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조우영 기자]
기자는 과자 '허니버터칩'의 실물을 아직 본 적이 없다.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과자 한 봉지도 아닌, 내용물을 낱개포장해 500원씩 판다는 글이 등장하는 걸 보니 대단한 인기임에 틀림 없다.
그런데 지난 27일 밤 서울 안암동 고려대학교 근처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는 '허니버터칩' 못지않은 인기 과자가 있었다. 바로 '꽃게랑'이다. 그룹 넥스트(N.EX.T) 유나이티드 콘서트 뒤풀이 자리였다. 김치보쌈·오돌뼈볶음·어묵탕 등 각종 안주가 즐비했지만 이곳 테이블에 올려지자마자 게눈 감추듯 사라진 건 '꽃게랑'뿐이었다.
'꽃게랑'은 고(故) 신해철이 1992년 넥스트 결성 후 처음 찍은 TV CF 제품 브랜드다. 넥스트의 히트곡 '도시인'이 배경음악으로 쓰였다. 신해철은 이 CF에서 카리스마를 벗어던진 채, 여성 모델에게 "이름이 뭐니?"라고 간지럽게 물었다. 해당 여성은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던 김희선이다. 지금 떠올리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다만 신해철이 광고한 '꽃게랑'은 과자가 아닌 아이스크림이다. 롯데삼강 측 자료에 따르면 아이스크림 '꽃게랑'은 빙과류 비수기인 겨울철 판매강화를 위해 개발된 제품이다. 팥잼과 바닐라 성분이 다량으로 들어있어 달콤한 맛을 내며 모양이 꽃게처럼 만들어져서 '꽃게랑'이다. 지금은 시중에 팔지 않는다. 같은 '꽃게랑'은 아니었지만, 넥스트 공연을 마친 후 우리는 그렇게라도 고인을 추억했다.
그만큼 신해철의 부재를 어쩔 수 없이 확인한 날이기도 했다. 그래서 공연에 대한 아쉬운 점과 향후 개선점에 대한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나왔다. 이 때 가장 많은 놀림과 응원을 받은 이는 넥스트 보컬 이현섭이다.
이날 공연에서 고 신해철의 사촌 동생 신지우(24) 씨의 키보드 연주에 맞춰 '일상으로의 초대'를 부르던 그는 실수를 한듯 보였다. 가사를 잊었거나 혹은 음역대를 다소 높게 잡은 듯 했다. 노래를 온전히 부르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오해였다. 이 무대에서 그는 목이 메여 노래를 할 수 없었다.
그는 "'산책을 하고 차를 마시고 책을 보고 생각에 잠길 때 요즘엔 뭔가 텅 빈 것 같아 지금의 난 누군가 필요한 것 같아'라는 '일상으로의 초대' 노랫말을 부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고 말했다.
6년 만에 재결성된 넥스트 유니이티드 중 유일한 원년 멤버인 기타리스트 정기송은 팀 맡형답게 유쾌하게 술잔을 들이키며 신해철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처음에는 그저 백밴드 취급이나 할 줄 알고 몇 번을 거절했어. 그런데 어느날 동네 슈퍼마켓 앞에서 우리 어머니와 (신)해철이가 맥주를 마시고 있는거야. 그때 해철이가 우리 어머니께 한 말이 '그냥 아들 하나 더 얻었다 생각하시라'고 했다더군. 이후 난 두 말 않고 해철이와 함께 하기로 결심했지. 이번에도 해철이가 다시 넥스트를 해보자고 해서 난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수락했어. 그런데 이렇게 뒷정리를 하라고 날 불렀나 봐. 이제 여기는 걱정 말게 동생. 허허."
고 신해철에 관한 소소한 추억 하나가 소중하다. 눈물과 환호가 교차한 넥스트 공연이었으나 사실, 공연 초반 추모 의미가 짙게 깔리면서 현장 분위기는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신해철을 대신해 무대에 오른 신성우 이수 홍경민 김진표 김원준 에매랄드캐슬 지우 K2 김성면은 흥을 돋우기 어색했다. 보이지 않는 책임감과 회한이 어깨를 짓눌렀을 테다. 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 팬은 '이렇게 슬픈 록 공연은 처음이다'고 했다.
이현섭은 3팀으로 등장해 그 상황을 정확히 짚었다. "공연장에 오시기 전 많은 생각을 하셨을 것 같다. 가서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지, 나도 똑같은 고민을 했다"는 게 그의 말이다.
