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는 12월 9일(06:01) '레이더M'에 보도 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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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젤Ⅲ 체제에서 금융권 자본확충 수단으로 떠오른 조건부자본증권, 이른바 코코본드가 국내에서 안착하지 못하면서 은행들은 비상이 걸렸다. 최근 4대 시중은행인 우리은행까지 코코본드 예상 모집액을 채우지 못하면서 금융권은 충격에 휩싸였다.
9일 투자금융(IB)업계에 따르면 국내 4대 시중은행 중 하나인 우리은행은 최근 코코본드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을 시도했지만 예상 모집금액을 채우지 못하고 미달 기록을 냈다. 우리은행은 만기30년물인 '신종자본증권형'으로 코코본드 2000억원을 발행하려했으나 수요예측 결과 청약금이 1600억원 들어오는 데 그쳤다.
앞서 지난 9월에도 JB금융지주가 같은 조건으로 2000억원 코코본드를 발행했으나 미달기록을 낸 바 있다. 업계에서는 우리은행 신용등급이 최상위(AAA) 등급인데다, 국내 은행권에서 우리은행 위상을 고려하면 JB금융지주와 달리 수요예측 실패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관측됐다.
우리은행 코코본드 신용등급은 'AA-급'으로 신용등급 상으로는 우량물에 속한다. 예상 발행금리는 5% 이상으로 동일 신용등급 채권과 비교하면 금리가 2배 가량 높아 수익률 부진에 시달리는 기관투자자들이 관심을 가질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그러나 결국 우리은행 코코본드마저 투자자를 찾지 못하는 결과를 냈다. 이유는 주요 채권투자자인 보험사들이 투자의사를 밝혔다가 수요예측 직전에 손을 뺐기 때문이다.
보험사들 태도가 바뀐 것은 이는 금융당국(보험감독국)이 보험사들이게 코코본드에 '취급주의령'을 내린 영향이 크다.
최근 보험감독국은 보험사들이 자본건전성 지표인 지급여력비율(RBC) 비율을 계산할 때 코코본드를 보유하고 있다면 신용등급에 관계없이 위험수준을 일정수준(8%)으로 일괄 적용하도록 했다. 그동안 보험사들은 코코본드를 만기와 신용등급에 따라 2%~8% 가중치를 차등 적용했다. 이번 감독원 지침에 따르면 보험사들은 조건과 관계 없이 모든 코코본드를 높은 수준의 위험도를 적용해야 한다. 예컨대, 신용등급 AA-급 코코본드는 위험가중치는 기존 4%에서 8%로 급등한다. 위험가중치 8%는 주식에 준하는 수준이다.
최근 저금리로 투자할 곳이 마땅하지 않은 보험사들은 신용등급이 우량한 코코본드 투자를 진행해 왔다. 그러나 앞으로 보험사들 코코본드 투자는 사실상 어려워질 전망이다.
기관 뿐만아니라 국내에서는 개인투자자가 코코본드에 투자할 수 있는 길도 사실상 막혀 있다. 감독당국은 지난 9월 JB금융지주 코코본드 발행 과정에서 "개인이 투자하기에는 구조가 복잡하고 위험 수준도 높다"는 견해를 내비치고 리테일(개인)판매 자제를 권고했다. 이후 은행들은 '기관 전용'으로 코코본드 발행해 왔다.
코코본드 투자자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은행들이 국내에서 코코본드를 발행해 자본확충을 시도하기는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 됐다. 전문가들은 은행들이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우리은행은 내년 외화표시 코코본드 발행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감독당국과 금융권 및 금융투자업계 사이 갈등의 골도 깊어지는 양상이다.
금융권은 지난해 바젤Ⅲ를 도입한 이후 은행들이 기존 자본비율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코코본드 발행 밖에 없는데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감독당국이 무조건 코코본드 발행에 발목을 잡고 있다고 주장한다.
보험업계에서는 코코본드가 위험이 높지만 신용등급이 존재하는 만큼 주식에 준하는 위험수준으로 일괄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감독원은 코코본드가 최악의 경우 '상각(투자금 전액손실)'될 수 있는 만큼 보험사들이 채권보다는 주식에 투자한 것과 같은 성격으로 봐야 한다고 못박았다.
보험감독국 관계자는 "은행들 남발한 코코본드를 보험사들이 받아주면 은행 부실이 보험으로 전이될 위험이 커질 수 있다"며 "국제적으로도 보험사가 코코본드에 적용해야하는 위험가중치는 8% 보다 높은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동양 사태 이후 감독당국은 위험과 수익간 금융상품 상관관계를 고려하기보다는 위험한 상품은 취급하지 말라고만 하는 분위기"라며 "감독당국 보신주의로 은행들은 자본확충이 어렵게 되고, 국내 투자자들은 고금리 코코본드 투자기회를 잃는 것이라 두 마리 토끼를 잃게 되는 셈"이라고 고 말했다.
[서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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