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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신년인터뷰] ‘LG맨’ 박용택 “난 불행할 뻔 했던 남자다”①
입력 2015-01-01 07:16  | 수정 2015-01-01 07:17
LG 트윈스 외야수 박용택은 행복한 남자다. 사진=천정환 기자
[매경닷컴 MK스포츠 서민교 기자] 지난해 프로야구 시즌 종료 후 LG 트윈스 팬들은 노심초사 자유계약선수(FA) 협상 결과를 기다렸다. 협상 테이블이 길게 차려지면서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팬들이 나섰다. LG 팬들은 재계약을 촉구하는 릴레이 동영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LG 구단 홈페이지에는 재계약 글들이 줄을 이었다. 이례적인 집단행동이었다.
LG의 프랜차이즈 스타 박용택(36)을 향한 외침이었다. 박용택이 응답했다. 그의 선택은 LG였다. 4년간 50억원에 재계약을 했다. 아주 잠깐 흔들리기도 했던 박용택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돈이 아닌 팬들의 사랑이었다.
2014년의 끝자락. 홀가분하게 ‘LG맨으로 남은 박용택을 잠실구장에서 만났다. 2015년 을미년 청양띠의 해. 1979년생인 박용택의 ‘양꿈은 달콤했다. 그는 LG가 아니었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며 행복한 미소를 던졌다.


▲ 반갑다. 얼굴이 더 좋아 보인다.
요즘 행복하다.(웃음) 개인 훈련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제 마음 편하게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가려고 한다.

▲ 최근 2년이 행복했을 것 같다. 2년 연속 가을야구의 느낌이 더 남다른 선수 아닌가.
맞다.(웃음) 참 이게 뭔데 이렇게 오래 걸렸고, 또 이게 뭔데 그렇게 힘들었나. 이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 2013년과 2014년 가을야구, 어떻게 달랐나.
두 시즌 모두 시작이 좋지 않았다. 2013년은 감동이었고 2014년은 감동보다는 경험이었다. 지난 시즌은 선수들 전체가 자신 있게 들어갔었다. 준비도 잘했다. 돌이켜 보면 2년차 징크스가 있었던 것 같다. 막상 시즌에 들어간 뒤 벽에 걸리니까 선수단이 전체적인 멘붕(멘탈붕괴)이 온 것 같다. 그 당시 김기태 감독님 나가시고 그런 일들이 벌어지면서 한참 헤맸다. 양상문 감독님이 오시면서 선수들도 딱 그 생각이었다. 한 계단씩 올라가는 것밖에 없었다. 이제 LG가 힘이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 개인적으로도 큰 의미가 됐을 것 같다.
꼭 예전의 나와 비슷하다. 2009년 3할7푼2를 쳤을 때 다음해 4할을 칠 것 같았다. 그런데 6월까지 2할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3개월을 그랬다. 그때 포기하고 하루하루 해보자는 마음을 먹었다. 이후 7,8,9월을 잘 쳐서 3할로 올렸다. 그때와 상당히 비슷했다. 시행착오를 겪은 뒤 안정감이 생겼다. 우리 팀도 이런 경험을 하면서 힘이 생긴 것 같다.


▲ LG의 암흑기를 보냈고, 다 이겨냈다. 팬들의 관심이 극심한 LG 아닌가.
팬들이 참 세다.(웃음) 잘할 땐 응원하고 못할 땐 관심을 꺼버리는 팀들도 있는데, 우리 팬들은 잘할 때 열렬히 응원하고, 못할 땐 격려해주는 팬들도 있지만 그 끈을 놓지 않는다. 질타도 비난도 많이 해주신다. 어릴 땐 그런 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2~3년차 때 어린데도 불구하고 팀의 기둥 같은 선배들이 모두 나가서 처음 6~7년은 규정 타석을 채운 타자가 나와 (이)병규 형 정도밖에 없었다. 정신적으로 혼란스러웠던 적이 많았다. 다른 게 없다. 그냥 야구하는 것밖에 없었다. 혼자서 연습하는 걸 좋아하는데, 그때 습관이 든 것 같다. 야구할 때만큼은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게임이 아닌 연습을 할 때는 이런저런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에 ‘잘 되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내 만족이랄까. 이만큼 했으니 ‘잘 할거야라는 생각으로 살았던 것 같다.