하지만 그는 "오늘은 마음껏 웃고 떠들고 우시다가 가셨으면 좋겠다. 그게 (신해철) 형도 원하는 바일 것 같다. 이제부터 여러분과 제가 해철 형에게 보여줘야 한다. 형 없어도 우리끼리 잘 뛰어 놀고 잘 산다. 걱정하지 말게 하자. 그만 징징대자"고 했다. 객석에 앉아있던 고인의 딸 지유(9) 양도 "이제 안 울 거예요"라고 소리쳤다.
fact@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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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과자 '허니버터칩'의 실물을 아직 본 적이 없다.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과자 한 봉지도 아닌, 내용물을 낱개포장해 500원씩 판다는 글이 등장하는 걸 보니 대단한 인기임에 틀림 없다.
그런데 지난 27일 밤 서울 안암동 고려대학교 근처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는 '허니버터칩' 못지않은 인기 과자가 있었다. 바로 '꽃게랑'이다. 그룹 넥스트(N.EX.T) 유나이티드 콘서트 뒤풀이 자리였다. 김치보쌈·오돌뼈볶음·어묵탕 등 각종 안주가 즐비했지만 이곳 테이블에 올려지자마자 게눈 감추듯 사라진 건 '꽃게랑'뿐이었다.
'꽃게랑'은 고(故) 신해철이 1992년 넥스트 결성 후 처음 찍은 TV CF 제품 브랜드다. 넥스트의 히트곡 '도시인'이 배경음악으로 쓰였다. 신해철은 이 CF에서 카리스마를 벗어던진 채, 여성 모델에게 "이름이 뭐니?"라고 간지럽게 물었다. 해당 여성은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던 김희선이다. 지금 떠올리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다만 신해철이 광고한 '꽃게랑'은 과자가 아닌 아이스크림이다. 롯데삼강 측 자료에 따르면 아이스크림 '꽃게랑'은 빙과류 비수기인 겨울철 판매강화를 위해 개발된 제품이다. 팥잼과 바닐라 성분이 다량으로 들어있어 달콤한 맛을 내며 모양이 꽃게처럼 만들어져서 '꽃게랑'이다. 지금은 시중에 팔지 않는다. 같은 '꽃게랑'은 아니었지만, 넥스트 공연을 마친 후 우리는 그렇게라도 고인을 추억했다.
이날 공연에서 고 신해철의 사촌 동생 신지우(24) 씨의 키보드 연주에 맞춰 '일상으로의 초대'를 부르던 그는 실수를 한듯 보였다. 가사를 잊었거나 혹은 음역대를 다소 높게 잡은 듯 했다. 노래를 온전히 부르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오해였다. 이 무대에서 그는 목이 메여 노래를 할 수 없었다.
그는 "'산책을 하고 차를 마시고 책을 보고 생각에 잠길 때 요즘엔 뭔가 텅 빈 것 같아 지금의 난 누군가 필요한 것 같아'라는 '일상으로의 초대' 노랫말을 부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고 말했다.
6년 만에 재결성된 넥스트 유니이티드 중 유일한 원년 멤버인 기타리스트 정기송은 팀 맡형답게 유쾌하게 술잔을 들이키며 신해철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처음에는 그저 백밴드 취급이나 할 줄 알고 몇 번을 거절했어. 그런데 어느날 동네 슈퍼마켓 앞에서 우리 어머니와 (신)해철이가 맥주를 마시고 있는거야. 그때 해철이가 우리 어머니께 한 말이 '그냥 아들 하나 더 얻었다 생각하시라'고 했다더군. 이후 난 두 말 않고 해철이와 함께 하기로 결심했지. 이번에도 해철이가 다시 넥스트를 해보자고 해서 난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수락했어. 그런데 이렇게 뒷정리를 하라고 날 불렀나 봐. 이제 여기는 걱정 말게 동생. 허허."
이현섭은 3팀으로 등장해 그 상황을 정확히 짚었다. "공연장에 오시기 전 많은 생각을 하셨을 것 같다. 가서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지, 나도 똑같은 고민을 했다"는 게 그의 말이다.
하지만 그는 "오늘은 마음껏 웃고 떠들고 우시다가 가셨으면 좋겠다. 그게 (신해철) 형도 원하는 바일 것 같다. 이제부터 여러분과 제가 해철 형에게 보여줘야 한다. 형 없어도 우리끼리 잘 뛰어 놀고 잘 산다. 걱정하지 말게 하자. 그만 징징대자"고 했다. 객석에 앉아있던 고인의 딸 지유(9) 양도 "이제 안 울 거예요"라고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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