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강태명 기자]
9년 만에 재결합해 돌아온 ‘더 크로스가 오는 30~31일 양일간 서울 군자동 세종대학교 대양홀에서 이야기 콘서트 ‘돈 크라이-뮤직드라마와 콘서트가 만났습니다를 진행한다.
2012년 불의의 사고로 ‘전신마비 로커가 된 보컬 김혁건, 옆에서 든든히 자리를 지키며 작곡가로 활동해온 이시하. 두 사람은 만감이 교차한다”고 감격했다.
더 크로스는 23일 서울 동숭동 대명문화공장에서 이야기 콘서트 ‘돈 크라이(Don't Cry)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본격 인터뷰에 앞서 더 크로스는 공연에서 선보일 몇 장면들을 시연했다. 음악을 다시 하게 된 과정, 노래를 연습하며 즐거웠던 추억들을 잔잔하게 표현했다.
지난 2012년 불의의 사고로 ‘전신마비 로커가 된 김혁건은 가장 먼저 히트곡 ‘돈 크라이를 열창했다. 힘찬 록 스타일은 사라졌지만, 대신 성악 버전으로 편곡해 묵직한 느낌을 더했다.
이어 ‘섬웨어 오버 더 레인보우(Somewhere over the Rainbow)를 하모니카로 연주했다. 이시하가 옆에서 건반으로 호흡을 맞췄다.
김혁건은 ‘넬라 판타지아를 끝으로 ‘맛보기 공연을 끝맺었다.
이시하는 더 크로스로 무대에 다시 선다는 걸 꿈도 못 꿨는데 만감이 교차한다”며 이번 콘서트를 개최하는 세종대학교 대양홀은 특별한 장소다. 12년 전 데뷔 당시 Mnet ‘뮤직페스티벌에서 대상을 받은 곳”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세종대학교는 우리가 처음 시작한 장소인 만큼, 새로운 시작을 해보라고 하늘에서 점지해준 곳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지난 1월부터 새 곡을 썼다”며 몸이 불편하더라도 ‘김혁건 여전하네라는 느낌을 팬들이 얻을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김혁건은 예전만큼 노래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응원을 보내주는 팬들 덕분에 힘을 얻는다. 팬들이 없었다면 다시 노래를 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예전에는 내가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이라고 보여주려 했다. 다친 후에는 가사의 의미와 감정에 충실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다치기 전에는 그냥 노래가 잘 됐다. 다치고 나니 목은 살아 있는데 배에 힘이 안 들어간다”며 어느 날 아버지가 배를 눌러주는데 소리가 팍 나오더라. 그때 발성의 요령을 터득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배를 누르는 장치를 직접 만들었다. 처음엔 수동이었다가 이제 전자동으로까지 발전했다”며 웃었다.
김혁건은 사고 후 폐활량이 일반인의 4분의 1로 줄었다. 전신마비이기 때문에 횡경막이 움직이지 않아 발성에 필요한 공기를 누르는 힘이 늘 부족하다. 그래서 곡을 만드는 작곡가의 배려가 필요했다.
하지만 김혁건은 시하가 나쁜 놈이다. 나는 장애인인데 인정사정없다. 곡에 쉼표도 많이 없다”고 툴툴대면서도 동정 받아서 노래하고 싶지 않다. 내 노래가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으면 좋겠다. 나의 이야기로 감동을 주는 게 아니라 노래로 감동을 주고 싶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이시하는 나름 배려했는데 미안하다”며 내 의도는 ‘장애인이 노래한대라는 평가를 받는 게 아니라 ‘좋은 노래를 들었는데 알고 보니 가수가 장애인이더라라는 말이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주목받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더 크로스는 연말 공연을 마친 후 내년 1월 5일 신보를 발매한다. 그 전에 콘서트에서 신곡을 먼저 공개한다.
이들이 다시 뭉치는 과정은 어려웠다. 김혁건의 몸 상태가 워낙 안 좋았던 데다 주위의 지원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믿을 건 가족과 그들 자신뿐이었다.
김혁건은 다치기 1년 전인 2011년에 재결합 하자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러다 내가 다치는 바람에 많은 주위 사람들이 떠났다”며 끝까지 내 곁을 지켜준 시하에게 고맙다. 다시 음악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더 크로스는 2009년 앨범을 마지막으로 휴식기를 가졌다. 그때부터 나는 실용음악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결혼 계획도 있었다. 음악에 대한 꿈은 그리 크지 않았다”며 다친 뒤 음악에 대한 열정이 더 커졌다”고 덧붙였다.