▲ 그런 것이 꾸준함의 비결인가.
사실 난 꾸준한 선수는 아니다. 어중간하게 7년을 했고 어중간하게 6년은 꾸준했다. 이제 한 단계 올라선 기분이다. 앞으로 7~8년 한 단계 더 올라가서 꾸준해야 하지 않겠나.(웃음)

▲ 박용택이 꾸준하지 않으면 도대체 꾸준한 선수가 누군가.
이 정도로 꾸준해서는 안 된다. 그래프가 조금씩 더 올라가야 한다. 그래도 나름 조금씩 올라가긴 하고 있는 것 같다. 신체적인 순발력이나 파워는 나이를 거스를 순 없다. 그렇게 떨어지는 것을 상쇄시키기 위해 연구하고 계속 생각하며 찾아야 한다. 야구는 무궁무진해서 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더라.

▲ 방망이는 요즘에도 늘 옆에 두나.
방망이는 언제 어디서 영감이 올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도 항상 옆에 둔다. 없으면 불안하다. 갑자기 뭔가 생각날 때가 있는데, 딱 잡아보고 뭔가 해보고 해야 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다.

LG 유니폼을 입지 않은 박용택은 상상하기 힘든 그림이다. 박용택의 선택은 그래서 반갑다. 사진=천정환 기자

▲ FA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만족이라는 단어가 완벽할 순 없지 않나.
모든 것이 그렇지만 완벽히 만족할 순 없다. 그런데 가끔 있더라. 자기 생각보다 더 많이 받는 사람들이 있긴 있더라.(웃음) 그건 사주에 돈복이 타고난 사람이고, 난 아주 좋은 상태? 좋은 계약을 했다고 생각한다.

▲ 그 만족도라는 것이 LG이기 때문에 다를 것 같다.
이번 FA 협상 과정도 그렇고 계약을 하고 나서도 그렇고 많은 것을 느꼈다. 스스로 반성도 많이 하게 됐다.

▲ 반성? 의외다.
팬들에 대한 반성이다. 정말 날 이만큼 생각해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LG에서 사랑을 받는 선수지 정도는 갖고 있었지만, 진짜 과분하더라. 그래서 반성을 많이 하게 됐다. 내 성격이 팬들에게 살갑지도 않은데 그런 쪽으로도 많은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감동을 많이 받았다.

▲ 진정한 LG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남을 수 있게 됐다. LG에 남아줘서 감사하다.
협상이 끝나고 나니까 할 수 있는 얘기다. 진짜 내 꿈은 LG 트윈스에 남아서 우승도 하고 은퇴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협상 기간에 정말 많은 얘기들이 들렸다. 나도 흔들리더라. 하고 나서 보니까 정말 큰일 날 뻔 했다. 정말 잘 선택했다. 아내에게 항상 하는 말이 ‘하루하루 내 생각에 행복하게 사는 것이 꿈이다라고 한다. 그런데 그게 행복하지 않을 뻔 했다. 100억, 200억이 더 있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지 않나. 그래서 LG에 남지 않았다면, 정말 큰일 날 뻔 했다. 난 불행할 뻔 했던 남자다.(웃음)

▲ 다시 야구 얘기를 하자. 어깨에 대한 팬들의 말에 스트레스를 받나.
당연히 듣고 싶지 않은 말이다. 그래도 구분은 꼭 해줬으면 좋겠다. 난 공 던지는 것이 그런 거지, 수비 전체는 아니다. 수비력과 송구력은 나눠졌으면 좋겠다. 두 개를 묶어서 얘기하시는 분들이 많으시다. 아직까지 그 정도는 아니다.(웃음) 공 던지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는 지금도 많다. 옛날로 돌아간다면, 좀 쉬었어야 했다. 사실 어깨라는 것이 1년을 쉬어야 하기 때문에 어린 나이에는 1년의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당시 병원에서도 그랬고 트레이너 소견도 재활로 충분히 갈 수 있는 정도였다. 내가 좀 예민하게 느끼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쉼 없이 그냥 해버렸다. 따로 재활기간을 두지 않고 했다. 시간이 흐르다보니 이렇게 됐다.

