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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민 “아들 작품 보고도 늘 말이 없으시다. 평생을…”
입력 2015-01-04 20:52  | 수정 2015-01-08 17:10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향희 기자]
영화 ‘국제시장의 흥행 기세가 심상치 않다. 개봉 후 평단의 호불호가 엇갈렸던 이 영화는 개봉 3주차를 맞아 800만 고지를 앞두고 있다.
이 추세대로라면 2015년 첫 천만 영화 탄생이 기대된다. 흥행도 흥행이지만,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주요 촬영지가 관광상품으로 거듭난다고 하니 속된 말로 대박을 쳤다.
그 중심에 배우 황정민(44)이 있다.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최고 흥행작이던 ‘신세계(468만 2492명)의 스코어를 넘어섰다. 감회가 남다를 터다.
어휴,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죠. 이렇게 100억 이상이 들어간 대작은 처음 인데다 상영관수가 900개인 것도 처음입니다. 첫날 18만명의 관객이 들었다기에 깜짝 놀랐어요. 처음인 게 너무 많아서 어리둥절하네요. 첫 경험이 너무…(웃음)”
18일 개봉한 영화 ‘국제시장은 제작비만 140억원, 홍보 마케팅 비용까지 포함하면 180억원이 투입됐다.

그런데 영화의 소재는 너무도 평범한, 가장 위대한 아버지 이야기다. 한 남자의 일생을 통해 한국전쟁부터 파독광부의 고난, 베트남전 참전, 이산가족 찾기까지 굴곡진 현대사가 드러난다. 아버지 입으로 듣는 내가 젊었을 땐 말이야” 같은 이야기다.
황정민은 이 영화에서 격동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낸 주인공 ‘덕수를 연기했다. 혈기왕성한 20대 청년부터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의 모습, 세상 풍파를 이겨낸 70대 노년의 모습까지. 한 남자의 일대기를 ‘살아본 사람처럼 표현해냈다.
아버지 영화라서 무조건 한다고 했어요. 감독님에 대한 굳건한 믿음 같은 것 때문도 아니었고, 그냥 아버지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윤제균 감독의 출연 제의를 받고 황정민은 단숨에 오케이” 했다. 윤제균 감독 역시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덕수 역으로 황정민을 염두에 뒀다. 영화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진정성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하고 흐느끼는 마지막 대사는 명배우 황정민의 이름값을 실감케 했다.
감독은 우리 부모님 세대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일종의 헌사 같은 영화”라고 소개했다.
- 부산 국제시장이 주요 배경이다.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부대끼며 살아가는 서민들의 공간이 시장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국제시장은 흥남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만든 시장이다. 원래는 시장이 없었는데 피난민들이 와서 먹고 살아야하니까 만든 시장이다. 지금도 가 보면 재래시장 같은 느낌이 살아있다. 그 시장통 안 작은 가게 ‘꽃분이네를 무대로 벌어지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흥행 기세가 심상치 않지만, 개봉 전 대작을 이끈 주인공으로 부담감이 컸을 듯 하다.
아직도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다. 이렇게 100억이 들어가는 큰 작품은 처음이고, 상영관수가 900개인 것도 처음이다. 대작이라는 것이 처음인데다 첫날 관객이 18만명인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 이것도 처음이다. 처음인 게 너무 많아서 어리둥절하다.(웃음)”
-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나뉜다. 때 아닌 이념논쟁도 있었다.
역사니까 그런 식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거다. 2014년에 너무나 마음 아픈 일들을 겪었다. 정치적으로도 복잡했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는 이것을 역사로 보지 않는다. 그냥 지나가는 일로 본다. 40~50년 후 그 세대들은 이 시간들을 역사로 볼 것이다. 어떤 시선으로, 어떤 차이로 보느냐에 따라 굉장히 다르다. 중요한 것은 덕수라는 인물을 통해 순간순간 각자의 아버지를 떠올릴 거라는 거다. 애초에 덕수 한 사람이 그런 수많은 일들을 겪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영화라서 이렇게 만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덕수가 어떤 시퀀스에서는 나의 아버지가 될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의 아버지가 될 수도 있다.”
-영화보다 더 파란만장하고 힘들게 산 분들도 많다. 그래도 덕수는 성공한 삶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 그런 순간순간에 조금씩이라도 관객 분들의 아버지를 떠올릴 수 있다면. 찰나이기는 하지만 아버지라는 대상을 떠오르게 하는 것이 바로 ‘국제시장이다.”