그가 다시 노래를 부르겠노라 다짐한 건 부모님 때문이다. 그의 부모님은 다친 막내아들을 보면서도 슬픈 티를 낼 수 없었다. 늘 벽 뒤에서 쓴 눈물을 삼켰다.
김혁건은 부모님의 응원은 항상 큰 힘이 된다. 내가 막내라 짜증도 많이 내는데, 부모님은 항상 내 앞에서는 울지 않는다. 내가 안 보이는 곳에서 운다는 걸 알고 있다”며 거울을 보면, 내가 내 모습을 보기 싫을 때가 많다. 하지만 부모님은 내게 늘 사랑스럽고 자랑스럽다고 해준다”고 고마워했다.
이어 내가 이렇게 돼도 나를 사랑해주는 부모님을 위해 웃는 모습을 보여드려야겠다. 그러려면 노래를 해야한다”고 결의에 찬 눈빛을 보였다.
이번 공연은 김혁건의 감동 스토리, 더 크로스의 재결합 과정을 고스란히 담았다. 김혁건의 체력을 고려해 ‘뮤직드라마와 콘서트의 만남으로 꾸며진다. 2시간 동안 이어지는 노래를 해낼 수 없기 때문. 음악과 드라마를 합쳐 쉬는 시간을 많이 갖는 것이 최선이었다.
물론 극 중 가공된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 모두 김혁건과 이시하가 겪은 실화다.
두 사람은 우여곡절 끝에 다시 팬들과 만난다. 9년 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그 중 그들의 마음 속에 변함없이 품고 있던 것이 하나 있다. ‘록 스피릿이다.
이시하는 성악 발성으로 노래를 하지만 혁건이에게는 여전한 록의 힘이 느껴진다”며 가장 중요한 건 정신이다. 힘든 일이 있어도 굴하지 않고 음악을 한다는 것. 그 자체가 록의 정신이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내 곡을 불러주는 보컬, 몸은 힘들지만 끝까지 부른다. 죽을 때까지 그 정신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김혁건의 손을 꼬옥 잡았다.
김혁건은 지금은 고음을 못하고 호흡량이 달리지만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우리가 만든 음악과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좋은 음악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이번 공연에서 1집 앨범의 ‘돈 크라이를 부른다. 제목 그대로 울지 않는다는 뜻이다. 혁건이가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팬들이 가장 듣고 싶어하는 노래인 만큼 많이 기대해달라”고 말했다.
/사진 강영국 기자
9년 만에 재결합해 돌아온 ‘더 크로스가 오는 30~31일 양일간 서울 군자동 세종대학교 대양홀에서 이야기 콘서트 ‘돈 크라이-뮤직드라마와 콘서트가 만났습니다를 진행한다.
2012년 불의의 사고로 ‘전신마비 로커가 된 보컬 김혁건, 옆에서 든든히 자리를 지키며 작곡가로 활동해온 이시하. 두 사람은 만감이 교차한다”고 감격했다.
더 크로스는 23일 서울 동숭동 대명문화공장에서 이야기 콘서트 ‘돈 크라이(Don't Cry)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본격 인터뷰에 앞서 더 크로스는 공연에서 선보일 몇 장면들을 시연했다. 음악을 다시 하게 된 과정, 노래를 연습하며 즐거웠던 추억들을 잔잔하게 표현했다.
지난 2012년 불의의 사고로 ‘전신마비 로커가 된 김혁건은 가장 먼저 히트곡 ‘돈 크라이를 열창했다. 힘찬 록 스타일은 사라졌지만, 대신 성악 버전으로 편곡해 묵직한 느낌을 더했다.
이어 ‘섬웨어 오버 더 레인보우(Somewhere over the Rainbow)를 하모니카로 연주했다. 이시하가 옆에서 건반으로 호흡을 맞췄다.
김혁건은 ‘넬라 판타지아를 끝으로 ‘맛보기 공연을 끝맺었다.
