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
[M+영화愛人] 김병한 미술감독…‘리얼한’ 미술 덕분에 높아지는 ‘작품의 품격’
입력 2014-11-24 14:25 
사진제공=김병한 미술감독
한 영화가 개봉되기까지 많은 과정과 다양한 사람들을 거치게 된다. 영화감독을 시작으로 배우, 촬영감독, 제작진, 의상팀, 무술팀, 투자자, 배급사, 매니저, 홍보사 등 너무도 다양한 사람들이 힘을 다해 제작에 열을 올린다. 그러나 늘 영화가 개봉되면 배우 또는 감독만이 인터뷰를 통해 못 다한 이야기를 전하곤 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이들의 숨은 이야기를 거침없이 파헤쳐본다. <편집자 주>


[MBN스타 여수정 기자] 남북정상회담 당시 리허설을 위한 김일성 대역이 있었다는 독특한 소재를 담은 영화 ‘나의 독재자. 기발한 소재도 소재였지만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부자의 정과 가족의 끈끈한 사랑, 평범한 가장의 청춘 등이 고스란히 담겨 더욱 관심을 받았다.

특히 부자지간으로 첫 연기호흡을 맞춘 배우 설경구와 박해일의 열연은 완벽했고, 김일성 대역을 위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최선을 다한 설경구의 변신은 박수 받아 마땅했다. 또한 아버지를 생각하며 오열하는 박해일의 모습은 보는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해준 감독의 연출력은 완벽했다. 그러나 한 작품 안에 1972년과 1994년이 제대로 표현되어 있어 품격을 높였다. 아버지 성근(설경구 분)과 아들 태식(박해일 분)의 ‘집은 부자의 추억을 보여주기도 하고, 자신이 김일성이라고 믿는 성근의 야망 표출을 알려주기도 해 여러모로 의미가 깊다. 그 중심에는 미술감독 김병한이 있다.

김병한은 ‘새드무비 촬영부 ‘눈부신 날에 촬영B팀 ‘마더 ‘이끼 소품 팀 ‘악마를 보았다 콘셉트 디자인 ‘고지전 미술팀 ‘변호인 미술 ‘신촌좀비만화 미술 등 작품에 활력을 더한 바 있다.

본격적인 미술팀은 ‘마더부터이다. 원래 어렸을 때부터 미술 공부를 했다. 대학에서 미술전공을 했는데 비디오 아트에 관심이 많아 영화 촬영을 하는 친형을 졸라 촬영 팀 일을 경험할 수 있었다. 막상 촬영 팀에서 일하다보니 개인작업을 하던 내겐 공동작업이 너무 힘들더라. 그래서 다시 대학 졸업 후 순수미술을 했다. 그러나 이 역시 쉽지 않았다. 남의 눈치 안보고 개인의 욕구 충족을 위한 창작 작업이지만 말이다. 재료비를 벌기 위해 작업실에 있는 시간보다 노동을 하는 시간이 더 많았고, 서른 즈음에 많은 방황이 있었다. 그때 우연히 ‘새드무비 촬영 때의 최세연 의살실장님이 ‘마더 미술팀에 티오가 났는데 관심 있냐고 묻기에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평소 좋아했던 류성희 미술감독님 팀 이라는 말에 면접을 보기로 했고, 류성희 미술감독님을 만나 긴 대화를 하면서 영화 미술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바로 출근해서 ‘마더로 첫 미술팀을 시작 하게 됐다.”

탄탄한 작품에 참여하며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김병한 미술감독. 덕분에 ‘나의 독재자 역시 잘 표현된 듯하다. 앞서 강조했듯 ‘나의 독재자에서의 집은 여러 모로 중요한 공간이다. 성근과 태식의 추억이 담긴 장소로 시작하지만,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성근의 야망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곳이기도 하다. 때문에 제작 전 더욱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세트작업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세트이기에 느껴지는 가짜의 느낌을 없애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사실 진짜 집을 섭외해 리모델링해서 찍어야 리얼감이 살 것이라 생각하고 준비 단계 때는 촬영 조건에 맞는 집들을 찾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하지만 2층집에 지어진지30년 이상에 재개발 지역에 있고 포클레인으로 부술 수 있는 집은 없더라. (웃음) 재개발 부지에 세트를 지어보기로 했는데 그 또한 쉽지 않더라. 결국 담벼락 안은 스튜디오 세트를 만들어 찍고 담벼락 밖은 재개발 예정 부지에 만들어 촬영했다. 재개발 부지에 담벼락과 집 외관도 만들어서 찍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그 정도 규모는 물론 제작사에서 많은 투자를 해준 세트였기에 (만족한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나보다. (웃음)