▲ 풀타임 수비가 힘들다. 송구력에 대한 스트레스 극복법이 있나.
매년 겨울에 도전하고 있다. 통증에 있어서는 해가 갈수록 많이 줄고 있다. 워낙 공 던지는 매커닉이 달라져 아직 이겨내지 못하고 있다. 비시즌 꼭 해야 할 일 2~3개 안에는 공 던지는 것을 다시 만드는 것이 꼭 들어 있다. 예전에 몇 년은 캐치볼을 못했을 정도였다. 안 던지다보니까 매커닉적으로 떨어졌다. 그래도 극복하며 준비하는 과정도 재미가 있다.

양띠를 맞은 박용택의 꿈은 LG의 우승 그 이상이다. 사진=천정환 기자

▲ 2018년, 마흔까지 뛰게 됐다. 앞으로 어떻게 보답을 할 생각인가.
우승을 해야 된다. 한 번이 아니라 두, 세 번은 해야 한다. 네 번 하면 좋고.(웃음) 정말 네 번 하면 미련 없이 마흔에 4할 쳐도 은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네 번 안 하면 그렇게 은퇴는 안 할 거다. 세 번 우승해도 그렇겐 못하고.(웃음) 농담이 아니라 정말 우승을 할 때도 됐다. 내 몸 관리는 자신이 있어서 걱정을 하지도 생각도 않는다. 대신 ‘우리 팀이 어떻게 하면 우승을 할까라는 생각에만 집중해야 한다. 개인적인 커리어에 우승이 없으면 많이 허전할 것 같다. 내년부터 해야 한다. 힘이 생겼다.

▲ 우승은 당연한 꿈이다. 그래도 FA 첫 해다. 은퇴 전에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은 것들은 뭔가.
내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을 대충 계산해 보긴 했다. 4년 안에 양준혁 선배의 최다안타 기록은 깨고 싶다. 매년 100안타 이상 치면 된다. 144경기가 됐고 몸 관리만 잘해서 주전 선수가 되면 그 기록은 깰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풀타임으로 뛸 수 있는 몸 관리가 정말 중요하다. 그러면 다른 것들은 많이 따라 오지 않을까. 잘하고 못하고도 중요하지만, 내가 경기를 나갈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나이가 됐다.

▲ 별명이 참 많다. 최근에는 ‘선행택으로 불린다.
프로야구 선수라면 1년 내내 야구하면 좋다. 계속 잘할 수만 있다면…. 사실 사람 몸이 그렇지 않다. 쉬어줄 땐 쉬어줘야 한다. 어릴 땐 몰랐는데 지금은 그런 몸이 돼 있다. 하루 자고 일어난다고 원상 복귀되는 것이 아니다. 대신 쉬는 기간에 프로야구 선수라면 크진 않더라도 사회적인 환원이 필요하다고 본다. 재능기부라든가 내가 갖고 있는 인지도를 통해서 봉사를 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것 또한 우리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얻는 행복은 두 배가 아닌 열 배가 되더라.

▲ 별명 얘기가 나온 김에 가장 마음에 드는 별명이 있나? ‘00택으로 말해 달라.
(고민의 여지없이)‘팬덕택이다. 그 별명이 절묘하더라. ‘팬들 덕분입니다라는 의미다. 뭔가 뿌듯하고 벅찬 감동 같을 느끼게 해준다. 나도 별명이 많아서 이제 김태균을 앞서 가지 않나.(웃음)

▲ 2015년은 양띠 해다. 또 FA 첫 해다. 식상하지 않은 새해 소망을 부탁한다.
좋은 시나리오는 하나 있다. 그냥 내 머릿속에 있는 것이니까 편하게 말하자면…. 개인적으론 둘째가 양띠에 나왔으면 좋겠다.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캠프 가기 전에 생기거나 미국에서 하루 돌아온 날 생겨야 한다. 올 겨울에 아기가 잘 나올 수 있게 하면 이룰 게 많다. 개인적으로는 200안타 치면서 팀도 우승하고 둘째도 나오고 골든글러브도 받고 한국시리즈 MVP도 하고…. 하하하. 기가 막히다. 내친김에 사랑의 골든글러브도 한 번 더 노려보겠다.(웃음)

▲ 2015년에 그 상들 모두 휩쓸길 기대한다. <계속>
[min@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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