-‘인생 별 거 없죠? 다 이렇게 살아요. 여러분도 힘들죠?라는 따뜻한 위안과 메시지를 주는 느낌이다.
맞다. 그래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장면이 마지막 장면이다. 덕수는 6.25 흥남철수작전, 파독 광부, 월남전, 이산가족찾기 등을 겪은 인물이다. 가족들은 웃고 떠들고 있는데 쪽방에서 홀로 흐느끼며 독백하는 장면은 살아낸 삶이 정말 고단하고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하면서 덕수를 노인으로 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나이를 먹든 어리든 지금도 살기 힘들지 않은가. 하지만 어떻게든 잘 살려고 노력한다. 이것이 다 같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할아버지가 이야기하니까 할아버지로 치부하는 건데, 그 속내는 포괄적인 것들이 있다. 관객들이 그 대사를 듣고 ‘나도 힘든데 하고 느낄 수 있다면. 내겐 그게 제일 중요했었다.”
-해외 촬영과 부산 촬영은 어떻게 진행됐나.
파독광부 장면은 체코 프라하에 가서 촬영했다. 당시 독일 함보른 광산을 재현하기 위해 광산을 개조한 체코 오스트라바 석탄 박물관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영화 속에 등장한 채굴 장비 역시 그 당시 실제 탄광에서 쓰던 장비를 그대로 사용했다. 베트남 장면은 태국에서 촬영했다. 자동차 핸들 위치, 사용 물품 등 베트남과 태국의 미묘한 차이를 없애기 위해 베트남의 옛 차량과 소품들을 태국으로 싣고 와 사용했다. 그렇게 첫 촬영을 체코에서 시작해 끝내고 한국으로 들어와서 촬영했다. 그 당시 판매했던 의상을 찾거나 의상을 특별 제작할 정도로 공을 들였다.”
-그 이후에 부산 촬영을 했나.
부산에서 한 3개월 살았다. 계속 부산에서 찍다 중간쯤에 할아버지 분장해서 따로 찍었다. 분장하는 분들 스케줄이 있기 때문이다. 맨 마지막 촬영이 12월 24일이었는데 겨울에 태국을 갔다. 태국을 11월 말인가 12월 초에 가서 한달 동안 촬영하고 돌아왔다.”
-1년 전 촬영을 마쳤는데, 후반작업을 오래한 것 같다.
촬영 끝나면 해야할 일이 없으니까 잊고 있었다. 10월쯤 돼서 개봉이 다가오니까 생각했다. 작년 12월에 촬영을 끝냈다. 드디어 우리 아이가 볼 수 있는 영화라 더욱 벅차다.”
-체중을 예전보다 많이 감량한 것 같다.
전작 ‘남자가 사랑할 때부터 많이 빠졌었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는 일부러 다이어트 하지 않았다.”
-‘밥상 소감 이후 황정민이란 배우에게 인간의 향기를 읽는 관객이 많다. 부담스럽지 않은가. 실수하면 안 된다는 생각 같은.
아니다.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이상 분명히 포기해야 할 부분은 포기해야 한다. 그것은 유명하거나 유명하지 않거나의 문제가 아니다. 예술가로서 이 시대를 같이 사는 사람의 직업 인식 중에 그런 것이 있다고 본다. 그 직업을 가졌다면 분명히 포기해야 할 부분은 포기해야 한다. 철저하게 절제해야 하는 것도 있고, 철저하게 겸손해야 하는 것도 있다. 그냥 내 마음대로 할 거라면 배우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배우들이 언론 시사 때 많이 울었다.
우리도 그날 영화를 처음 봤다. 대본보다 잘 나왔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상상하고 있던 대본의 완성본과는 달랐다. 초반부터 눈물이 나기 시작하면서 계속 힘들게 봤다.”
-감독 전화 받고 한 번에 한다고 했다고 들었다.
시나리오도 안 보고 그냥 한다고 했다. 감독님에 대한 굳건한 믿음 같은 것 때문도 아니었다. 그냥 아버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내가 아버지가 되다 보니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오더라. 그냥 이쯤에서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 잘할 수 있는데란 생각을 했다. 한국 영화 중에 아버지 이야기가 많이 없지 않나. 남자들은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먹먹한 무언가가 있다. 거의 20년 넘게 서로 말 없이 지내온 기간이 있다.”