이시하는 더 크로스로 무대에 다시 선다는 걸 꿈도 못 꿨는데 만감이 교차한다”며 이번 콘서트를 개최하는 세종대학교 대양홀은 특별한 장소다. 12년 전 데뷔 당시 Mnet ‘뮤직페스티벌에서 대상을 받은 곳”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세종대학교는 우리가 처음 시작한 장소인 만큼, 새로운 시작을 해보라고 하늘에서 점지해준 곳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지난 1월부터 새 곡을 썼다”며 몸이 불편하더라도 ‘김혁건 여전하네라는 느낌을 팬들이 얻을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김혁건은 예전만큼 노래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응원을 보내주는 팬들 덕분에 힘을 얻는다. 팬들이 없었다면 다시 노래를 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예전에는 내가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이라고 보여주려 했다. 다친 후에는 가사의 의미와 감정에 충실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다치기 전에는 그냥 노래가 잘 됐다. 다치고 나니 목은 살아 있는데 배에 힘이 안 들어간다”며 어느 날 아버지가 배를 눌러주는데 소리가 팍 나오더라. 그때 발성의 요령을 터득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배를 누르는 장치를 직접 만들었다. 처음엔 수동이었다가 이제 전자동으로까지 발전했다”며 웃었다.
하지만 김혁건은 시하가 나쁜 놈이다. 나는 장애인인데 인정사정없다. 곡에 쉼표도 많이 없다”고 툴툴대면서도 동정 받아서 노래하고 싶지 않다. 내 노래가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으면 좋겠다. 나의 이야기로 감동을 주는 게 아니라 노래로 감동을 주고 싶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이시하는 나름 배려했는데 미안하다”며 내 의도는 ‘장애인이 노래한대라는 평가를 받는 게 아니라 ‘좋은 노래를 들었는데 알고 보니 가수가 장애인이더라라는 말이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주목받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더 크로스는 연말 공연을 마친 후 내년 1월 5일 신보를 발매한다. 그 전에 콘서트에서 신곡을 먼저 공개한다.
이들이 다시 뭉치는 과정은 어려웠다. 김혁건의 몸 상태가 워낙 안 좋았던 데다 주위의 지원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믿을 건 가족과 그들 자신뿐이었다.
김혁건은 다치기 1년 전인 2011년에 재결합 하자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러다 내가 다치는 바람에 많은 주위 사람들이 떠났다”며 끝까지 내 곁을 지켜준 시하에게 고맙다. 다시 음악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더 크로스는 2009년 앨범을 마지막으로 휴식기를 가졌다. 그때부터 나는 실용음악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결혼 계획도 있었다. 음악에 대한 꿈은 그리 크지 않았다”며 다친 뒤 음악에 대한 열정이 더 커졌다”고 덧붙였다.
그가 다시 노래를 부르겠노라 다짐한 건 부모님 때문이다. 그의 부모님은 다친 막내아들을 보면서도 슬픈 티를 낼 수 없었다. 늘 벽 뒤에서 쓴 눈물을 삼켰다.
김혁건은 부모님의 응원은 항상 큰 힘이 된다. 내가 막내라 짜증도 많이 내는데, 부모님은 항상 내 앞에서는 울지 않는다. 내가 안 보이는 곳에서 운다는 걸 알고 있다”며 거울을 보면, 내가 내 모습을 보기 싫을 때가 많다. 하지만 부모님은 내게 늘 사랑스럽고 자랑스럽다고 해준다”고 고마워했다.
이어 내가 이렇게 돼도 나를 사랑해주는 부모님을 위해 웃는 모습을 보여드려야겠다. 그러려면 노래를 해야한다”고 결의에 찬 눈빛을 보였다.
물론 극 중 가공된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 모두 김혁건과 이시하가 겪은 실화다.
두 사람은 우여곡절 끝에 다시 팬들과 만난다. 9년 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그 중 그들의 마음 속에 변함없이 품고 있던 것이 하나 있다. ‘록 스피릿이다.
이시하는 성악 발성으로 노래를 하지만 혁건이에게는 여전한 록의 힘이 느껴진다”며 가장 중요한 건 정신이다. 힘든 일이 있어도 굴하지 않고 음악을 한다는 것. 그 자체가 록의 정신이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내 곡을 불러주는 보컬, 몸은 힘들지만 끝까지 부른다. 죽을 때까지 그 정신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김혁건의 손을 꼬옥 잡았다.
김혁건은 지금은 고음을 못하고 호흡량이 달리지만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우리가 만든 음악과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좋은 음악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이번 공연에서 1집 앨범의 ‘돈 크라이를 부른다. 제목 그대로 울지 않는다는 뜻이다. 혁건이가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팬들이 가장 듣고 싶어하는 노래인 만큼 많이 기대해달라”고 말했다.
/사진 강영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