀의 의지를 놓지 않았다. 하지만 KT와 협상이 결렬되면서 마음으로 포기를 하고 있었다”며 그러다 최근 다시 재협상을 했지만 최종적으로 은퇴를 결정했다. 지도자로 복귀할 생각은 없다. 결정하기까지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지금은 시원섭섭한 마음”이라며 은퇴를 알렸다.
이로써 1998년 프로 데뷔한 김동주는 17년간의 프로생활을 접고 현역에서 은퇴하게 됐다. 김동주는 현역 생활 동안 최고의 우타거포로 이름을 떨쳤던 슈퍼스타. 1625경기에 나서 통산 타율 3할9리, 1710안타, 2루타 293개, 273홈런, 1097타점, 814볼넷을 기록했다. 특히 잠실구장에서만 131개의 홈런을 날리며 ‘잠실 홈런왕으로 이름을 떨쳤고 국가대표 4번타자로도 활약했다.
그런 김동주였지만 은퇴 과정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못했다. 김동주가 KT위즈와의 협상안을 거절하고 은퇴를 결정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은퇴를 결심한 것에 더욱 가깝다.
가장 많은 은퇴의 경우가 바로 ‘자의 반 타의 반의 경우다. 일반적으로 노장이 됐거나 부상 등으로 기량이 하락한 경우, 혹은 경쟁력을 상실한 선수의 경우 구단에서는 은퇴를 제의한다.
하지만 선수의 입장에서는 현역으로 아직 뛰고 싶은 의지가 있고 본인의 경쟁력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를 하기 힘들다. 이 때문에 구단과 선수간의 갈등이 생기기 마련.
이 경우는 당장 1군 전력에서 제외됐거나 기회가 제한적일 가능성이 높다. 선수들은 유니폼을 벗고 제 2의 인생을 시작하거나 기회를 노리는 쪽의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오랫동안 구단에 헌신한 선수이거나 성실성과 노력을 인정받은 경우는 구단에서 지도자 연수를 제안하거나 직원이나 스카우트 등의 다양한 진로를 제의하기도 한다.
결국 은퇴 이후 인생도 고려해야 하는 선수들의 입장에서는 본인의 계획이나 마음보다는 이른 은퇴를 택하게 된다. 슈퍼스타 출신이며 현재 현역에서 활약하고 있는 많은 코치들이 이 경우에 해당된다.
구단과 순탄한 과정의 마무리를 한 경우 은퇴식이나 은퇴경기가 열리기도 한다. 가장 최근 열린 조성환 KBS 해설위원(前 롯데)의 은퇴식처럼 기념행사만 치러지는 경우. 2010년 은퇴한 양준혁 전 해설위원(前 삼성)이나 2005년 은퇴한 장종훈 롯데 코치(前 한화) 처럼 은퇴경기와 은퇴식이 함께 열리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든 간에 선수의 입장에서는 가장 영광스럽고 행복한 은퇴방식. 메이저리그 통산 아시아 선수 최다승인 124승을 거둔 ‘코리안 특급 박찬호 또한 지난해 은퇴식 이후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레전드들은 구단과의 인연을 은퇴 이후에도 이어가기도 한다. 지도자로 활약하다 사령탑에 오르는 이들도 있다. 현역 감독들 중 류중일 삼성 감독이 바로 그런 경우. 김태형 두산 베어스 감독 역시 두산 주장 출신의 신임 사령탑이다. 이외에도 이종운 롯데 감독이나 염경엽 넥센 감독(전신 현대) 또한 현재 지휘봉을 잡고 있는 구단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이들은 구단과의 원만한 은퇴 과정 이후 가장 원활하게 풀린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작고한 故 최동원 前 한화 2군 감독은 선수협 창설 문제로 롯데와 갈등을 빚어 강제로 트레이드 됐고 1990년 삼성에서 유니폼을 벗었다. 이후 국회의원 선거에도 출마하기도 했던 고 최동원은 이후 현장에 복귀했으나 끝내 롯데로 돌아가지 못했다. 하지만 사후에 롯데가 최동원기념사업회, 그리고 유족들과 함께 뜻을 같이해 ‘최동원 동상을 건립하고 ‘무쇠팔 최동원상을 제정하는데 힘을 보태면서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구단의 강제 트레이드가 사실상 故 최동원의 은퇴로 이어졌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의 경우는 가장 안타까운 은퇴로 팬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이처럼 여러 이유들로 트레이드 혹은 방출 통보를 받은 선수들의 경우 타 팀에서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등 떠밀듯이 은퇴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혹은 기량 외적인 구단의 리빌딩 의지 등으로 옷을 벗게 되는 경우, 완전한 남남이 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외적으로 구단과 갈등을 빚어 이별하게 된 경우도 구단과 인연이 끊어지는 사례가 많다. 팬들의 간절한 바람에도 선수로는 레전드였던 이들이 다시 구단으로 복귀하지 못하는 다소 가슴 아픈 은퇴의 방식이다.
출발이 다른 경우도 있지만 신인이라는 큰 전제는 같다. 똑같은 출발 이후 은퇴라는 마무리의 과정은 그렇게 엇갈렸던 슈퍼스타들이었다.
[one@maekyung.com]
김동주는 31일 MK스포츠에 지난해까지 계속해서 운동을 하면서 현역 복귀의 의지를 놓지 않았다. 하지만 KT와 협상이 결렬되면서 마음으로 포기를 하고 있었다”며 그러다 최근 다시 재협상을 했지만 최종적으로 은퇴를 결정했다. 지도자로 복귀할 생각은 없다. 결정하기까지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지금은 시원섭섭한 마음”이라며 은퇴를 알렸다.