-김윤진과도 오랜만에 작품을 했다. 그것도 부부로 호흡을 맞췄는데.
감개무량하다. ‘쉬리에 내가 단역으로 출연했던 인연이 있는데, 정말 고마웠다. 시작할 때 ‘윤진씨가 이거를 한대? 그랬다.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느낌이었다. 친해진 이후 찍었으면 연기처럼 보였을 것이다. 감독님 역시 덕수의 사랑 이야기를 예쁘게 찍고 싶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분장이 살짝 아쉬웠다.
분장이니까 한계가 있다. 아무리 날고 긴다는 사람들이 와도 분장은 분장이다. 나이가 70대가 아닌데 그걸 어떻게 채우겠나. 이미 70대가 아닌 걸 드러내고 하는 거였다. 분장하고 연기한다는 걸 관객들도 아니까. 다만, 분장 시간이 오래 걸려 진이 다 빠져 정작 중요한 촬영에 몰입하지 못하면 안된다. 분장한 얼굴의 황정민이 덕수를 연기해내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래도 독일에서 처음으로 노인 분장을 하고 아들과 영상통화를 했는데, 애가 아빠인지 모르더라. 하하!”
-캐릭터 연구를 완벽하게 하는 배우로 유명하다. 살아보지 않은 70대 노인 캐릭터는 어떻게 준비했나.
탑골공원 가서 할아버지들 다 인터뷰 했다. 역할을 맡으면 직접 인터뷰를 한다. 걸음걸이, 손떨림, 호흡, 속옷 스타일 등 하나부터 열까지 깨알같이 인터뷰 한다. ‘내복은 언제까지 입나 ‘여름에도 입나부터 시작해서 ‘일을 할 때 어디가 제일 힘든가 등. 어쨌든 근육이 없으니까 ‘주로 앉아 있을 때 똑같은 모습으로 앉아 있는데 그렇게 오래 어떻게 버티는가 등에 대해 기자처럼 연구하고 관찰했다. 70대 노인을 표현하는 게 큰 핵이었다.”
-촬영하면서 실제 아버지를 떠올렸을 듯 하다.
어휴, 아버지 생각 안 난다. 촬영하기 바쁘다.(웃음) 촬영 끝나고 완성된 영화를 보니까 그제서야 아버지 생각이 나더라.”
-영화를 본 실제 아버지의 반응은 어땠나.
아무 말씀 없으셨다. 늘 이야기가 없으시다. 평생을.”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를 소개한다면.
촬영하면서 ‘난 덕수보다는 낫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니까라는 이야기를 했다. 영화를 두 번 봤으면 좋겠다. 영화를 보면서 분명히 부모님이 생각이 날 것이다. 아주 잠깐이지만 아버지는 ‘옛날에 내가 말이야라는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러면 듣는 자식은 짜증이 나서 ‘이제 그만 좀 해요라고 하겠지만 그 시간조차 아름답지 않은가. 그것이 내가 이 영화를 하는 이유인 것이고 이 영화하길 잘했다는 것이다. 관객들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런 부분이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감히 상상도 못하는 어린 친구들의 호응도 좋다.
20대들이 불편하게 보면 어쩌나 걱정이 있었다. 그런데 오히려 더 열심히 잘 보고 부모님과 같이 봐야겠다고 하더라. 들은 얘기로는 관객 평점 가운데 10대 평점이 가장 높다고 하더라.”
-철저하게 그 인물로 살다가 작품을 끝내면 후유증에 시달리지 않나.
그런 거 없다. 끝나면 ‘아, 끝났다. 만세하고 딱 잊는 스타일이다.(웃음) 그리고 나서 쉬고 다시 또 준비한다.”
-150억 대작을 짊어진 주인공으로 이 영화에 대한 한줄 평을 남긴다면?
싫든 좋든 어쨌든 우리의 이야기다. 나의 이야기, 너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다. 우리가 안고 가야 할 이야기다.”
-차기작에 대해 소개해달라.
‘베테랑이다. 다 찍었다. 3월께 개봉한다. 현재 스릴러 ‘곡성과 실화 소재의 ‘히말라야를 촬영 중이다. 이게 끝나면 영화 ‘검사외전 촬영을 시작한다. 좋은 영화가 될 것이다.” 사진=강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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