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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사(思)] 양희은 쇼케이스 보도자료가 보여준 ‘멋’과 ‘맛’
입력 2014-11-18 15:15  | 수정 2014-11-18 16:54
사진=MBN스타 DB / 양희은 쇼케이스 보도자료
[MBN스타 유명준 기자] 가수 쇼케이스 취재를 가면 기사 쓸 때 참고하라고 보도자료를 받는다. 보통은 음반 소개와 가수의 프로필, 향후 계획 정도가 적혀 있다. 딱 자료 수준인 셈이다. 그런데 생애 첫 쇼케이스를 개최한 가수 양희은의 보도자료는 남달랐다.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IFC몰 엠펍에서 열린 ‘2014 양희은 음반발매기념 쇼케이스장 입구에서 나눠준 보도자료의 첫 장은 양희은 성격 그대로 유쾌했지만 동시에 취재진을 긴장케 했다.

양희은은 친필로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하필 제가 쇼케이스 하는 같은 시간대에 JYP의 갓세븐이 쇼케이스를 한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림 감사합니다”라고 적어 웃음을 자아냈다. 그러나 이어진 글은 가볍게만 보기 어려웠다.

양희은은 겉핥기식 취재보다는 CD를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고 나서 기사를 써주세요. 잘 부탁합니다. 44년차 가수의 부탁이니 무시하지 마시고 유념해 주세요”라고 썼다.

한 주에도 몇 개씩 개최되는 쇼케이스를 취재하는 가요담당 기자들 중 적잖은 이들이 ‘겉핥기식 취재를 하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현장에서 받은 CD를 제대로 들어보는 이들 역시 많지 않다. ‘생애 첫 쇼케이스를 개최하는 양희은은 이런 기자들에게 ‘44년차 가수의 부탁이니 무시하지 마시고 유념해달라고 무게감 있는 말을 건넨 셈이다.

그리고 이어진 보도자료의 내용은 양희은이 이 쇼케이스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많았음을 보여줬다.

음반의 개요, 음반수록곡, 음반소개는 물론, 양희은 프로필, 음반발매연혁 등이 실렸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2014 양희은 작업기다. 아이돌 그룹 등의 쇼케이스에서는 보기 힘든 내용이다. 양희은이 적은 작업기는 양희은의 목소리가 떠올릴 정도였다.


‘나영이네 냉장고에 대해서는 김나영이 쓴 ‘마음에 들어라는 책을 새벽 두 시까지 단숨에 읽고 나영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 책에서 노랫말 좀 추려서 쓸까 하는데 그대로 되냐고... 여러 곳이 책 제목대로 마음에 들었고, 짠하기도 해서 가슴이 먹먹했다. 이 노랫말은 단숨에 썼다 (중략) 집에서 나와 낯선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허기진 마음으로 애쓰는 모든 이들에게 이 노래를 드린다”라고 적었다.

‘유희열의 스케치북 음악감독이자 싱어송라이터인 강승원과 함께 부른 ‘당신 생각에 대해서는 난 이 노래를 듣자마자 반했다. 토를 달고 자시고 할 게 없다. 꼭 이성친구, 배우자, 또는 애인이 아니더라도 내게 세상은 아직도 살아 볼만한 곳이라는 믿음을 주는 당신. 그런 사람을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은 복된 사람이다.(중략) 이 노래를 쓴 이경 씨를 우리는 그냥 경이라 부른다. 경아! 고맙다. 이렇게 좋은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해줘서 참 고맙다”라고 썼다.

이번 앨범에 유일한 리메이크곡인 ‘김치 깍두기에 대해선 만약에 리메이크할 옛날 노래를 한 곡 고르라고 한다면, 당연 이 노래를 고를 것이다.(중략) 지구별 어디서라도 김치 깍두기가 있으면 우린 정신도 차리고 기운도 낼 수 있다. 아자! 아자! 김치깍두기 파이팅!”이라고 소개했고 ‘아버지에 대해서는 내 나이 마흔...39세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넘어서서야 비로서 아버지를 용서했다. (중략) 용케도 살아온 길 뒤돌아보니 기댈 곳 없는 이 거친 세상 당신은 가고 난 남아있네요. 부모 없는 사람들 서러워 마시라. 이미 내 몸의 반반이 그 분들에게 물려받은 것이니, 나 사는 동안 같이 사신다.”라고 적었다.

12곡 모두 감사할 사람, 노래를 부를 때 어떤 감정이 들어갈지에 대해 세세하게 적어나간 것이다. 이 글을 읽고 나서 들은 ‘2014 양희은은 추억이고, 지금 사는 인생이었다. 스윙 팝 재즈에 도전하고, 듀엣에도 도전하는 등 ‘새롭고 ‘도전이라는 단어가 붙은 음반이지만, 사람을 위로해주는 양희은의 목소리는 변함이 없었고, 작업기는 소스처럼 그 목소리를 풍부하게 했다.

보통 쇼케이스 보도자료는 사무실 한 곳에 쌓아놓지만, 양희은 쇼케이스 보도자료는 그 자리에 가지 않을 것 같다. 자필로 취재진에게 무게감 있는 부탁을 하는 멋과 곡에 대한 작업기를 유쾌하면서도 깊이 있게 적은 맛이 있는 보도자료를 보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유명준 기자 neocross@mkculture.com / 트위터 @mk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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