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위기의 롱숏펀드’ 반년새 뭉칫돈 1兆 이탈
입력 2015-01-13 04:03 
지난해 상반기 2조원가량의 시중자금을 빨아들이며 인기 상품으로 떠올랐던 ‘롱숏펀드와 ‘한국형 헤지펀드가 위기를 맞고 있다. 최근 7개월 사이 설정액이 1조원 이상 줄었고, 지난해 4분기 대다수 펀드의 수익률도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한국형 헤지펀드의 약 70%가 롱숏 전략을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한마디로 말해 ‘롱숏의 위기라고 평가된다.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롱숏펀드와 한국형 헤지펀드의 합계 설정액은 4조3975억원으로 7개월 전인 5월 말 기준 5조4824억원 대비 1조원 넘게 줄었다. 롱숏펀드가 2조5848억원에서 1조9031억원으로 6817억원, 헤지펀드가 2조8976억원에서 2조4944억원으로 4032억원 각각 감소했다.
롱숏과 헤지펀드에서 뭉칫돈이 이탈한 것은 지난해 3분기까지 비교적 양호했던 수익률이 4분기 들어 휘청거렸기 때문이다. 지난달 26일 기준 롱숏펀드는 29개 중 19개, 헤지펀드도 27개 중 18개가 최근 3개월 수익률이 마이너스였다.
롱숏펀드의 평균 수익률은 지난해 연초 이후 지난해 9월 말까지 3.7%로 선방했지만 4분기엔 -1.5%로 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 4분기 국내 증시가 약세장이긴 했지만, 롱숏펀드는 시장 상황과 무관하게 중위험·중수익을 추구한다던 설명과 달리 실제 성과에서 큰 괴리를 보였다. 이에 실망한 투자자들이 환매에 나선 것이다.

롱숏과 헤지펀드 투자 성과가 최근 저조한 것은 주요 공매도(숏) 대상이었던 에너지·화학·운송 등 경기민감주가 지난해 11월 중국 기준금리 인하 등의 여파로 일시적으로 반등하면서 숏에서 손실이 발생했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롱숏 전략의 위험성과 한계가 드러난 대목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여기에 금융위원회가 이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투자자별로 일정 비율 이상의 개별 종목 공매도 잔액 공시제도를 도입하기로 하면서 롱숏 전략 펀드는 큰 난관에 부딪힐 것으로 우려된다.
지난 한 해 시장이 방향성이 없이 움직이다보니 쉽지 않았고, 본래 ‘롱온리(Long Only·일반주식형) 펀드매니저로서 새로운 일(롱숏)을 시도하다보니 시행착오도 있었습니다.”
지난해 수익률이 좋지 못했던 한 롱숏 전략 펀드매니저가 털어놓은 성과 부진의 이유다. 이 한마디에 최근 롱숏 및 한국형 헤지펀드의 위기 원인이 함축돼 있다고 업계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문제는 올해도 수익률 변동성이 커질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투자 전문가들은 올해도 시장이 뚜렷한 방향성 없이 철저히 실적에 따른 종목 간 차별화 장세가 심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롱숏 펀드가 롱이나 숏 종목 선택을 잘하지 못할 경우 수익률 변동성이 매우 커질 수 있는 셈이다.
운용사별 공매도 잔액 공시제도의 도입은 롱숏 펀드의 핵심 운용 전략을 고스란히 드러낼 수 있다. 공시된 공매도 종목을 다른 일반 운용사나 큰손 투자자가 매수로 맞대응할 경우 숏 전략의 위험성이 매우 커질 수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한국 시장만을 대상으로 한 롱숏 전략에는 한계가 숫자로 증명되고 있는 만큼, 투자 대상을 해외로 넓혀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 한국형 헤지펀드의 경우 롱숏 일색에서 벗어나 이벤트드리븐이나 차익거래, 멀티스트래티지 등으로 전략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롱숏의 위기가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최창규 NH투자증권 연구위원은 롱숏 전략에 특화됐던 전통적 운용사의 부진은 계속되는 반면 새로운 전략을 활용하는 중소형 운용사의 헤지펀드는 양호한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며 한국형 헤지펀드는 투자 지역과 전략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롱숏펀드 수익률 부진 원인은
국내 숏물량 부족…펀드매니저 5명중 4명 운용경험 전무

롱숏 수익률의 오르내림이 심한 것은 국내 증시가 구조적으로 롱숏 전략을 원활히 펼치기가 쉽지 않다는 데 1차적인 원인이 있다. 개별 종목의 공매도 물량을 확보하기가 어렵다보니 상당수 롱숏 및 헤지펀드 매니저들이 지수선물을 공매도하고 개별 중소형주를 매수하는 전략을 폈다. 그러다보니 중소형주 성과가 좋았던 1분기와 3분기엔 양호한 성과를 냈지만, 그렇지 않았던 2분기와 4분기에는 대부분 손실을 기록했다.
펀드매니저의 롱숏 운용 경험 부족도 문제로 꼽힌다. 현재 국내 설정된 롱숏(30개) 및 헤지펀드(32개)는 총 62개로 펀드를 운용하는 매니저 약 50명 가운데 과거 롱숏 펀드 운용경험이 있는 매니저는 10명 안팎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주식형 펀드매니저들은 롱숏 펀드라고 해도 시장의 방향성을 예측하고 상승 가능성이 높은 종목들을 찾는 데 익숙하다. 상당수 매니저들이 에너지·화학·철강 등 올해 업황이 좋지 않았던 경기민감주들에 숏을 걸어 놓고 중국소비주 등 중소형주 위주로 매수 종목을 찾는 데 혈안이 돼 있다보니, 지난해 4월이나 11월처럼 경기민감주가 일시적으로 반등했을 때 월간 수익률이 최대 마이너스 5%씩 발생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매니저들의 잦은 이직과 운용사의 원칙 없는 인사도 문제다. 2013년까지 우수한 성과로 1조원 넘는 롱숏펀드를 운용했던 트러스톤자산운용은 김주형 본부장이 지난해 1월 미래에셋자산운용으로 옮긴 이후 지난 1년 동안 약 -4%의 수익률과 함께 자금이 2500억원가량 빠져 나갔다. ‘하이 힘센 헤지펀드로 지난해 10% 넘는 수익률을 기록하며 눈길을 끌었던 하이자산운용은 최근 담당이었던 배재훈 매니저를 하이투자증권으로 인사발령을 냈다. 이 펀드는 앞으로 김영진 현 가치운용팀장이 운용을 맡게 된다.
■ <용어 설명>
▷ 롱숏펀드 : 주가가 오를 만한 종목은 매수하고(long) 내릴 만한 종목은 공매도(short)하는 방식으로 양방향으로 수익을 추구하는 펀드. 한국형 헤지펀드도 약 70%가 롱숏 전략을 활용하고 있다.
[최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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