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HOF 투표로 드러난 ‘스테로이드 시대’의 두 얼굴
입력 2015-01-07 06:32  | 수정 2015-01-07 13:21
배리 본즈는 홈런 기록을 경신했음에도 금지 약물 연루설 때문에 명예의 전당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사진=ⓒAFPBBNews = News1
[매경닷컴 MK스포츠(美 로스앤젤레스) 김재호 특파원]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투표는 단순히 명예의 전당 입회자를 가려내는 투표가 아니다. 투표권을 가진 기자들이 해당 시대를 평가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2015년 현재, 이들은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밝으면서도 또 어두운 시대를 평가하고 있다.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은 7일(한국시간) 전미야구기자협회(BBWAA) 투표 결과를 공개했다. 그 결과, 랜디 존슨, 페드로 마르티네스, 존 스몰츠, 크레이그 비지오가 쿠퍼스타운으로 향하게 됐다.
BBWAA의 명예의 전당 투표는 까다롭기로 정평이 났다. 75%라는 높은 커트라인도 있지만, 무엇보다 ‘명예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만큼 후보자들에 대한 까다로운 검증을 한다.
그런 투표에서 4명이 뽑힌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1995년 이후 최초이며, 투수가 3명이 뽑힌 것은 사상 처음이다.
이번 투표는 주로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 활약한 선수들을 위주로 진행됐다. 이 시기는 이른바 ‘스테로이드의 시대다. 어느 때보다 화려했지만, 동시에 어두운 시대다. 배리 본즈가 최다 홈런 기록을 갈아치우는 등 대기록들이 달성됐지만, 이후 당시 활약했던 스타들이 약물에 연루된 것이 폭로됐다.
빛과 어둠이 공존했던 시기. 투표에도 이것이 반영됐다. 지난해 3명(그렉 매덕스, 톰 글래빈, 프랭크 토마스)에 이어 또 한 번 대거 입회자를 배출했다. 그와 동시에 약물 복용에 연루됐다는 의심을 받은 로저 클레멘스(37.5%), 배리 본즈(36.8%), 마크 맥과이어(10.0%) 등은 기준을 넘기지 못했다.
논란이 많을 수밖에 없는 시기인 만큼, 이를 대하는 투표권자들의 반응도 여러 갈래로 나뉘고 있다. 득표율에서 알 수 있듯, 대부분 기자들은 약물에 연루된 선수들에게 표를 주지 않았다. 심지어 지난해 투표에서는 ‘스테로이드 시대에 뛴 선수들은 인정할 수 없다며 시대를 통째로 부정하고 기권표를 던지는 기자까지 나왔다.

흥미로운 점은, ‘스테로이드 시대를 그 자체로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힘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클레멘스와 본즈가 지난 시즌에 비해 득표율이 오른 것도 이 영향으로 보인다).
이번 투표에서 클레멘스와 본즈를 찍었다고 밝힌 ‘ESPN의 제이슨 스타크는 본즈는 누구보다 홈런을 많이 때린 선수고, 클레멘스는 사이영상을 제일 많이 받은 선수다. 이들의 기록은 어디에도 지워지지 않았다”며 이들의 공로를 무시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 시기에는 금지약물을 복용한 선수들이 많았다. 우리가 모르는 사실이 더 많다. 명예의 전당은 이 시기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를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금지 약물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던 시대를 지금의 잣대로 판단하는 것은 옳은 일인가.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은 새로운 질문에 직면했다. 사진= MK스포츠 DB
‘USA투데이의 밥 나이팅게일 기자도 명예의 전당 투표는 희화화됐다”면서 비판의 날을 세웠다. 그는 마이크 피아자와 제프 배그웰도 지금은 금지된 안드로스테네디온을 복용했다. 이반 로드리게스가 2004년 갑자기 몸무게가 준 것은 마법의 힘은 아니었을 것”이라며 누가 깨끗하고, 누가 더러운지를 엄격하게 가려내는 일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클레멘스와 본즈가 팀을 헤친 것은 아니지 않은가”라며 금지 약물에 대한 경각심 자체가 없었던 시대를 뛴 선수들에게는 그 시대에 맞는 평가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금지 약물 파동이 메이저리그를 휩쓴 이후,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이에 대한 징계 기준을 강화하며 부정적인 요소를 몰아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지금의 관점에서 ‘스테로이드 시대를 바라보는 것은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혼란은 적어도 몇 년은 계속될 것이다.
[greatnemo@maekyung.com]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