이로써 1998년 프로 데뷔한 김동주는 17년간의 프로생활을 접고 현역에서 은퇴하게 됐다. 김동주는 현역 생활 동안 최고의 우타거포로 이름을 떨쳤던 슈퍼스타. 1625경기에 나서 통산 타율 3할9리, 1710안타, 2루타 293개, 273홈런, 1097타점, 814볼넷을 기록했다. 특히 잠실구장에서만 131개의 홈런을 날리며 ‘잠실 홈런왕으로 이름을 떨쳤고 국가대표 4번타자로도 활약했다.
그런 김동주였지만 은퇴 과정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못했다. 김동주가 KT위즈와의 협상안을 거절하고 은퇴를 결정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은퇴를 결심한 것에 더욱 가깝다.
가장 많은 은퇴의 경우가 바로 ‘자의 반 타의 반의 경우다. 일반적으로 노장이 됐거나 부상 등으로 기량이 하락한 경우, 혹은 경쟁력을 상실한 선수의 경우 구단에서는 은퇴를 제의한다.
하지만 선수의 입장에서는 현역으로 아직 뛰고 싶은 의지가 있고 본인의 경쟁력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를 하기 힘들다. 이 때문에 구단과 선수간의 갈등이 생기기 마련.
이 경우는 당장 1군 전력에서 제외됐거나 기회가 제한적일 가능성이 높다. 선수들은 유니폼을 벗고 제 2의 인생을 시작하거나 기회를 노리는 쪽의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오랫동안 구단에 헌신한 선수이거나 성실성과 노력을 인정받은 경우는 구단에서 지도자 연수를 제안하거나 직원이나 스카우트 등의 다양한 진로를 제의하기도 한다.
결국 은퇴 이후 인생도 고려해야 하는 선수들의 입장에서는 본인의 계획이나 마음보다는 이른 은퇴를 택하게 된다. 슈퍼스타 출신이며 현재 현역에서 활약하고 있는 많은 코치들이 이 경우에 해당된다.
구단과 순탄한 과정의 마무리를 한 경우 은퇴식이나 은퇴경기가 열리기도 한다. 가장 최근 열린 조성환 KBS 해설위원(前 롯데)의 은퇴식처럼 기념행사만 치러지는 경우. 2010년 은퇴한 양준혁 전 해설위원(前 삼성)이나 2005년 은퇴한 장종훈 롯데 코치(前 한화) 처럼 은퇴경기와 은퇴식이 함께 열리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든 간에 선수의 입장에서는 가장 영광스럽고 행복한 은퇴방식. 메이저리그 통산 아시아 선수 최다승인 124승을 거둔 ‘코리안 특급 박찬호 또한 지난해 은퇴식 이후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레전드들은 구단과의 인연을 은퇴 이후에도 이어가기도 한다. 지도자로 활약하다 사령탑에 오르는 이들도 있다. 현역 감독들 중 류중일 삼성 감독이 바로 그런 경우. 김태형 두산 베어스 감독 역시 두산 주장 출신의 신임 사령탑이다. 이외에도 이종운 롯데 감독이나 염경엽 넥센 감독(전신 현대) 또한 현재 지휘봉을 잡고 있는 구단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이들은 구단과의 원만한 은퇴 과정 이후 가장 원활하게 풀린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조성환 KBS 야구 해설위원이 은퇴식을 하고 있다. 사진=MK스포츠 DB
그런가하면 완벽하게 남남으로 돌아서기도 한다. 은퇴방식과 과정에서 서로 간에 생채기가 남은 경우다. 특히 이 경우는 은퇴 시점을 두고 선수와 구단이 끝내 이견을 보였거나, 각종 사건들로 뜻하지 않게 결별하게 된 상황이다.작고한 故 최동원 前 한화 2군 감독은 선수협 창설 문제로 롯데와 갈등을 빚어 강제로 트레이드 됐고 1990년 삼성에서 유니폼을 벗었다. 이후 국회의원 선거에도 출마하기도 했던 고 최동원은 이후 현장에 복귀했으나 끝내 롯데로 돌아가지 못했다. 하지만 사후에 롯데가 최동원기념사업회, 그리고 유족들과 함께 뜻을 같이해 ‘최동원 동상을 건립하고 ‘무쇠팔 최동원상을 제정하는데 힘을 보태면서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구단의 강제 트레이드가 사실상 故 최동원의 은퇴로 이어졌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의 경우는 가장 안타까운 은퇴로 팬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이처럼 여러 이유들로 트레이드 혹은 방출 통보를 받은 선수들의 경우 타 팀에서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등 떠밀듯이 은퇴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혹은 기량 외적인 구단의 리빌딩 의지 등으로 옷을 벗게 되는 경우, 완전한 남남이 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외적으로 구단과 갈등을 빚어 이별하게 된 경우도 구단과 인연이 끊어지는 사례가 많다. 팬들의 간절한 바람에도 선수로는 레전드였던 이들이 다시 구단으로 복귀하지 못하는 다소 가슴 아픈 은퇴의 방식이다.
출발이 다른 경우도 있지만 신인이라는 큰 전제는 같다. 똑같은 출발 이후 은퇴라는 마무리의 과정은 그렇게 엇갈렸던 슈퍼스타들이었다.
[one@mae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