사진제공=김병한 미술감독
집이라는 한정적인 공간을 통해 두 시대를 보여준 김병한 미술감독. 시대의 흐름과 의미의 변화, 계절의 변화 등 다채롭게 담아내 보는 재미가 가득하다. 그러나 김병한 미술감독은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최선을 다했고 뿌듯하다. 그러나 100% 만족스럽지는 않다. 앞서 말한 것처럼 외부 로케이션에 집 외관도 만들었으면 좋았겠단 생각이 든다. 1층의 거실을 중심으로 연결된 안방과 주방 툇마루 작은 마당에 많은 고민을 거듭했고 많은 유형의 옛날 집 자료를 참고 했다.”

100% 만족감은 들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김병한 미술감독이 제작진과 표현한 집은 작품 몰입을 돕는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특히 1972년과 1994년을 담아야했기에 표현에 있어 어려움도 컸을 터.

한 달 만에 만든 집을 보름 동안 촬영하면서 20년간의 흐름을 표현 한다는 게 쉽지는 않더라. 그러나 기본적으로 처음부터 생각한건 변화를 주되 인물을 따라 공간이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공간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 특히 집은 더 더욱 그렇다. 어릴 때 살던 곳에 어른이 되어 찾아가면 작게 느껴지는 건 상대적으로 우리가 커졌기 때문이지 공간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마치 성인이 되어서 바라본 아버지의 뒷모습이 문득 작게 느껴지는 것처럼. 이런 변화를 원했다”

세트에도 활력을 담은 김병한 미술감독은 작품을 들어가기 전 어디에서 영감을 얻곤할까.

류성희 미술감독님 팀에 있을 때부터 도서관에 가서 자료 수집을 했다. 이는 아마도 내 윗 선배들 때부터 전해오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준비단계(프리 프로덕션)가 길면 길수록 다양한 자료 수집이 가능하다. 아무래도 다양한 콘텐츠를 다양한 루트로 접해야 항상 보고 접하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새로운 것들이 나온다. 영화마다 자료 수집의 방향은 달라 질 수 있는데 시대극은 모범답안이 다큐멘터리 기록물에 있기에 도서관을 자주 찾게 된다.”

사진제공=김병한 미술감독
작품이 없을 때는 주로 영화를 본다는 김병한 미술감독은 참여한 모든 작품에 애착이 가기에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고를 수 없다고 전했다. 참여했던 모든 작품을 사랑하는 김병한 미술감독의 차기작은 ‘남과 여다.

매번 새로운 영화에 참여 할 때는 설렘과 동시에 악몽에 시달릴 정도로 두렵다. (웃음) 그러나 이윤기 감독님과 출연 배우들과 함께 할 촬영현장이 기대된다. 좋은 영화에 누가 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야겠다. (웃음)”

영화인으로 살고 있음에도 본인은 아직 영화인이라 생각되지 않는다고 겸손함을 보인 김병한 미술감독은 결혼할 때 류성희 미술감독님을 비롯해 봉준호 감독님, 장훈 감독님, 조화성 미술감독님, 오승철 조명 감독님 등 너무나 많은 선배와 동료 분들이 와 축하해줬다. 이때 내가 영화인으로 살고 있구나를 느꼈다”고 예상외의 대답을 내놓기도 했다.

아직은 영화 제작진의 삶은 많이 고된 게 사실이다. 많은걸 희생해야 한다. 하지만 주변 환경도 점점 나아지고 있고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라 믿는다”

여수정 기자 luxurysj@mkculture.com / 트위터 @mkculture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