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차명 중개 금융인도 처벌…몸사리는 은행PB
입력 2014-11-25 17:34  | 수정 2014-11-25 21:53
# 서울 강북 소재 한 시중은행 PB센터에서 일하는 A팀장은 자신이 챙기는 고객들이 차명계좌에 대한 문의를 해도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저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을 읊을 뿐 어떤 조치를 취하시라”는 구체적인 말은 되도록 삼간다.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잘못 말했다가 나중에 문제의 소지가 될까봐서다. A팀장은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했다가 혹시나 당국의 조사가 들어오면 상담한 PB와 소속 은행의 신뢰도에 흠집이 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9일 차명거래금지법 시행을 앞두고 시중은행 PB들이 잔뜩 몸을 사리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차명거래 알선·중개에 대한 처벌 수위가 높아지면서 소비자들뿐만 아니라 PB들도 두려움에 떨고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앞으로 불법 탈세 목적으로 차명계좌를 개설할 경우 명의를 빌려준 사람과 빌린 사람, 알선·중개한 금융사 직원 모두 형사처벌(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을 받게 된다. 또 불법 차명거래가 금지된다는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은 금융사 직원은 최대 3000만원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은행 영업점에서는 신규 수신에 대해서는 실명 계좌를 쓸 것을 권유하지만 기존 차명계좌에 대해서는 달리 대응하고 있지 않다. 소비자가 실명화를 원하지 않으면 차명계좌를 그대로 두는 형태다. 실명 전환이 온전히 이뤄지면 다행이지만 PB가 적극 권유했는데도 실명 전환이 되지 않으면 당국이 문제 삼을 수 있다.
PB들이 굳게 입을 다문 이유는 또 있다. 실적 때문이다. 소비자가 갖고 있던 차명계좌를 실명화하면 수신 자금이 빠져나갈 것을 염려하는 것이다. 강남의 한 시중은행 PB센터 지점장은 10억원가량의 고액이 들어 있던 차명계좌를 정리해 모두 5만원권 현찰로 가져간 분도 있다”며 정확히 물어보진 못했지만 금고에 보관하려는 목적이 아닌가 한다”고 밝혔다.

과거에는 절세를 목적으로 차명거래를 적극적으로 권유했던 PB들이 이제 와서 실명으로 전환할 것을 요청하기도 어렵다는 분석이다. 대신 예금을 갱신할 때는 실명화해 다른 절세 상품에 가입할 것을 조심스럽게 추천하고 있다. 예를 들어 1년 만기 정기예금에 차명계좌를 가진 소비자라면 만기일 이후 갱신 때 실제 명의자계좌로 돈을 옮기는 방법을 권하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갈팡질팡하고 있다. 거래하던 은행에서는 만족할 만한 답변을 얻기 힘들고 그렇다고 마땅한 문의처가 없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금융위는 적극적인 유권해석을 내리지 않고 있다. 최근 문의가 빗발치자 은행연합회의 Q&A 양식으로 가이드라인을 내놨지만 설명이 모호해 명쾌한 답을 얻을 수 없다는 불만이 나온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범죄 수익 은닉, 자금 세탁, 조세 포탈, 채권자의 강제 추심을 회피하기 위해 만든 차명계좌가 불법에 해당한다.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분산 가입한 계좌도 원칙적으로 불법 차명계좌에 해당된다. 예컨대 40대 남성이 70대 아버지 명의로 비과세 상품인 생계형 저축을 든 경우 세금 회피의 목적이 있기 때문에 불법이다. 60대 남성이 세금우대 금융상품에 가입하고 가입한도 제한을 피하기 위해 타인의 차명계좌에 자신의 자금을 분산해 넣는 경우도 처벌받는다. 채권자에게 돈을 갚지 않으려고 다른 사람 명의의 계좌로 본인 자금을 예금하면 이 역시도 불법 차명거래로 처벌받는다. 이 같은 거래는 다른 현행법에 따라서도 불법이었으나 앞으로는 차명금지법에 근거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단 추후에라도 세금을 내면 형사처벌을 받을 가능성은 작다.
[배미정 기자 / 김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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